[외신사진 속 이슈人] 유럽 전역서 농민시위 `들불`, 거리로 나선 뿔난 농부들

2024. 2. 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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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현지시간) 트랙터를 동원한 프랑스 농민시위대가 파리 남부 실리-마자랭의 상행 고속도로를 봉쇄한 채 경찰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프랑스 농부들이 트랙터를 몰고 거리를 봉쇄하며 본격화된 농민 시위가 유럽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브뤼셀, 독일 등 서유럽부터 루마니아와 폴란드 등 동유럽, 남부의 이탈리아 농부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등 유럽 농민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조짐입니다.

31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에선 농민 시위가 날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습니다. 남서부 지방에서 처음 시작된 트랙터 시위는 프랑스 전역으로 번져나가 수도 파리 목전까지 닿았습니다. 여차하면 파리 시내로 트랙터를 끌고 들어가 도심을 마비시키겠다는 기세입니다.

한 농민은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해도 한 달 최저 임금의 소득을 얻기가 쉽지 않다"며 "은퇴해도 한 달에 700∼800유로(약 100만∼110만원)밖에 못 받을 것"이라고 성토했습니다. 또 다른 농민은 "주중·주말 따질 겨를도 없이 일하는데 최저 임금보다도 못 벌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트랙터 시위대 일부가 유럽 최대 규모의 농산물 도매시장으로 꼽히는 파리 남부 외곽 '렁지스 시장'으로 접근하자 프랑스 정부는 이들을 차단하기 위해 장갑차를 추가 투입하는 등 긴장이 높아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통방해 혐의와 대형 유통업체 창고 침입 시도 혐의로 시위 농민 약 100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벨기에에선 지난 30일 유럽의 주요 교역 관문인 제브뤼헤 항구에서 농민들이 진입로 5곳을 막고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이날은 시위대가 주요 고속도로를 봉쇄하는 한편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 인근까지 트랙터를 몰고 진출했습니다. 이들은 EU 정상회의가 열리는 1일 EU 집행부와 각국 정상들을 겨냥해 EU의 '녹색 규정' 등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낼 계획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북부 피에몬테 알레산드리아와 남부 시칠리아 섬의 칼리아리항 등지에서 농민 수백명이 트랙터를 몰고 나와 이탈리아 정부와 EU의 농업정책을 성토했습니다. 헝가리와 루마니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에서도 값싼 우크라이나 농산물과의 불공정 경쟁, 농업 차량용 경유가 인상에 항의하는 농민 시위가 지난달 말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례없는 겨울 가뭄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농민들도 곧 시위에 합세할 예정이라고 유럽 최대 농업협동조합·생산자 단체인 코파 코게카(COPA-COGECA)는 전했습니다. 이밖에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도 농업용 경유에 대한 정부의 점진적인 세금 인상 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최근 펼쳐졌습니다.

유럽 농민들이 일손을 놓고 분노를 표출하는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에너지 가격 등 경작 비용이 대폭 증가해 경제적 부담은 커졌는데, 경유 보조금 등 당국의 지원은 줄어들며 농사를 지어도 수입이 쪼그라들고 있는 게 큽니다. 프랑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농가 소득은 지난 30년 동안 40% 줄었고, 농민 5명 중 1명은 빈곤선 아래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이 유럽에 물밀듯 들어오면서 유럽산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것도 농민들의 고충을 가중했습니다. EU는 우크라이나의 흑해 항로가 전쟁으로 사실상 봉쇄되자 우크라이나 농산물에 대해 수입할당 제한을 유예하고, 관세를 철폐했지요.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산 농산물과 가금류 수입이 급증하며 각국의 시장가가 폭락하는 결과가 초래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조금 지급의 조건으로 더 높은 환경 기준을 농민들에게 요구하는 EU의 공동농업정책(CAP)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도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분석입니다.

한편,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 농민들의 분노에 편승해 극우 정치세력이 약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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