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점도표' 더 과감해지나…한은 총재 "확장 고민 중"

김혜지 기자 2024. 2. 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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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총재,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만찬사
학계에 포워드가이던스·중립금리 등 5개 과제 관심 당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일 "한국형 점도표를 발표한 지 이제 1년 반째"라며 "향후 어느 정도 시계(horizon)까지 확장해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2024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에 참석해 '최근 통화정책의 연구 과제'를 주제로 만찬사를 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간 이 총재는 매 기준금리 결정 직후 향후 3개월 기간을 범위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들의 기준금리 전망을 밝혀 왔다. 이를 통해 석 달 뒤 예상 기준금리 수준이 어떤지 금통위원 6명의 금리 수준별 분포도를 알렸고, 이 과정에서 금통위원 개인의 견해가 소수의견처럼 공표될 때도 있었다.

언론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점도표에 착안해 이를 한국형 점도표라고 불렀다. 이는 미래 금리 정책에 대해 말하지 않음으로써 가능한 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 했던 한은의 전통으로부터 탈피한 시도로 여겨졌다.

이 총재는 "하반기부터 반기가 아니라 분기별 주요 경제 전망치를 발표하고자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조건부 포워드 가이던스를 더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렇다면 어느 정도 시계까지 확장해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금껏 3개월 기간 범위로 발표했던 한국형 점도표를 그 이상의 기간 범위로 늘릴지 고심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은은 하반기 경제 전망의 분기별 세분화를 계기로 전망 커뮤니케이션의 변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한국형 점도표 방식을 발표한 지 이제 1년 반 정도 시간이 지났기에 그 결과에 대한 실증 분석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할 것"이라면서 "고민에 대한 답을 학계와 함께 찾아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지난달 열린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자료사진) /뉴스1

이 총재는 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의 적절성 여부도 학계가 함께 고민해 줄 것을 당부했다.

금중대는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낮은 이율로 자금을 대주고 은행은 그만큼 싼 이자로 특정 부문에 돈을 빌려주는 제도다. 최근 한은은 자금 조달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금중대 규모를 9조원 확대하기로 했다.

이 총재는 "금중대는 신용 공급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재정정책이 담당해야 할 정책금융이기에 중앙은행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있다"며 "반면 금리정책은 경제 전체에 무차별하게 영향을 주는 도구이기에 취약업종 등에 선별적이고 한시적인 금융중개 지원을 한다면 고금리 정책을 지속하는 데 부담이 완화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가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에 빠져 제로금리 하한(Zero Lower Bound)에 직면할 경우 금중대는 금리정책을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운 중앙은행이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양적완화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전면 실시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그렇다고 재정에만 의지해 침체에서 벗어나려 하면 재정적자 확대가 국가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가 있어 금중대가 중앙은행의 정책도구 중 하나가 될 수 있는지 근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립금리 추정에 관해서도 학계 논의를 요청했다.

중립금리는 물가 상승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잠재성장률을 유지하게 하는 금리 균형점을 의미한다. 오직 추정치가 있을 뿐이나 통화정책 결정에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된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 등 대내 요인 때문에 중립금리가 장기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선진국, 특히 미국의 경우 재정적자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기후변화 대응으로 투자 수요가 크게 늘어나며 인공지능(AI) 등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서 그동안 추세적으로 하락해 왔던 중립금리가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외 영향을 크게 받는 개방경제에서 대내외 요인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할 때 중립금리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향후 통화정책 결정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므로 학계의 연구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나머지 이 총재가 학계의 관심을 부탁한 과제로는 급속한 뱅크런(예금 인출)에 대비한 중앙은행 대출제도 개선과 상설대출기구(standing facility)인 자금조정대출의 기능 강화 문제 등이 있었다. 전자는 뱅크런 대비를 위해 비은행금융기관을 어떻게 감독·조사할지가 핵심 이슈이며, 후자는 상시대출제의 적격담보 범위를 대출채권까지 확대하는 경우 도덕적 해이를 어떻게 예방할지가 관건이다.

국내 경제에 관한 연구가 젊은 학자 사이에서 외면받는 현실에는 쓴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이 총재는 "젊은 교수님들에게 '연구 결과를 해외 학술지에 게재를 해야 업적으로 인정받는데, 국내 경제에 관한 연구는 해외 학술지 게재가 쉽지 않아 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우리 경제에 관한 수준 높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에서 국내 연구에 대한 평가가 신뢰받지 못해 우수한 젊은 교수님들이 국내 연구를 피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참견 같지만 학회에서 개선할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셔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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