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환 사령관, 채모 상병 수사 “장관 지시 없었다면 정상 이첩했을 것”

유새슬 기자 2024. 2. 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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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출석’, 박 대령엔 “항명 처벌받아야”
박 대령, 김 사령관 입장하자 거수경례
일부 진술 땐 사령관 응시하며 고개 저어
박 대령 “참담한 현장, 가슴 너무 아프다”
사령관에 욕설한 방청객 퇴정당하기도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관련해 초동조사를 담담했던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이 1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 수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 2차 공판에 출석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수빈 기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채모 해병 순직 사건 수사내용 경찰 이첩 보류와 관련해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지시가 없었다면 정상적으로 이첩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만 박정훈 대령이 이첩보류 지시를 어긴 것은 명확하다며 항명 혐의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령 측 변호인단이 외압 여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추궁하자 김 사령관은 목소리를 높이거나 재판부의 중재를 요청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1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진행된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항명과 상관명예 훼손 혐의에 대한 2차 공판에서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김 사령관과 박 대령이 만난 것은 해병대 수사단이 조사 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했다가 회수당한 지난해 8월2일 이후 처음이다.

김 사령관은 이날 법원 정문 앞에서 대기하던 취재진을 피해 지하주차장을 통해서 법정에 들어섰다. 김 사령관이 입장하자 박 대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고 김 사령관은 말없이 경례를 받은 뒤 자리에 앉았다.

박 대령 측 변호인단은 국방부 장관 참모인 박진희 당시 군사보좌관, 안보실에 파견된 해병 대령이 김 사령관과 나눈 연락 기록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는데 김 사령관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김 사령관은 이종섭 당시 장관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면 이첩을 막을 특별한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박 대령 측 변호인단의 질문에 “장관님 지시가 없었으면 정상적으로 이첩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김 사령관은 박 전 보좌관과의 통화기록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재판부를 향해 “제가 이 자리에 온 것은 이첩 보류와 중단 명령에 대한 답변을 하려고 온 것이다. 그것과 관계없는 부분에 대해서 계속 (신문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안보실도 후속 조치에 관심이 있었던 것인가”라는 질의에는 “국민적으로 관심 없었던 곳이 있었나” “답변하지 않겠다”고 했다. 변호인단이 ‘장관의 결재 번복’이라는 표현을 쓰자 목소리를 높여 “장관이 무슨 결재를 번복하셨다는 건가. 그것을 답하시라”며 “변호인은 그렇게 해석할지 몰라도 이게 활자화됐을 땐 엄청나게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령은 재판 중 대체로 김 사령관이 앉아있는 왼쪽이 아니라 정면을 응시하며 굳은 표정을 보였다. 간혹 김 사령관이 진술을 할 때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김 사령관을 쳐다보며 고개를 살짝 가로젓거나 엷은 미소를 띠며 미세하게 끄덕이기도 했다.

김 사령관은 “피고인(박 대령)이 처벌을 받았으면 하나 처벌받지 않기를 원하나”라는 재판부의 질의에 “지금도 제 부하고 수사단장일 때도 제 부하였다. 그래서 이 부분은 법원에서 공정하게 판단해 주시리라 생각한다”고 답변을 피했다. 재판부가 재차 “달리 처벌 의사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다고 이해하면 되겠나”라고 하자 “제가 처벌 의사를 표하면 반영은 되나”라고 되묻고는 “이첩 보류 관련 지시를 어긴 건 명확하다. 군인이 명확한 지시 사항을 어긴 것은 어찌 됐든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때 욕설을 한 방청객이 퇴정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박 대령은 사령관 쪽은 보지 않고 정면만 응시하며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관련해 초동조사를 담담했던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이 1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 수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방청석에는 김 사령관을 수행하러 온 해병대 관계자들과 박 대령을 응원하는 동료들이 섞여 있었다. 김 사령관이 변호인 측 신문에 답변을 거부하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답할 때 방청석에서는 발을 구르거나 혀를 차고 탄식, 헛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나왔다. 오전 재판을 마치고 휴정할 때 일부 방청객은 “사령관은 정신 차려. 당신이 해병대 정신을 말살하고 있어” “외압이라고 얘기하라”고 소리쳤고 김 사령관은 발끈하며 방청석을 잠시 바라본 뒤 말없이 퇴정했다.

김 사령관은 5시간 가까이 진행된 재판을 마치면서 “자의적인 법 해석과 본인이 옳다고 믿는 편향적인 가치를 내세워 해병대를 살리고 해병대를 지키고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했던 그 모습이, 지금 해병대의 모습이 과연 어떤 모습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기를 바란다”며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맺어진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과 영웅 심리에 해병대를 결코 흔들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령관이 퇴정한 뒤 박 대령은 “28년 동안 군 생활을 하면서 사령관님과 총 3차례 같이 근무했다. 부하를 위하고 해병대를 사랑하는 마음에 가슴 깊이 존경해왔고 항상 충성으로 보답했다. 오늘 참담한 이런 현장에 얼마나 고충이 심하실까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그는 빈 증인석을 바라보며 “비록 이 자리에 계시진 않지만 사령관님한테 진심으로 수고하셨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박 대령은 김 사령관이 처벌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어떤 심정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해병대의 상관과 부하, 전우, 이런 입장에서 보면 참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했다.

앞서 박 대령은 이날 군사법원에 출석하며 취재진에게 “지금이라도 사령관으로서 명예로운 선택을 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저를 둘러싼 모든 일들이, 고 채 상병의 시신 앞에서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에서 비롯됐다”며 “채 상병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이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야 한다. 과연 떳떳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모든 일들이 올바르게 정의되는 사필귀정의 해가 되도록 국민 여러분의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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