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판 ‘의열단’ 리더, 그는 소련 스파이였나

한겨레 2024. 2. 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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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비드쿤 크비슬링은 한때 국방장관까지 지낸 번듯한 정치인이었다.

나치는 노르웨이를 직접 통치하다 1942년 2월1일 꼭두각시를 자처하는 크비슬링 정부를 출범시켰는데, 이튿날 오슬로 동부역에서 폭탄이 터졌다.

오스발 그룹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침략자에 맞선 노르웨이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70년 노르웨이 공산당에서 제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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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오스발(아스비에른 수네)(1909~1985)

노르웨이의 비드쿤 크비슬링은 한때 국방장관까지 지낸 번듯한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1930년대부터 극우정당 활동에 푹 빠졌다. 1940년 나치 독일이 침공해 국왕과 정부가 피난 가자 크비슬링은 쿠데타를 선언했다. 나치는 노르웨이를 직접 통치하다 1942년 2월1일 꼭두각시를 자처하는 크비슬링 정부를 출범시켰는데, 이튿날 오슬로 동부역에서 폭탄이 터졌다. 오스발 그룹이 벌인 저항운동의 시작이었다.

오스발과 동지들은 크비슬링 괴뢰정부와 나치의 골칫거리였다. 많은 파괴 공작을 벌였다. 자서전에 적은 것만 수십건인데, 훗날 연구에 따르면 100건이 넘었다고 한다. 포위된 건물에서 탈출하고, 활동 자금을 모은다며 은행도 털었다. 오스발을 잡기 위해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오스발 그룹을 이끈 리더가 아스비에른 수네라는 청년 좌파활동가임이 밝혀졌다. 수네는 앞서 1936년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동료들과 현지로 달려가 파시스트에 맞서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스페인 소식을 노르웨이 언론에 전하는 특파원 일도 했다. 수네가 다양한 파괴 공작을 익힌 것도 이때였다고 한다.

오스발 그룹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침략자에 맞선 노르웨이 독립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색깔을 걷어내고 본다면? 파시즘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 운동으로 나는 보고 싶다.

1945년 독일군이 패망해 노르웨이에서 물러갔다. 파시스트 크비슬링은 반역죄로 총살당했다. 그런데 독립투사였던 아스비에른 수네 역시 뜻밖의 시련을 겪는다. 국가기밀을 소련에 넘긴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1954년 체포된다. 당국은 뚜렷한 증거를 대지 못했지만, 당시는 냉전시대였다. 공산당원이던 수네는 8년 형을 선고받는다. 1959년 풀려나지만, 감옥에서 건강을 크게 해쳤다. 그는 1970년 노르웨이 공산당에서 제명됐다. 전쟁연금도 받지 못했고, 조용히 살다 1985년 숨졌다. 수네가 정말 소련의 스파이였는지는 여전히 노르웨이 현대사의 논쟁거리.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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