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딱지’ 덕지덕지…화곡동은 지금 멀쩡한 집들도 경매 넘어간다[현장]
“전세사기꾼들 물건만 그런 거 아니에요. 요즘엔 착실하게 임대사업 하던 사람들의 멀쩡한 물건도 경매로 넘어가고 있어요.”
지난달 30일 서울 화곡역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김모씨는 “전세가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한두 채 관리하던 임대인들은 어찌 대응하고 있지만, 서너 채만 돼도 다들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세가 급락으로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임대인이 속출하자 경매에 넘어가는 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름 돋는 화곡동 근황”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누리꾼들의 눈길을 끌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수백 건의 경·공매 매물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사진이었다. 누리꾼들은 “화곡동 전세사기로 등록된 집이라는데 진짜 어떻게 하냐”, “평수 보니까 거의 투룸…가난한 신혼부부 대상”, “전세사기가 진짜 너무 많다. 무섭다”, “그냥 저 정도면 시장 붕괴 아닌가”라며 우려했다.
경향신문이 화곡동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윤모씨도 최근 거래량 감소로 일감이 줄어 사무실에서 일하던 직원 3명을 줄였다고 했다. 그는 “지난 정부는 느슨한 보증보험가입 요건을 방치해 전세가를 올리면서 사람들이 돈 없이도 투자하게 했고, 현 정부는 전세사기가 터지자 급하게 보증보험 가입요건을 강화해 임대사업자를 죄고 있다”며 “경매가 쏟아지는 것은 이제 시작일 것”이라고 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몇몇 공인중개사는 폐업을 준비 중이었다. 지난달 30일 화곡1동의 공인중개사 김모씨(61)는 텅 빈 사무실 안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 도서를 펼쳐두고 공부하고 있었다. 책 가장자리는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고, 펼쳐 놓은 페이지엔 검은 연필 자국과 노란색 형광펜 줄이 빽빽했다.
김씨는 “폐업하고 요양보호사 자격증과 정보기술자격(ITQ)를 따 요양보호사나 동사무소 행정보조로 일하려 한다”며 “전세 사기 이후 화곡동은 거래량도 떨어지고 공인중개사들이 거래도 하지 않아 딴 일을 알아본 지 오래됐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주엔 정보기술자격 시험에서 떨어졌다”며 “열심히 살아온 것밖에 없는데 노후가 이렇게 될지 몰랐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주택과 무자본 갭 투기로 인한 ‘깡통전세’ 주택 대부분은 경·공매로 이어진다. ‘경매알리미’ 경·공매 매물 지도엔 1일 서울 강서구 매물 696건 중 다수가 화곡동 빌라와 다세대주택에 집중됐다. 경·공매 데이터 기업 ‘지지옥션’은 지난해 화곡동에서만 서울 빌라 경매의 35.8%가 나왔다고 했다.
김씨의 책상 위엔 건물 임대 정보가 담긴 종이가 50~60장 쌓여있었다. 종이마다 ‘R400’ ‘R300’이 적혔다. 알파벳 ‘R’은 신축 분양사가 공인중개사에게 분양 중개를 의뢰할 때 법정 중개 수수료 외 추가 수수료를 주겠다는 일종의 뒷돈(리베이트) 표시였다. 그는 “집이 나가지 않아 수수료를 더 주겠다며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며 “이상한 매물 때문에 또 사고가 날까 봐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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