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눈치보며 돌아선 野… 與 “민생 목소리에 마이동풍” [민주, 중처법 유예 거부]

배민영 2024. 2. 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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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협상결렬 막전막후
‘산안청’ 설치 조건으로 적용 유예 연장
여야 원내대표, 심야협상서 잠정합의
野, 합의안 ‘원포인트’ 법사위 계획도
민주 의총서 1시간 반 넘게 찬반 격론
“안전과 맞바꿀 수 없어”… 합의 뒤집혀
與 “처벌만이 능사인가… 국민 기만”

더불어민주당이 1일 의원총회에서 90여분간 토론 끝에 여당이 제안한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유예·‘산업안전보건지원청’ 개청 협상안 수용을 거부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그간 요구해온 ‘산업안전보건청’(산안청) 설치가 일부 반영된 안이었기에 소속 의원들의 의견 수렴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한 것이다. 자연스레 민주당이 주장해온 산안청 설치가 중대재해법 협상 거부를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중대재해법 유예 불발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민주당이 지게 되는 형국이 되면서 원내지도부의 전략 실패라는 평가도 나온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양당 원내지도부는 국회 본회의를 하루 앞둔 전날 밤 협상에서 산업안전보건지원청을 신설하는 대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을 5인 이상 50인 미만 전 사업장에 확대 적용하는 시점을 2년 더 늦추는 쪽으로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안전보건지원청은 민주당이 애초에 요구한 산안청 대비 단속·조사 권한을 줄이고 예방·지원 기능에 방점을 찍은 기구다.
‘엑스자’ 그려보이는 野의원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왼쪽)이 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오른쪽) 등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유예 반대 피케팅을 하는 노동계 관계자들을 향해 여야 원내지도부 중재안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는 의미로 엑스(X)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이제원 선임기자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 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협상안을 설명했다. 이 안에 대한 총의를 모아낼 경우 ‘원 포인트’ 법제사법위원회를 열어 중대재해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넘긴 뒤 최종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민주당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전만 해도 “기왕에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면 협의가 잘 진행된다는 전제조건으로 해서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총에서 많은 의원이 중대재해법 추가 유예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의견 통일에 난항을 겪었다. 결국 예정됐던 본회의까지 미뤄가며 1시간30분 넘게 찬반 토론을 벌인 끝에 홍 원내대표가 협상안을 거부하는 쪽으로 결단을 내렸다. 윤 원내대변인은 의총 종료 후 기자들을 만나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의 생명·안전을 보전하는 차원에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이 필요하다는 데는 변함이 없지만 산업현장 안전과 맞바꾸지 않겠다는 게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5명 정도가 찬반 토론을 했다”며 “(찬반 의견은) 반반이라고 보시면 된다. 홍 원내대표가 결단해 국민의힘이 제안한 안을 받지 않기로 했고 의원들이 최종적으로 거기에 이의가 없었다”고 전했다.

임오경 원내대변인은 “(중대재해법) 법안 취지를 존중해 산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는 여건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결정에) 이태원 특별법에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한 부분도 좀 작용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 서영교 최고위원과 이수진(비례)·강민정 의원 등이 협상안 수용에 반대 의견을, 김병욱·송기헌·전해철 의원 등이 수용 찬성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반대 측은 노동과 생명 존중 가치를 지키기 위해 법 적용 확대가 필요하다는 원칙론을 강조했고, 찬성 측은 제도 안착을 위해 현장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논리와 함께 협상을 해온 원내지도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협상안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 협상안 걷어차”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운데)가 1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규탄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중대재해법 2년 유예의 최종 조건으로 내건 산업안전보건청 설치까지 전향적으로 수용했는데,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협상안을 걷어찼다”며 “민주당은 자신들 이념과 특정 세력 눈치보기로 민생을 내던졌다”고 비판했다. 뉴시스
민주당이 정부여당 측 제안을 뿌리친 건 4·10 총선이 70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노동계의 반발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원내지도부가 여당 측 협상안에 수용 가능 의사를 밝혔던 데 대해서는 ‘전략적 판단 실패’란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애초에 정부여당이 산안청 설치를 수용하더라도 민주당은 사실상 중대재해법 개정에 협조할 뜻이 없었던 사실이 드러난 만큼 중대재해법 적용 확대를 둘러싼 부정적 여론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당장 여당이 민주당의 협상안 거부에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국민의힘은 국회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중대재해법 유예 지연, 중소기업 다 죽는다”, “처벌만이 능사인가, 산업 현장 외면 말라” 등의 구호도 외쳤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최종 목적은 산안청 설치가 아닌 그저 중대재해법 유예를 하지 않는 것이었음이 드러났다”며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의 1순위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기득권 양대 노총일 뿐”이라며 “선거에서 이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에 오로지 표만 생각하고 민생을 내던졌다”고 비판했다.

배민영·김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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