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10조 투입 … 수가 올리고 형사처벌 면제 '당근' 제시
의료사고 수사경험 꺼낸 尹
"무조건 의사압박땐 환자 위험"
형사처벌 특례법 제정 추진
비급여·실손보험도 손질 밝혀
의대 증원 숫자 안밝혔지만
내년부터 지역인재 전형 확대
필수의료 4대 정책 공개
"지금이 의료개혁 골든타임"
정부가 1일 민생토론회를 통해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서 10년 내 필수의료 붕괴 위기를 극복하고 이후에는 근본적인 의료생태계 전환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필수의료 수가를 단기간 내 빠르게 올려 현재의 불균형한 보상체계를 손보고, 필수의료 기피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처벌 특례법을 추진해 인력을 유입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비급여와 미용의료에 대한 관리도 한층 강화한다.
먼저 필수의료 유인책으로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입해 관련 수가를 집중 인상한다. 늘어난 비용은 건강보험 재정을 중심으로 충당한다. 난이도, 위험도, 숙련도, 대기·당직시간 등을 고려한 공공정책수가를 추가로 주는 방안을 분만, 소아 분야부터 적용한다. 필수의료 보상에 막대한 건보 재정이 투입된다는 우려에 대해 정부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기존에 건보 준비금이 24조원가량 적립돼 있으며 당기수지 흑자 수준이 3조원 이상"이라고 말했다.
비급여 관리체계도 손본다. 물리치료에 도수치료를 끼워넣거나 불필요한 백내장 수술을 하는 등 과도하게 비급여 비중증 치료와 급여 진료를 섞어서 진행하는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비급여 진료의 과잉보상을 야기하는 실손보험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와 사전 협의하도록 제도화한다.
관리 사각지대로 여겨지는 미용의료 분야의 경우 시술 자격 기준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미국, 일본 등은 의사가 아닌 타 직종이 자격을 취득한 경우 미용시술 중 일부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한다"며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 향후 제도 개선 여부를 특위 논의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위해 의료인의 책임보험·공제 가입을 전제로 의료사고를 대상으로 형사처벌 면제 등을 담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도 추진한다. 그간 의료계에서는 필수의료의 경우 중증·응급 진료나 수술이 많아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부담이 크다는 점이 기피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왔다. 이에 정부는 필수의료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감면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가 보상하는 범위를 소아 진료 등으로 확대하는 안을 검토한다.
필수의료 재건의 핵심으로 꼽히는 의과대학 증원 규모는 이날 발표되지 않았다. 2035년 의사인력이 1만5000명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을 바탕으로 논의를 구체화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수급 전망을 토대로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대폭 확대하고 의료 수요 관리, 의료인력 재배치 등도 적극 추진하겠다"며 "의료 취약지구의 의사 수를 전국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5000명 수준의 의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다만 의료계에서는 정확한 숫자만 안 나왔을 뿐 의대 증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 대학병원 전공의는 "시기와 규모를 모두 발표하며 사실상 대폭 증원을 선언했다"면서 "정부가 의료계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모양새"라고 언급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4대 개혁 패키지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 및 지역의료 육성을 위한) 근본적 대책이 아니다"며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협과 충분한 논의와 합리적인 합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할 것을 강력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민생토론회 내내 의료 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토론회에 앞서 분당서울대병원 내 임상실습을 위해 마련된 '스마트 시뮬레이션센터'를 방문해 전공의들의 외과수술 실습을 참관하며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자신이 검찰에 몸담고 있던 시절 의료사고에 대해 수사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의료인들의 부담에 대해 공감했다. 먼저 산부인과 전문의인 한성식 씨가 "의료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면허가 정지되고 병원이 문 닫는 현상도 목격했다"며 "의료사고에 대한 문제들,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선진국 못지않게 유지하던 출산 관련 산모 사망률이 점차 오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의료사고 관련 고소·고발이 있다고 즉시 조사에 착수하는 것은 환자를 정말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법무·정책적 입장에서 (수사를) 좀 신중하게 해달라"고 검찰에 당부했다.
마무리 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이제 정말 의료개혁을 서둘러야 할 골든타임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김지희 기자 / 박윤균 기자 /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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