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4400만인데 …'비례대표제' 140만 민주당원이 정한다니

전경운 기자(jeon@mk.co.kr) 2024. 2. 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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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당원 투표로 선거제도 결정
지도부, 혼란 책임 피하려 방패삼아
"병립형 회귀하려 알리바이 만드나"

더불어민주당이 4·10 총선 비례대표 선출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 결정하기 위한 전 당원 투표를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대한민국 5100만명의 민생을 책임질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제도를 140만명의 민주당 권리당원에게 맡긴다는 뜻이어서 당 안팎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1일 민주당에 따르면 당 지도부는 2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전 당원 투표 시행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이미 전 당원 투표 실무 준비에 착수한 상태다.

민주당은 총선이 70일 앞으로 다가온 이날까지도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와 병립형 비례제 회귀를 놓고 당내 의견이 팽팽히 갈리며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막고 연동형·권역별 비례제를 약속한 만큼 이를 지켜야 한다는 쪽과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 총선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병립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당 지도부는 병립형쪽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병립형 회귀는 민주당이 스스로 한 약속을 정면으로 깨버리겠다는 의미인 만큼 지도부의 최종 결정이 늦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전 당원의 뜻을 물어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 당원 투표가 병립형으로의 회귀 결정을 당원들에게 떠넘기고 지도부가 선거제 퇴보 비판 부담을 피하기 위한 꼼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민주당 당원들 사이에서는 병립형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한 상황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당의 활동개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민주당의 권리당원은 140만명이다. 민주당이 전 당원 투표를 밀어붙인다면 140만명의 민주당 권리당원이 22대 총선 룰을 결정하는 꼴이 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도 위성정당을 만든 국민의힘을 맹비난하다가 전 당원 투표에서 비례연합정당 참여에 대해 압도적 찬성이 나오자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 의석을 싹쓸이했다. 21대 총선의 위성정당 출현에 이어 22대 총선의 병립형 회귀까지 총선 판이 민주당 당원들에 의해 좌우되는 셈이다.

민주당은 2021년에도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후보 출마 문제 등을 전 당원 투표로 결정해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이 책임을 회피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때 민주당은 '원인을 제공한 재·보궐 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당규를 전 당원 투표를 통해 무력화시키고 후보를 냈지만 결국 선거에서 참패했다. 당시 민주당 당대표였던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위원장은 "기존 당헌을 고쳐가며 후보자를 낸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고 털어놓았다.

민주당의 전 당원 투표 카드에 당 안팎에서는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 출신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민주당이 대개 천벌을 받을 짓은 전부 당원 투표를 해서 하더라"라며 "이거 뒤집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누가 이 대표를 믿겠느냐"고 지적했다.

미래대연합의 김종민 의원은 "이재명 대표는 전 당원 투표라는 알리바이를 만들어 정치개혁 민심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내에서도 이견이 표출됐다. 이 대표 측근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YTN 라디오에서 "지도부가 입장이 있다면 의원총회를 거쳐 의견을 모아 국민과 당원들을 설득하는 게 올바른 태도 아닌가"라며 "그냥 당원들에게 어떤 게 좋으냐고 묻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는 조금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 당원 투표를 강력하게 주장해 온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국민투표를 하면 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건가. 국민에게, 당원에게 묻는 것이 주권재민 민주주의 헌법 정신 아닌가"라며 "중요한 정책을 당원에게 묻는 것이 나쁜가. 참 이상한 논리"라고 반박했다.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앞서 민주당이 했던 결정을 되돌리는 것을 사과 한 마디 없이 전 당원 투표로 넘기는 것은 책임 회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선거 때마다 선거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선거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이 선거제를 결정하는 현 체제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최근 선거제와 선거구 획정을 최소한 선거 6개월 전에 확정하는 강제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한편 여야는 선거제 개편에 합의하는 대로 본회의를 열어 이를 처리하기로 했다. 이르면 오는 6일 본회의를 열어 처리할 전망이다.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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