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환 사령관 “영웅심리로 해병대 흔들어”…박정훈 “존경하는 분, 가슴 아파”
“임성근 사단장 인사조치 보고하자 이종섭 장관이 정상출근 지시”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1일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가 없었다면 해당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사령관은 이날 오전 용산 중앙군사법원에서 열린 박정훈(대령)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 2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현직 해병대 사령관이 군사법원 공판에 출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령관은 ‘이종섭 장관이 이첩을 보류하라며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면, 사령관은 이첩을 막을 특별한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박 전 단장 측 변호인 질문에 "장관님 지시가 없었으면 정상적으로 이첩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종섭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30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명시해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해병대 수사단 보고를 받고 서명했지만, 이튿날 출국을 앞두고 갑자기 보류를 지시했다.
김 사령관은 "박 대령을 포함해 수사단 전체 인원이 잠 안 자고 열심히 노력한 것을 충분히 인정한다. (조사)한 것에 대해 (내가) 신뢰한 건 인정한다"며 "이첩 전까지 수사단에 수사를 위한 모든 권한과 여건을 보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수사 내용은) 이첩보류 지시와는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며 박 전 단장이 자신의 지시를 어기고 사건을 이첩했다는 기존 입장을 견지했다.
다만 ‘피고인이 이첩보류 지시를 못 따르겠다고 노골적으로 반항한 사실이 있느냐’는 변호인 질문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 (못 따르겠다고) 명시적으로 발언한 바 없다"고 했다.
재판부가 ‘항명과 관련해 피고인에 대해 처벌 의사가 있느냐’고 묻자 "지금도 제 부하다. 법원에서 공정히 판결해달라"면서도 "이첩 보류와 관련한 지시를 어긴 건 명확하다. 군인이 지시를 어긴 것은 어찌 됐든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재판에서는 김 사령관이 당시 이 전 장관의 군사보좌관이던 박진희 육군 준장(현 소장)과 보고서 이첩 보류에 대해 나눈 텔레그램 메시지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 사령관은 박 전 보좌관에게 유족 여론 악화 가능성과 야당의 쟁점화 등을 이유로 수사결과의 경찰 이첩을 늦추기가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이 메시지가 결국 사령관 생각 아니었느냐’는 변호인 질문에 "박 전 단장 판단을 글자 하나도 안 바꾸고 그대로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한테 자꾸 (저렇게 생각했냐고)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에 대해선 답변 안 하겠다"라고 말했다.
김 사령관은 지난해 8월 2일 박 전 단장의 부하와 통화하면서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수사단원들의 동요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사령관은 당초 임성근 1사단장이 사의 표명을 한 만큼 인사 조치를 추진했지만, 이 전 장관이 ‘그대로 정상 출근시키라고 지시했다는 증언도 했다.
박 보좌관이 7월 31일 전화로 장관의 뜻이라며 언론 브리핑 보류, 국회 설명 보류, 임성근 사단장 정상출근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 사령관은 장관 지시사항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혐의자를 특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수사권 없는 군에서 언론 발표를 할 경우 향후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유가족과 경찰이 오해하지 않게 잘 설명하라는 것, (박정훈) 수사단장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이견을) 정리하도록 해주라는 것, 1사단장을 업무 복귀시키라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7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임성근 사단장 처벌 계획에 대해 격노한 사실이 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법원에 증인 신문 일정을 미뤄달라는 신청서를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날 오전 김 사령관이 법정에 입장하자 먼저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박 전 단장은 즉각 일어나 "필승" 구호와 함께 그에게 거수경례했다.
김 사령관은 마무리 발언에서 박 전 단장을 겨냥해 "자의적인 법 해석과 본인이 옳다고 믿는 편향적 가치를 내세웠다"고 지적했다.그는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맺어진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과 영웅심리로 흔들어선 안 된다"며 "항명 사건이 없었다면 순직장병 부모님의 말씀처럼 이미 진상은 규명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사령관 퇴장 이후 발언권을 얻은 박 전 단장은 "사령관님은 정말 부하를 위하고 해병대를 사랑하는 분으로 가슴 깊이 존경해왔고 충성으로 보답해왔다"며 "오늘 참담한 일을 (겪으며) 현장에서 얼마나 고충이 심하실까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피고인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부 방청객은 김 사령관을 향해 욕설과 야유를 쏟아내기도 했다. 휴정 시간 해병대 군복을 입은 한 방청객은 "사령관 당신이 해병대 정신을 말살하고 있어 창피하다. 외압이 있었다고 말하라"고 말했고, 고(故) 이예람 중사의 부친은 "군사법정을 혐오한다"고 소리쳤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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