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밥먹었니'로 안부 … 한류인기 필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 2024. 2. 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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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을 인상 깊게 봤어요.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고 다른 K콘텐츠에도 관심이 많죠. '최애 한식'인 비빔밥은 직접 만들어 먹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지난달 31일 매일경제가 만난 마리아 테레사 디존 데 베가 주한 필리핀대사(55)는 인터뷰 내내 '덕후' 수준으로 한국 문화 이야기를 풀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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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사 디존 데 베가 주한 필리핀대사
30여년 전 책 읽다 한국에 관심
영화·음식·드라마 등으로 확대
"한국 찾아온 필리핀 관광객
재방문 쉽게 문턱 낮췄으면"
올해 양국 수교 75주년 맞아
FTA발효 동반자 관계 기대
마리아 테레사 디존 데 베가 주한 필리핀대사가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영화 '서울의 봄'을 인상 깊게 봤어요.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고 다른 K콘텐츠에도 관심이 많죠. '최애 한식'인 비빔밥은 직접 만들어 먹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지난달 31일 매일경제가 만난 마리아 테레사 디존 데 베가 주한 필리핀대사(55)는 인터뷰 내내 '덕후' 수준으로 한국 문화 이야기를 풀어놨다. '필리핀의 서울대'라고 불리는 UP딜리만대 우등 졸업, 캐나다와 홍콩에서 석·박사 학위 취득, 외교관 시험 수석, 재임 중 사법시험 패스까지 그야말로 엘리트길을 걸었던 그가 남의 나라 '덕후'로 빠져든 계기는 무려 36년 전 우연히 집어든 한 권의 책이라고 한다.

'한국: 기적의 땅을 걷다'라는 제목의 남한 남쪽 끝에서 북한과의 경계까지 대한민국을 발로 걸으며 탐험한 여행기였다. 한국의 문화, 역사, 지리에 대한 통찰력이 담긴 글에 반했고 외교관이 되기 전부터 닥치는 대로 한국 관련서를 탐독했다고 한다. 한번 빠지면 끝장을 보는 성격 덕에 K콘텐츠에도 통달하게 됐다.

한국 관련 서적 중 가장 흥미로웠던 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하멜표류기'를 꼽아 기자도 깜짝 놀랐다. 베가 대사는 "한국에 관한 '유럽인 최초의 저술'이라는 대목이 흥미로웠다"며 "아직 못 가봤지만, 올해는 꼭 하멜이 표류했던 제주도와 강진 기념관을 가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한국과 필리핀 수교 75주년이고,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고 양국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될 것이 유력한 중요한 해다. 두 사안 모두 한국 부임 3년 차인 베가 대사가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며 만들어낸 결과다. 베가 대사는 "필리핀과 한국은 서로에 대해 웬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 많다"며 "우정을 나누기에 문화 교류만큼 좋은 것도 없다. 양국이 더 많은 인적 교류로 상호 이해를 더 넓혀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필리핀은 6·25전쟁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한 나라로 사실상 '혈맹'이다. 그래서일까. 베가 대사는 필리핀에서도 갈수록 세지고 있는 한류 확산의 중요한 배경으로 '문화적 유사성'을 꼽았다. 이른바 '정(情) 문화'가 대표적이다. 베가 대사는 "한국에서 안부인사를 할 때 흔히 '밥 먹었니'라고 묻곤 한다. 필리핀도 똑같다"면서 "식사했는지 묻고 안 했으면 같이 먹자고 한다. 양국 모두 혼자보다는 함께 밥을 먹으며 정을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가 대사는 활발한 인적 교류 덕분이라는 분석도 보탰다. 현재 한국에는 필리핀인 약 6만7000명, 필리핀에는 약 8만7000명의 한국인이 거주 중이다. 베가 대사는 "양국에 거주하는 국민이야말로 진정한 대사들"이라며 "이들이 양국 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필리핀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 1위는 한국인이다. 반면 필리핀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숫자는 아직 팬데믹 이전의 6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베가 대사는 "5~6년 전에 한국은 필리핀인들에게 매력적 관광지긴 했지만 최고 선호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류에 힘입어 지금은 전 세계 최고 선호지 중 하나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필리핀인들은 한국을 처음 찾았을 때 좋은 인상을 받고 대부분 몇 달 내 재방문 계획을 세운다. 자신들에겐 생소한 한국의 4계절을 모두 겪어보고 싶어하는 것"이라며 "한류를 오래 이어가고 싶다면 더 쉽게 한국을 찾을 수 있게 입국 문턱을 낮췄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내놨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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