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로운 선택해야"·"지시 어기면 처벌"…朴 대령·해병사령관 법정서 '공방'
金 "朴, 지시 어긴 것 인정했다"…朴 "사령관이 고충 심할 것, 가슴 아프다"
(서울=뉴스1) 박응진 허고운 기자 =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중장)이 1일 법정에서 만났다.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 피해자 수색 중 순직한 고(故) 채모 상병 사고 초동조사를 둘러싼 항명 및 외압 논란 이후 약 반 년 만에 마주한 것이다.
박 대령은 "지금이라도 해병대사령관으로서 명예로운 선택을 하시기를 바란다"라며 김 사령관이 입장을 바꿔 경찰 이첩 보류에 관한 명시적 지시가 없었음을 밝힐 것을 바랐고, 김 사령관은 박 대령이 명확한 지시를 어겼다고 주장하면서 그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령은 이날 오전 본인의 '기록 이첩 보류 중단 명령에 대한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등 혐의와 관련한 두 번째 재판이 열린 서울 용산구 소재 중앙지역군사법원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돌이켜보면 저를 둘러싼 이 모든 일들이 채 상병의 시신 앞에서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는 저의 다짐으로부터 비롯됐다"라고 밝혔다.
박 대령은 "채 상병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이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야 한다. 과연 떳떳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지 물어야 한다"라며 "한 병사의 죽음을 엄중하게 처리해야 되는 이유는 그것이 옳은 일이고 정의이고, 또한 제2의 채 상병 같은 억울한 죽음을 예방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정에서 만난 박 대령과 김 사령관은 서로에게 경례를 하며 군인으로서 예의를 갖췄다. 그러나 서로의 주장은 이날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엇나갔다.
박 대령은 채 상병 사망사고 조사결과 보고서의 경찰 이첩 보류를 김 사령관으로부터 명시적으로 지시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대령은 오히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죄명을 빼라. 혐의자를 빼라' 등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 사령관은 이날 "(박 대령은 나의) 명확한 (이첩 보류) 지시를 어겼다. 이 부분은 재판부에서 판단해주실 것"이라고 맞섰다. 그는 모두 3차례에 걸쳐 이첩 보류를 명시적으로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김 사령관은 "수사 책임은 경찰에 있다는 조언을 받아서, 여러 이견이 있지만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혐의자를 단정지을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을 존중했고, 저도 결심해서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이라고 전했다.
김 사령관은 '박 대령에 대한 처벌을 희망하느냐'라는 재판부의 질문에 "(박 대령은) 지금도 제 부하고 수사단장일 때도 제 부하였다"라며 법원에서 공정하게 판단해 주시리라 생각한다"라고 직접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이에 재판부가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이해해야 하느냐"라고 되묻자 김 사령관 역시 "제가 만약 처벌 의사 한다면 반영은 되느냐"라고 반문한 뒤 "군인이 명확한 지시사항을 어긴 것은 어찌됐든 간에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김 사령관의 이 같은 발언에 방청객 1명이 그를 향해 욕설을 해 즉각 퇴정당하기도 했다.
김 사령관은 또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한 뒤 박 대령과 유 관리관 간 토의 시간을 부여했는데, 어떻게 명시적으로 이첩 보류 지시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느냐'는 취지의 박 대령 측 변호인 질문에 "서로 반대의견이 계속 있는데, 지휘관으로서 시간을 부여 안 하는 게 오히려 잘못된 것 아닌가"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게 맞고, 중간에 토의과정 시간을 준 것이고,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귀국 후에 (이첩 보류에 관한) 최종 결론을 낸 것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김 사령관은 박 대령이 조사결과 보고서의 경찰 이첩으로 인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날 '우린 진실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 없다'는 취지로 해병대 수사단을 응원했던 것이 "수사단장이 조사를 받고 있고 보직해임됐던 시점으로 안다. 그것에 대해 (수사단원들이) 동요했기 때문에 동요를 방지하기 위한 통화"였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장관이 △군에서 혐의자를 특정지어선 안 된다 △수사권이 없는 군에서 언론보도를 통해 발표했을 경우 향후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가족과 경찰이 오해하지 않도록 잘 설명하라 △이 사안은 법무관리관실이 최종 정리해주고, 관련해서 박 대령과 유 관리관 간 통화로 정리를 하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은 업무에 복귀시키라 등의 지시를 했었다고 김 사령관은 전했다.
그는 "혐의자를 단정지을 필요 없다는 법무 조언은 들었지만, 누굴 (혐의대상에서 제외하라는 식으로 조사결과 보고서를) 변경시키란 건 들은 바 없다"라고도 증언했다.
김 사령관은 자신의 공책에 '당구장 표시'(※)와 함께 ': 제가 책임지고 넘기겠다(내일)'라고 적혔던 글씨가 지워진 사실과 관련해 "제 노트이기 때문에 제가 했고(썼고) 삭제했을 것"이라며 "제 생각인지, 수사단장(생각)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앞서 박 대령은 해병대 수사단의 사고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VIP(윤석열 대통령)가 격노했다'라는 얘기를 김 사령관으로부터 들었다고 밝힌 데 반해, 김 사령관은 이날 본인은 이 같은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박 대령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령 측 변호인은 "대통령이나 장관 등 군령권자들 관련해선 일체 왜곡된 진술이 되고 있다"라면서 "김 사령관의 공책 메모는 단장(박 대령)이 한 얘기가 아니다. (김 사령관이) 장관한테 자기 결심을 통보한 게 아닌가라고 저희가 판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사령관은 이날 재판부로부터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어 "(지난해) 8월2일 박 대령이 (이첩을) 강행한 과정에서 '제가 사령관님 지시 어긴겁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인 것 분명히 기억한다"라며 "자의적인 법 해석과 본인이 옳다고 믿는 편향적인 가치를 내세워 해병대를 살리고 지키고,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한 모습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기 바란다"라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김 사령관은 이어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을 사령관인 나를 포함해서 현역, 예비역, 누구 할 것 없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과 영웅심리에 해병대를 결코 흔들어선 안 될 것"이라며 "항명 사건이 없었다면 채 상병의 부모님 말씀처럼 이미 진상이 밝혀졌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 대령 또한 발언 기회를 얻어 "(김 사령관과) 같이 근무하면서 정말 부하를 위하고 해병대를 사랑하는 마음에 가슴 깊이 존경해왔고, 그리고 항상 충성으로 보답을 했었다"라면서 "(그런데 오늘) 얼마나 고충이 심하실까 가슴이 너무 아프다. 사령관님에게 진심으로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라고 언급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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