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은 협의, 미용·성형 사고 형사처벌도 막아줘야" 의료계 반발
정부가 10년 뒤인 2035년에 의사 1만5000명이 부족하다고 보고, 의대 정원을 늘려 이를 해소하겠다는 뜻을 강조한 데 대해 의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반면 간호사 위주의 단체인 보건의료노조는 "환영한다"며 반색해 의료계 직역 간 온도 차가 극명하다.
1일 대한의사협회는 입장문에서 "의대정원 확대는 의학교육의 질 저하는 물론 건보재정에 큰 부담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며 "정부는 대한의사협회 및 의학교육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경청해 의대정원 정책에 반드시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정부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대한의사협회와의 충분한 논의와 합리적 합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할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35년에 의사 1만5000명이 부족하지 않으려면 2025년부터 10년 동안 매년 1500명씩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에 대해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이날 머니투데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남는데 필수의료 분야를 안 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개원하지 않거나 전공을 이탈하는 등 '놀고 있는 의사'가 족히 1만 명은 넘는다. ('놀고 있는 의사'가) 가장 많은 과가 소아청소년과다. 그 사람들을 나오게 할 생각을 해야 한다"며 "의대정원을 늘린다고 그 사람들이 나오겠냐"고 비판했다.
이번 패키지에 따르면 정부는 비급여도 손을 본다.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 등 비(非)중증 과잉 비급여 진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진료와 혼합하는 것을 금지하는 안을 추진한다. 또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추진해 의료인의 소송·배상 부담을 완화하고 피해자에는 실효적인 보상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다만 특례 적용 범위에 미용·성형은 제외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의협은 "의료계와 충분한 소통 없이 발표된 △국민의 치료선택권을 제한하는 비급여 혼합진료 금지 △사망사고 및 미용·성형을 제외한 제한적 특례적용 범위 △개원 면허 및 면허갱신제 도입 등 의사면허에 대한 통제 및 규제 등에 대해서는 큰 우려와 함께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추진과 관련해, 특례 적용 범위에 사망사고 및 모든 진료과목을 포함해 추진돼야 한다는 게 의협 입장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처럼 비급여에 대한 통제가 훨씬 강화된다는 것과 피부·미용 성형 수술 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선 특례법 적용이 제외돼 의료인의 형사 처벌 부담이 그대로인 것은 아쉽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대신) 의사 회원들을 달래줄 만한 '당근' 정책도 일부 들어있지 않을까 기대했다"며 "하지만 혹을 떼려다 붙이는 정책이 더 많아 보인다"고 주장했다.
의료계에서 이례적으로 의료 인력 대규모 확대에 찬성해온 김윤 서울의대 교수조차도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두고 "아쉬운 점이 있다"고 직언했다. 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정책에서 '지역별 인원 분산'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는 것이다. 김윤 교수는 "대학별로 의대 정원을 추가 배정해주는 걸 대학 중심의 지역 필수의료 책임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활용할 수 있는데 그런 내용은 없다"며 "(의대 정원 확대는) 당장 의료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정책 수단인데 아쉽다"고 말했다.
반면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입장문에서 "정부의 패키지 정책은 붕괴 위기로 치닫는 필수의료·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라고 호평했다. 이들은 "정부가 의료인력 확충방안으로 내놓은 △충분한 의사 수 확보 △안정적인 의사 인력 수급 등은 번아웃으로 내몰리는 의사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환자의 안전과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국 200여 의료기관과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보건의료노동자 8만4000여 명이 가입한 단체다. 60여 개 직종 종사자로 구성됐는데, 그중에서도 간호사가 64.2%로 가장 많다. 이어 간호조무사(5.5%), 임상병리사(5.2%), 방사선사(5.1%) 순으로 구성됐다. 사실상 간호사들의 의견이 주축을 이룬다. 전공의가 부족한 탓에 불법 직종인 'PA(진료지원인력)'로 활동하는 간호사가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만큼 의료계에서 간호사들은 의사 수 부족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큰 것으로 지적돼왔다.
앞서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은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을 주제로 8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주재하고, 필수의료 4대 정책 패키지를 공개했다. 4대 정책 패키지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이 포함됐다. 그중 '의료인력'의 확충 방안으로 정부는 올해 고3이 진학하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발표 시기는 설 연휴 전후가 유력하지만 이날 구체적인 규모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과 같은 이런 말이 유행하는 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없다"며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면 선진국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것"이라고 필수의료 붕괴를 우려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민생토론회에서 "전문가의 전망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후인 2035년에는 의사가 1만5000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정부는 수급을 고려해 현장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의대 정원을 충분히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구단비 기자 kdb@mt.co.kr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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