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구태의연한 ‘냅킨 경제학’ [아침햇발]

이봉현 기자 2024. 2. 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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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월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축구를 보노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떠오른다. 이 뜬금없는 연상작용의 이유를 짚어보니, 둘 다 전술이 없어 보이는 게 닮았다. 유럽파 12명의 최강 진용을 갖고 ‘이렇게밖에 못하나’ 싶은 한국 축구, 철 지난 이론으로 난제를 풀어내겠다는 3년차 대통령의 경제 인식이 고구마 먹은 답답함의 이유였다.

윤 대통령은 올해 들어 연속해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열고 있다. 총선용 냄새가 진한 선심 정책을 쏟아내는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경제관을 강의하듯 피력한다. 요약하면, 감세와 규제 완화로 시장의 활력을 살리면,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가 늘고, 노동자의 소득과 정부의 세수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익숙히 아는 낙수효과 경제학이다. 극소수 투자자만 혜택을 보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주식 양도세 부과기준 상향, 상속세 완화, 집을 여러 채 가진 이가 혜택을 보는 양도세 중과 폐지도 대통령의 경제관에 비춰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금을 깎아주면 오히려 세수가 늘어난다’는 미국 경제학자 아서 래퍼의 주장에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매료됐고, 이는 신자유주의와 결합해 대대적인 감세정책으로 이어졌다. 래퍼는 당시 백악관 실세들과 워싱턴 시내에서 식사하며 냅킨에 세율과 조세수입의 관계를 엎어놓은 유(U)자 모양의 간단한 그래프를 그려 설명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데 감세의 낙수효과 이론은 이런 정책 기조를 채택한 나라에서 예외 없이 불평등이 심해진 데서 보듯, 허구임이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공식화하면서 부자 감세 논란이 “구태의연”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가 저성장, 불평등 심화, 출생률 저하와 같은 시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어떻게 조정하고 조세 및 재정 정책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하면 부자 감세 비판이 아니라, ‘부자가 더 부자가 되면 가난한 사람도 좋아진다’는 신화를 부여잡고 있는 정책 기조가 오히려 구태의연해 보인다.

세상의 흐름은 달라져 시장에 모든 걸 맡기자는 목소리가 잦아들고, 정부의 적절할 역할이 강조된다. 지정학의 변화, 디지털 기술 발전, 기후위기 심화와 같은 메가트렌드(거대한 시대적 흐름)는 시장의 힘을 활용하는 지혜와 함께 정부의 계획과 적극적 대응을 요구한다. 국가의 귀환인데, 그 손에는 산업정책이 들려 있다. 한국 등 아시아의 용들은 산업정책을 잘 활용해 선진국을 추격했다. 지금의 산업정책은 더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모습으로 진화했다. 어떤 산업에 보조금을 주거나 수입 규제를 하는 수준이 아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과 반도체지원법, 유럽연합의 그린딜산업계획과 탄소중립산업법, 일본의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 같은 산업정책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탄소중립이나 청정에너지로의 전환 같은 미래지향적 가치를 분명히 하고, 그 아래 산업 및 에너지 전환 전략과 일자리 창출 방안을 유기적으로 배치한다. 유럽연합이 탄소배출에 깐깐하듯, 산업정책에 무역 규제가 될 만한 요소를 담아 먼저 움직인 쪽이 경쟁우위를 차지하려는 포석도 깐다. 미국이 중산층 강화를, 일본이 노동자 임금 인상을 구체적 목표로 제시했듯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장치도 마련한다.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명시하고, 필요하면 재정적자도 감행하는 등 산업정책을 거시정책과 유기적으로 연동하고 있다.

최근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의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는 조짐이 산업정책 효과라 보긴 이르지만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21년 10월 출범한 기시다 내각은 녹색전환, 디지털전환 등 5대 중점분야를 선정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스타트업 활성화, 가계소득 배증 계획을 마련하는 등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방안을 마련해 시행했다. 이는 앞선 정부의 양적 완화 등과 결합해 경제 전반에 화색이 돌게 했다. 기시다 정부보다 반년 늦게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외부 변화에 허덕허덕 대응했을 뿐, 국제정세와 산업의 변화를 읽고 국가 경제의 전략적 방향을 잡아가는 일을 한 흔적은 별로 없다.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의 방해로 할 일을 못 한다며 총선에서 여당을 다수당 만들어 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계획과 전략이 부실한데 국회의원 수가 많은 게 무슨 소용인가. 총선 국면에서 국가적 비전과 전략을 내놓지 못하는 한심함은 민주당도 매한가지이다. 그렇다 해도 운전대를 잡은 대통령과 여당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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