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크리처'·'외계+인' 죽 쑤는 사이 '이재, 곧 죽습니다' 방방 뜬 이유

박생강 칼럼니스트 2024. 2. 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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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형 강한 한국형 판타지 장르물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2021년은 한국 판타지 장르물의 개벽이 일어난 한 해로 보였다. 넷플릭스 <스위트홈>과 <오징어게임>의 세계적인 성공 이후 한국 장르물은 세계를 제패할 것처럼 보였다. 이후 3년 동안 수많은 판타지 장르물들이 OTT 드라마나 영화로 세계의 대중들과 만났다. 하지만 한국의 장르물은 반짝 화제만 모았을 뿐 국내 대중들에게도 외면당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2021년 <스위트홈>과 <오징어게임>이 성공한 이유는 해외에서 볼 수 없던 독특한 분위기와 감수성 덕이 컸다. 스위트홈의 낡은 아파트 비주얼이 주는 스산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매력이 있었다. <오징어게임>은 반대로 게임장이나 주변 풍경 등이 한국인에게는 친숙한 놀이동산 같았다. 이 작품은 유치하고 알록달록한 색감이 오히려 당시의 트렌드와 맞아떨어지면서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하지만 비주얼만이 아니라 <스위트홈>과 <오징어게임>에 담겨 있는 인간소외나 휴머니즘적인 신파 감수성이 의외로 해외 드라마 팬들의 감수성을 건드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식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쿨톤보다는 웜톤에 가깝다. 그리고 신파의 감수성을 베이스로 그것을 트렌디하고 촌스럽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스위트홈>과 <오징어게임> 시즌1의 성공에는 장르물의 틀에 이 감성을 녹여냈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는 이후 웹툰 시장에서 더 활발하게 변주된다.

반면 두 작품의 성공 이후 한국 콘텐츠는 블록버스터 판타지 장르물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런 이유로 SF나 판타지 장르의 OTT 드라마나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드디어 한국 콘텐츠는 우주도 나가고 괴물도 많아지고 낯선 시공간도 만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세계관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 그저 특수효과 외적인 기술로 기존의 성공한 할리우드 문법을 한국식으로 찍어내는 수준에서 그쳐 버렸다.

아쉽게도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 장르물의 쿨한 정서와 한국 콘텐츠가 만들어내는 신파 감성 정서는 썩 궁합이 맞지는 않아 보인다. 한국식 감성에 어울리는 장르물 비주얼들이 만들어져야 하겠지만 그게 '다 때려 부숴 하하하'류의 거대한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넷플리스 드라마 <경성크리처>나 영화 <외계+인>은 그런 블록버스터 만들기의 실패를 거창하게 답습한 결과다. 두 작품 모두 드라마 배경의 덩치는 굉장히 커졌다. <경성크리처>는 731부대의 역사를 괴물 서사와 결합했고 <외계+인> 조선시대와 현대를 넘나드는 SF와 무협물의 결합이다. 여기에 <경성크리처>는 근대의 분위기를 다크판타지적 공간으로 만들어냈고 <외계+인>은 최상의 특수효과 기술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포장지는 거대해졌지만 정작 드라마의 주인공들의 정서에 이입하거나 캐릭터에 공감할 구석은 별로 없다. 한국 대중들의 눈도 워낙 높아져서 이런 거대 포장지만으로 선뜻 재미있다고 엄지를 치켜들 사람은 없다. 이미지만 다크할 뿐 딱히 세계관이 특별할 것 없는 괴물 서사를 참아가며 의미를 찾을 시청자는 별로 없었다. 컴컴한 극장 안에 죄수처럼 갇힌 채 왜 웃긴 지 왜 화려한지 도통 모르겠는 거대한 이야기를 보는 것도 더는 즐거움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지금 가장 핫한 장르물 판타지는 티빙의 <이재, 곧 죽습니다> 같은 작품이다. <이재, 곧 죽습니다>는 원작 자체도 유명한 웹툰이지만 드라마 역시 몰입도와 재미가 상당하다.

<이재, 곧 죽습니다>는 근대로도 조선으로도 가지 않는다. 두 작품처럼 거대한 스케일로 판을 짜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설정,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지 못한다는 설정. 이런 요소들이 레알 깨알 흥미를 자극한다.

결국 중요한 건 판타지 장르물의 스펙터클이 아니다. 판타지가 거대한 공갈빵인 아닌 현실의 이야기를 칙칙한 방식 아닌 색다른 마법거울로 보여준다는 걸 시청자가 감정으로 느끼면 충분하다.

<이재, 곧 죽습니다>는 2024년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판타지의 방식으로 흥미로운 재미는 물론 위로와 공감까지 전해준다. 한국식 퓨전으로 잘 요리한 판타지면서, 동시에 가장 트렌디하게 현실의 문제들을 터치하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티빙, 넷플릭스, 영화 '외계+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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