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서식처’ 대구 팔현습지 개발…환경부, 책무부터 되새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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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가 좁으니 온갖 개발에 대한 수요는 불가피하다.
팔현습지는 금호강 물길이 대구 달구벌을 통과하면서 잠시 쉬며 한숨 돌리는 곳이다.
서대구 달성습지 화원동산 하식애 밑을 통과하는 탐방로를 만들겠다고 그곳을 안방으로 삼던 수리부엉이 부부를 쫓아내더니, 이제는 팔현습지 하식애마저 강탈할 참이다.
팔현습지 하식애 '숨은 서식처'를 관통하는 '사색 있는 탐방로'라는 것이 부디 비단보자기에 싸인 개똥이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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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김종원 | 전 계명대 교수·‘한국식물생태보감’ 저자
국토가 좁으니 온갖 개발에 대한 수요는 불가피하다. 그렇다 해도 정도껏 하는 것이 ‘사색하는 동물’ 인간의 도리일 것이다. 모름지기 지구 기후변화나 탄소중립이란 말 잔치로 허비할 시간조차 없는 ‘티핑포인트’(상황이 극적으로 돌변하는 시점) 마지막 순간에도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개발 의지는 더할 나위 없이 한층 노골적이다.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청이 주도하는, 금호강 팔현습지 하식애 절벽에 들어설 1.5㎞ 도보교 건설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 팔현습지는 금호강 물길이 대구 달구벌을 통과하면서 잠시 쉬며 한숨 돌리는 곳이다. 그래서 온갖 야생 동식물의 거처가 된 지 오래다. 가까이에 퇴적암 절벽 하식애가 태곳적부터 떡 하니 버텨준 덕택이다. 언덕배기에 있는 인터불고호텔 아래쪽을 지나 아양교 입구에서 일단락짓지만 가파른 벼랑은 무척 후미져 여태껏 사람이 다가선 적이 없다.
팔현습지 하식애는 공룡시대 때부터 있어 왔고, 6400만 년 전 운석이 지구에 충돌하면서 일어난 공룡 궤멸 시대에는 몸집 작은 생물들에게 결정적인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생태학은 그래서 ‘크립틱 헤비태트’(숨은 서식처)라 부르면서 특별히 존귀하게 여긴다. 사실 지구 역사에 다섯 차례 이상 생물종 절멸 사태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생물다양성을 잇는 유전자은행의 역할을 ‘숨은 서식처’가 톡톡히 해왔던 것이다. 오늘날 인류세의 여섯 번째 생물다양성 절멸 사태에도, 특히 인구 과밀의 국가나 도시 권역에서 야생 생물들이 생명줄을 가까스로 잇는 것도 바로 이 ‘숨은 서식처’ 덕택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숨은 서식처’라는 유전자은행이 막무가내로 털리고 있다. 전국적인 현상이다. 서대구 달성습지 화원동산 하식애 밑을 통과하는 탐방로를 만들겠다고 그곳을 안방으로 삼던 수리부엉이 부부를 쫓아내더니, 이제는 팔현습지 하식애마저 강탈할 참이다. 스토리텔링이 넘쳐나는 국보급 유물이 도굴되고 파괴되었던, 윤리가 무너진 구한말의 망국 낌새와 같다.
여행은 스토리텔링을 찾아 나서는 힘든 고행이다. 스토리텔링이 깊고 넉넉한 곳일수록 사람들은 찾고 또 찾아 나선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자연사든 문화사든 스토리텔링의 유산을 훼손하는 짓은 법 이전에 반 윤리다. 어떤 합법적 절차나 합리적 경영논리의 행정 집행일지라도 신토불이 스토리텔링을 지워버리고 티핑포인트 이 시점에 또 시간을 낭비해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서울 한강 밤섬처럼 돈의 가치를 넘어 생태 윤리를 존중하는, 즉 야생에게 땅을 양보하는 것도 남는 장사다. 밤섬이 1998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인간 없는 세상이자 철새와 들짐승들의 땅이 되었고, 서울특별시는 전 세계를 향해 “도심에 있는 람사르습지”라고 밤섬을 자랑한다. 마침내 고급스러운 한강 뷰는 주변 지가와 집값에 큰 영향을 미치고, ‘비(非)사용의 시장가치 극대화’를 낳고 있다. 람사르협약은 말할 것도 없고 생물다양성협약이란 유엔 정신의 현현이다.
팔현습지 하식애 ‘숨은 서식처’를 관통하는 ‘사색 있는 탐방로’라는 것이 부디 비단보자기에 싸인 개똥이 되지 않길 바란다. 맑고 아름다운 국토를 보전해야 할 책무 때문에 환경부가 존재한다. 마땅히 ‘숨은 서식처 국가 목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금호강 팔현습지 하식애 보호에 당장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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