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는 억울한 피해자? 與 ‘김건희 리스크’ 딜레마
해명에도 여론 악화에 與일각 ‘이러다 역풍’ 우려도
(시사저널=박성의·구민주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간 갈등이 봉합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한 국민의힘 내 기조가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이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급격히 줄어든 반면, 김 여사는 몰카 공작의 '피해자'이므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나 총선을 준비 중인 여권 일각에서는 초조함이 감지된다. 당과 대통령실의 해명에도 김 여사를 향한 민심의 온도가 차게 식은 가운데, '김 여사 리스크'가 대통령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치면서다.
비대위 침묵 속 잦아든 '사과' 목소리
한동훈 위원장은 당초 김 여사 논란과 관련해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비슷한 질문에도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의 두 차례 회동을 거치며 미묘한 입장의 변화를 보였다. 서천 화재 현장에서의 만남 이틀 후인 지난달 25일 한 위원장은 관련 질문에 "제가 김 여사의 사과를 얘기한 적이 있었던가요"라고 답했다.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과 157분 회동 이후엔 "더 말씀드릴 내용이 없다"며 민생에 집중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윤-한 갈등의 중심에 있던 김경율 비대위원의 발언도 달라졌다.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와 비교했던 김 비대위원은 해당 비유에 대해 사과한 데 이어, 김 여사를 옹호하기도 했다. 김 위원은 지난달 25일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언급한 후 "더 이상 밝혀질 것이 없다. 자금 흐름이 모두 다 밝혀졌다"고 말했다. 김 여사 명품 가방 논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김 여사의 사과를 요구했던 인사들의 태도도 바뀐 모습이다. 국민의힘 영입 인재이자 경기 수원정 예비후보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김 여사가 경위를 설명하고, 만약 선물이 보존돼 있으면 준 사람에게 돌려준 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던 기존 주장을 번복했다. 대신 지난달 30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사건 내용을 알면 알수록 '이게 덫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덫에 빠진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무조건 주장하는 것은 당사자 입장에서 합당하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이용호 의원은 KBS라디오에 나와 김 여사 관련해 당의 역할이 더 이상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김 여사 문제에 관해서는 대통령실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이고, 당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사과 필요성에 대해서도 "과정 자체가 국민들이 전부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사과를) 하든 안 하든 지지율에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與 거듭된 해명에도 늘어난 '여사 안티'
이러한 분위기 변화를 두고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해 용산과 당이 교통정리를 마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수일 내 윤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에 대해 직접 입장을 내는 대신, 당에선 김 여사 비판과 사과 요구를 자제하는 방향으로 공감대를 이뤘다는 해석이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는 용산과 당의 이 같은 출구전략이 김 여사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달랠 수 있을지 회의적이란 시각도 있다. 윤 대통령의 설명과 국민의힘의 뒷받침으로 사안을 마무리 지을 경우 김 여사가 여권의 '성역'이라는 사실만 재확인되는 거란 분석이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SBS 라디오에 나와 "결국 김건희의 성역만 확인됐다"며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항의하고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서 이제 급부상하나라는 기대감을 잔뜩 실어줬는데, 윤 대통령의 엄청난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다. 김 여사에 대한 문제는 한 위원장이 하나도 받아낸 게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민심'의 추이가 심상치 않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3~25일 전국 성인 1001명을 상대로 전화조사 인터뷰한 결과(1월26일 발표, 신뢰 수준 95%·표본오차 ±3.1%포인트, 응답률 16.7%),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는 직전 조사인 일주일 전(16~18일) 조사 결과인 58%보다 5%포인트 상승한 63%로 나타났다. 긍정 평가는 일주일 전 조사(32%) 때보다 1%포인트 하락한 31%였다.
이른바 보수 텃밭 지역에서도 민심의 변화가 감지된다. 지역별로는 부산·울산·경남(2%p▲, 36%→38%, 부정평가 56%)을 제외한 대다수 지역의 부정평가가 상승했다. 특히 부산·울산·경남과 같이 전주 대비 긍정평가가 상승한 대구·경북(2%p▲, 47%→49%, 부정평가 47%)에서도 부정평가는 전주 대비 8%p 올랐다. 이는 다른 지역들과 비교할 때 가장 큰 폭의 부정평가 상승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부정평가 이유로 '김건희 여사 문제'가 상위권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응답자들은 부정평가의 이유로 '경제/민생/물가'(16%), '소통 미흡'(11%), '김건희 여사 행보'(9%), '전반적으로 잘못한다'(7%), '독단적/일방적'(7%)을 선택했다. 직전 조사에서 '김건희 여사 행보'는 2%를 기록한 바 있다. 일주일 만에 7%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한국갤럽은 "대통령 부정 평가 이유에서 김건희 여사가 최초로 언급된 것은 2022년 6월 중순 봉하마을 지인 동행·팬클럽 등 논란과 함께였고, 그해 9월 목걸이 출처 논란, 김건희 특검법 발의, 영국 여왕 장례식 참석 즈음,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1심 판결에 항소장을 제출한 2023년 2월 등 몇 차례 언급량이 증가한 바 있으나 그 비율은 5%를 넘지 않았었다"고 설명했다.
이대로 괜찮나…與일각서도 '우려'
총선을 69일 앞두고 '김 여사 리스크'가 부상한 가운데, 출마를 준비 중인 여권 후보들 사이에서도 불안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여당과 윤 대통령의 김 여사 옹호가 되레 '역풍'을 부를 경우, 대통령뿐 아니라 당 지지율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단 우려에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1~2주 전만 해도 김 여사 문제를 말끔하게 털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내 우세했는데, 이번 갈등 상황을 거치며 급하게 논란을 마무리하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며 "이러한 모습이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칠지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서울 한 지역구의 국민의힘 당협위원장도 "차라리 (대담 대신) 기자회견을 통해 윤 대통령이 불편한 질문을 가감 없이 주고받는 과정에서 쌓인 오해들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며 "상황에 따라 김 여사가 직접 등판해 결자해지하는 것도 방법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총선이 다가오면서 여권 내 퍼진 위기감, 사과를 촉구하는 국민 여론 등이 (윤 대통령 대담 고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대담만으로 정부‧여당 지지율이 갑자기 상승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진심으로 상처받은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추가적으로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에서 인용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한국갤럽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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