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원, “만들기 40%, 유지관리 60%” 현재진행 예술

서울앤 2024. 2. 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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㉞ 교토 가는 분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숨은 일본 정원 8선

[서울&] [교토, 걸으며 생각하며]

도후쿠지 ‘팔상의 정’ 중 북정의 이치마쓰모요(바둑무늬). 근대 정원 디자인의 걸작으로 꼽힌다.

일본어에서 정원(庭園)은 고대에 식물채집지를 뜻하는 ‘니와’(庭)와 울타리 쳐진 경작지를 뜻하는 ‘소노’(園)가 합쳐진 말이다. 이 니와와 소노가 집 안으로 들어와 제사 장소가 되고, 점차 유락(遊樂)과 예술적 관상의 장소로 변해갔다.

6~7세기 나라시대에 백제 등 한반도의 영향으로 소가(蘇我)씨 등 귀족층 저택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고대 일본 정원은 이후 불교, 도교사상과 융합하면서 일본 특유의 “정신과 자연이 결합한” 자연풍경식 정원으로 발전해가게 된다. 선종사원에서는 돌과 모래를 주로 하는 가레산스이(枯山水)가 탄생했고, 권력층이 된 사무라이계급 사이에서는 웅장하고 호화로운 서원정원이 만들어졌다. 부유한 중간계급으로 성장한 마치슈계층은 다도를 결합한 다정(茶庭)과 노지(露地. 다실의 뜰)를 탄생시켰다. 정치권력을 무사계급에 빼앗긴 왕실에서는 고급 문화살롱으로서 가쓰라리큐나 슈가쿠인리큐 같은 귀족적 미의식을 투영한 궁정별장과 몬제키(門跡) 사원(황족 자제가 출가하거나 주지가 된 절)이 조성됐다. 이런 다양한 정원의 형태는 점차 서민들에게도 전해져, 정원은 근대 이후 계층과 관계없이 가장 일본적인 생활건축문화의 하나로 자리잡게 됐다. 일본에서 정원은 “만들 때까지가 4할, 이후 유지관리가 6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종의 현재진행형 예술행위로까지 높여진다.

교토는 천년고도라는 말답게 일본에서도 특히 보석 같은 정원이 정말 많다. 그 가운데 필자가 가본 곳 중 지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골라 소개한다. 교토 여행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근대정원예술가 시게모리의 걸작”…도후쿠지(東福寺) ‘팔상(八相)의 정(庭)’

근대의 대표적인 정원예술가 시게모리 미레이(重森三玲. 1896~1975)가 1939년 조경한 방장 정원은 20세기의 걸작으로 꼽힌다. 방장 4면을 정원이 둘러싼 형태로 ‘팔상(八相)의 정(庭)’이라고 부른다. 남쪽의 남정은 거석으로 물결을 묘사한 가레산스이정원, 서쪽과 북쪽 정원은 ‘이치마쓰모요’(바둑판무늬)의 정원으로 유명하다. 동정은 석조로 북두칠성을 묘사한 ‘북두의 정’이다. 도후쿠지 탑두(절 안의 절) 용음암(龍吟庵) 방장의 서쪽 정원은 흰모래와 검은 모래로 조성된 진귀한 가레산스이이다.

쇼세이엔 13경 중 두 번째라는 보카카쿠(傍花閣)의 이른 봄.

“교토 도심의 놓쳐서는 안 될 명원”…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쇼세이엔(涉成園)

근대 역사가이자 문인인 라이산요(賴山陽)가 ‘쇼세이엔 13경’을 지었을 만큼 빼어난 풍취를 자랑한다. 약 1만600평의 터에 크고 작은 2개의 연못과 여러 동의 다실, 불당, 서원 등으로 구성된 드넓은 정원이다. 1936년 “문인 취향이 넘치는 사찰정원”이란 평가를 받으며 국가명승으로 지정됐다. 교토 도심에 있어 접근하기도 쉬우니 꼭 구경하기를 추천한다. 연못에 드리운 교토타워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일지 모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들었다는 다이고지 산보인의 지천회유식 정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원”…다이고지(醍醐寺) 산보인(三宝院)

교토 남쪽 다이고지 절의 산보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위세를 업고 건축물들이 새롭게 정비되면서 현재 모습을 갖췄다. 서원 안쪽에 도요토미의 지시에 따라 만들었다는 유명한 지천회유식 정원이 넓게 펼쳐진다. 도요토미 전성기 문화를 가리키는 모모야마 풍의 호사 찬란한 정원이다. 안쪽 침전에는 일본인들이 3대 선반으로 자랑하는 다이고다나 선반이 있다. 우리나라와 악연이 있는 인물의 호사한 정원이어서인지 구경하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난젠지 곤치인 방장 마루에서 본 ‘거북 섬’. 건너편에 학섬이 있다.

“17세기 일본 가레산스이의 대표작”…난젠지(南禪寺) 곤치인(金地院)

난젠지 탑두 곤치인의 방장 정원은 ‘학과 거북의 정원’으로 불린다. 유명한 작정가 고보리 엔슈(小堀遠州)의 작품 가운데 조성 기록(1632)이 있는 유일한 정원이다. 17세기 초의 대표적인 가레산스이 작품으로 당대부터 명성이 높았다. 방장 전면은 신선이 사는 봉래산, 흰모래는 신선이 타고 다니는 보물선과 바다를 상징한다. 바다 위에는 거북이와 학의 섬이 있고 그 사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신사를 향해 절하는 요배석이 놓여 있다. 고보리 엔슈의 ‘진작’이란 점을 염두에 두고 꼼꼼히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정원이다.

다이토쿠지 료겐인의 소형 가레산스이 도테키코(東滴壺). 일본에서 가장 작은 석정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가장 작은 석정”…다이토쿠지(大德寺) 료겐인(龍源院)

비공개가 많은 다이토쿠지 탑두에서 공개 중인 정원 가운데 다이센인과 더불어 료겐인(龍源院)이 빼어나다. 중요문화재인 본당을 둘러싸고 남, 동, 북쪽에 각기 다른 개성의 가레산스이 정원이 있다. 료긴테이(龍吟亭)는 다이토쿠지에서 가장 오래된 선정(禪庭)으로, 16세기 대예술가 소아미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동쪽의 도테키코(東滴壺) 정원은 1960년에 만든 현대의 걸작으로, 일본에서 가장 작은 석정(石庭)으로 꼽힌다. 한 방울의 물이 대해를 이룬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만슈인 입구에서 바라본 실내 정원의 소나무 한 그루. 곳곳에 미의식이 넘친다.

“미의식 충만한 왕자의 개인 정원”…만슈인(曼殊院)

만슈인은 17세기 중반(1656) 미의식이 뛰어난 한 왕자가 왕궁의 건물을 옮겨다 처소로 개조한 것이다. 유명 화가들이 그린 대현관의 ‘죽호도’ ‘공작도’ 등의 그림도 볼만하다. 소서원에는 에도시대 초기 대표적인 작정가 고보리 엔슈 풍의 8창 다실이 있다. 일반 관람자 입장에서는 서원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가레산스이정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만슈인 진입로는 제법 긴 벚꽃나무길이어서 봄에 가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쇼렌인 다실의 장벽화. 쇼렌인 실내에는 볼만한 그림과 글씨가 많다.

“왕궁처럼 격조 높은 몬제키정원”…쇼렌인(靑蓮院)

관광명소인 마루야마공원 아래, 치온인(知恩院) 절 동쪽에 있다. 돌담으로 키를 높인 입구에 장대한 가지를 펼친 녹나무가 인상적이다. 임시 왕궁의 성격도 가진 격이 높은 몬제키사원이다. 연못정원은 무로마치시대 예술가 쇼아미가 지었다고 한다. 왕의 서재로 지은 서원식의 다실인 ‘호문정’(好文亭) 북쪽에는 ‘무도(霧島)의 정’이란 철쭉 정원이 있다. 이것은 고보리 엔슈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호문정 앞 이끼의 정원도 고요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침전은 메이지시대의 궁정풍 건축물로 우아한 기풍을 가졌다는 평을 받는다.

루리코인 서원 2층 옻칠 평상에 드리운 숲 그림자. 사계절 빛의 향연을 펼친다.

“검은 평상에 비친 숲 환상적”…루리코인(瑠璃光院)

교토 히에이잔 산의 야세(八瀨) 계곡 유원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근대 일본의 아름다운 정원이다. 메이지시대에 별장으로 지어졌다가 1920~30년대 새롭게 개축된 정원이다. 서원 2층 마루에 펴놓은 검은 옻칠 평상에 창밖의 자연풍경이 비쳐 일렁이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사계절 빛의 향연을 연출해 많은 사진애호가가 찾아온다. 일본 정원의 고요한 정취가 듬뿍 담겨 있어 혼인보전 등 바둑이나 장기 대국 장소로도 종종 이용된다고 한다.

글·사진 이인우 리쓰메이칸대학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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