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추도비’ 철거가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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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도쿄 특파원 20년 동안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 '군마의 숲' 공원에서 한-일 우호의 상징 역할을 하던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철거됐다.
일본 식민 지배와 침략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사죄를 언급한 오부치 게이조(1937~2000) 전 총리와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1998년)은 지방정부가 소유한 공원에 현 의회의 만장일치로 조선인 추도비를 세울 수 있게 하는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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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김소연
도쿄 특파원
20년 동안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 ‘군마의 숲’ 공원에서 한-일 우호의 상징 역할을 하던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철거됐다.
군마현은 공원을 전면 폐쇄한 속에서 지난 1월29일 추도비 철거를 시작했다. 취재가 봉쇄된 일본 언론은 헬리콥터를 띄웠다. 31일 아사히신문이 상공에서 찍은 영상을 보면, 추도비가 있던 자리는 공터가 됐다. 지름 7.2m 원형 받침과 비문이 붙어 있었던 가로 4.5m, 세로 1.95m 콘크리트 비석은 잘게 부서져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라고 적힌 금속 재질의 비문 등은 따로 떼어 추도비를 세우고 관리해온 일본 시민단체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에 건네졌다.
원형 받침과 비석을 가차 없이 부순 걸 보니, 현은 이 추도비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로 쭉 뻗어 있는 약 4m 높이 금색 탑과 뒤의 콘크리트 비석은 세로로 큰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은 한반도를 향해 있다. 군마라는 낯선 곳에서 희생된 조선인의 영혼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원형 받침에는 길을 잘 찾으라는 듯 나침반이 그려져 있다. 철거 전 추도비 취재 과정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슬프면서도 고마운 마음에 한참을 한반도 쪽을 바라봤다.
일본 패전 50주년인 1995년 군마 시민들은 발로 뛰어다니며 조선인 희생자를 조사했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군마의 광산과 군수공장 등에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이 약 6천여명, 이 가운데 300~500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됐다. 일본의 시민들은 이 아픔을 기억하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2004년 4월 조선인 추도비를 세웠다.
일본 식민 지배와 침략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사죄를 언급한 오부치 게이조(1937~2000) 전 총리와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1998년)은 지방정부가 소유한 공원에 현 의회의 만장일치로 조선인 추도비를 세울 수 있게 하는 힘이 됐다.
이번 추도비 철거는 강제동원 피해자 등 역사문제를 봉합해 버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관계 개선이 한-일 우호는커녕 ‘역사 지우기’를 부추긴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2004~2012년 사이 추도식에서 나온 ‘조선인 강제연행’ 발언으로 우익단체가 반발해 논란이 커졌다고 추도비를 부숴버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동원의 강제성은 일본 정부도 국제기구에서 인정한 내용이다. 2015년 7월 사토 구니 당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일본이 근대 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유네스코 회의에서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밝힌 바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윤 정부는 “한-일 간에 필요한 소통을 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야마모토 이치타 군마현 지사는 “(한국 등) 외교 경로로 뭔가 온 것이 없다”고 했고,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은 “지자체의 결정 사항”이라며 회피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추도비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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