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뒤틀린 시공간…부유하는 감각을 화폭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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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잿빛 연기가 드리운 것처럼 스산하다.
작품 속 장소는 언뜻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바라보면 모두 작가가 상상해낸 허구의 공간임을 깨닫게 된다.
역시 작가의 상상 속 풍경이었다.
장 작가는 "연기처럼 흩어지는, 스쳐지나가는 낯선 감각을 잠깐 붙잡아두고 싶었다. 표현을 할 때도 견고하게 그리는 대신 뉘앙스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기고자 했다"며 "그림이 화폭에만 머무르지 않고 장면 바깥의 현실 세계와 연결되고 확장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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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까지 학고재 갤러리
장재민 작가의 개인전 ‘라인 앤 스모크’가 오는 3월 2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다. 100호 이상의 대작 7점을 포함해 회화 작품 총 22점을 선보인다. 장 작가의 개인전은 지난 2020년 이곳에서 열었던 ‘부엉이 숲’ 이후 4년 만이다.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장 작가는 그동안의 표현방식을 과감히 탈피했다. 같은 풍경화지만 이번 전시작들이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인 이유다. 새로운 도전인 만큼 작품의 전시 연출에도 작가가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묻어났다.
우선 재료가 바뀌었다. 그동안 꾸준히 유화를 그려왔던 장 작가는 유채 물감 대신 아크릴 과슈라는 수성 재료를 처음 썼다. 아크릴 과슈는 유채 물감과 전혀 다른 물성을 지닌 재료다. 일례로 유채 물감은 덧칠을 하면 그 아래 칠한 물감을 덮어버리지만, 아크릴 과슈는 덧칠했을 때 은은하게 비쳐 투명한 듯 불투명한 수채화가 된다. 유채 물감에서 나타나는 광택도 없다. 붓질을 할 때의 마찰감 역시 다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장 작가는 “화가가 재료를 바꾼다는 것은 한국에 살던 사람이 갑자기 외국에 가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업 과정에서 수많은 작품을 버려야 했을 정도로 많은 고통이 따랐다”면서도 “2014년 첫 개인전을 열고 꼭 10년이 됐다. 나도 모르게 관성이 생기는 것을 떨쳐내고자 스스로 모험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 ‘섬’(2023) 연작 2점이다. 벽에는 바다 위 섬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앞으로 테이블 위에 화병이 놓여 있다. 전형적인 정물화 요소다. 그런데 그림 속 바다의 물결이 화면 밖 화병으로 쏟아져 나온다. 역시 작가의 상상 속 풍경이었다. 연작의 또 다른 작품에서는 거꾸로 화병의 기운이 그림 속 섬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장면을 묘사했다. 두 공간의 경계는 모호하다. ‘배’(2023)에서는 어두침침한 테이블 한가운데, 여기가 마치 호수인양 나룻배가 등장해 혼자 훤히 빛난다. 작가의 유일한 취미인 밤낚시의 영향이었을까.
장 작가는 “연기처럼 흩어지는, 스쳐지나가는 낯선 감각을 잠깐 붙잡아두고 싶었다. 표현을 할 때도 견고하게 그리는 대신 뉘앙스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기고자 했다”며 “그림이 화폭에만 머무르지 않고 장면 바깥의 현실 세계와 연결되고 확장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허공에 부유하는 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매체(재료)를 찾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작업”이라며 “다시 유화를 그린다 해도 이전과 같은 방식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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