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겁 많은 산양이 도로변까지 내려온 이유···설악산에서 만나보니
먹잇감 찾으려 내려온 산양들
오색 케이블카 공사 진행되면
서식지 분절과 위험요소 커져
1일 오전 7시50분쯤 강원 고성군 미시령터널 인근 설악산 남사면 절개지에서 산양 두 마리가 부지런히 먹이를 찾았다. 지난해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새끼와 어미는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 모습이 익숙한 듯했다. 불과 몇m 앞 도로로 승용차나 트럭이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풀을 뜯었다. 몇백m쯤 떨어진 옆 능선부의 아프리카돼지열병 예방용 철제 울타리 뒤에서도 산양 세 마리가 먹이를 찾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날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 사무국장과 함께 찾은 설악산 인근 도로 주변에서는 어렵지 않게 산양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미시령과 한계령에서는 차도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절개지와 능선 등에서도 산양들이 눈에 띄었다. 이날 오전에만 2시간30분만에 산양 12마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오전 11시쯤부터는 눈이 쏟아져 더 이상 산양을 만나지 못했다.
현지에서 산양 모니터링을 하는 박그림 대표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부터 열 마리가 넘는 산양들이 거의 매일 미시령과 한계령 등의 도로변에서 관찰되고 있다. 폭설이 자주 내리고, 항상 눈이 쌓여있는 설악산에서 산양이 먹이를 찾아 저지대까지 내려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올겨울처럼 많은 수가 도로변까지 내려오는 것은 이례적이다. 25년째 설악산 산양을 관찰해온 박 대표도 처음 보는 광경이다. 박 대표는 “지난달 24일에는 총 18마리를 관찰했는데, 미시령터널 근처에선 한꺼번에 9마리가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개체들이 차도에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해 로드킬(찻길 동물사고)을 걱정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예방을 위해 세운 철제 울타리가 산양을 도로변으로 내몬다는 분석도 나온다. 설악산 내 산양들의 이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즉 서식지가 파편화되면서 산양들이 먹잇감을 찾기 위해 도로 가까운 곳까지 내려오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시령의 산양 서식지는 철제 울타리로 인해 다른 국립공원 지역과 연결이 어렵다.
환경단체들은 비교적 환경이 좋아 국내 산양 최대 서식지로 꼽혔던 설악산조차도 이제 산양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했다고 주장한다.
또 강원도와 양양군이 추진하는 오색케이블카 공사가 시작하면 소음과 진동 등으로 산양 서식지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근 산양이 다수 나타나는 한계령은 오색케이블카 노선과 인접해 있다. 1일 산양이 확인된 곳과 오색케이블카 노선은 직선거리로 수 ㎞ 거리다. 1000마리 정도로 추정되는 국내 전체 산양 가운데 약 300마리 정도가 설악산에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국장은 “산양들이 한계령 주변 곳곳에서 목격되는 것은 오색케이블카 노선이 산양 핵심서식지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산양이 출현하는 현장에서 산양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들이 확인되고 있음에도 산양 보호 조치는 전무한 상태”라며 “실질적으로 산양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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