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도 집값 폭등···'집부자' 노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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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집값 폭등은 전근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종로의 기와집이 1724년에서 19세기 말까지 50배 가까이 폭등했다.'
1일 서울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 서울의 집·땅값을 보여주는 '조선 후기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1' 자료집을 발간했는데 여기에는 이와 같이 효령대군 후손이 소유했던 한성부(서울) 종로 집의 거래 이력이 담겨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측은 "이는 한성부 집값 상승과 조선 말기 인플레이션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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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 가격 180년새 47배 뛰어
‘서울 집값 폭등은 전근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종로의 기와집이 1724년에서 19세기 말까지 50배 가까이 폭등했다.’
1일 서울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 서울의 집·땅값을 보여주는 ‘조선 후기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1’ 자료집을 발간했는데 여기에는 이와 같이 효령대군 후손이 소유했던 한성부(서울) 종로 집의 거래 이력이 담겨 있다.
매매 문서에 따르면 1724년 집값은 은화 300냥(동전 약 600냥)이었는데 19세기 중반까지 서서히 상승했지만 개항을 거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한성부 종로 집값은 19세기 말 동전 2만 8000냥을 기록했다. 18세기 전반 쌀 1섬은 은화 1∼2냥에 거래됐다. 당시 1섬은 약 80㎏이고 현재 80㎏ 산지 쌀값은 20만원 정도다. 은화 300냥은 현재 4000만 원 이상의 가치로 볼 수 있다.
은화를 동전으로 단순 환산해보면 180여년 만에 4000만 원 정도의 집이 18억 7000만 원으로 47배 가까이 뛴 셈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측은 “이는 한성부 집값 상승과 조선 말기 인플레이션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노비가 자신의 집을 매도한 사례도 있다. 신분을 사비(私婢·개인 소유의 여종)로 기록한 ‘효생’이라는 인물은 지금의 종로 공평동 부근의 기와 5칸, 초가 3칸의 집을 소유했다가 은화 150냥에 매도했다. 노비가 경제 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음을 보여준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부동산을 매매할 때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해 소유권 이전을 분명히 했고, 한성부에서는 부동산 거래를 관리하기 위해 거래 당사자와 증인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공증문서를 발급했다. 소장유물자료집은 서울역사박물관 내 기념품점과 서울시청 지하에 있는 서울책방에서 구매하거나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다.
최수문기자 기자 chs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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