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헌재 “왕실모독죄 개정 시도는 위헌”…전진당 해산 위기
지난해 5월 타이 총선에서 개혁 돌풍을 일으킨 피타 림짜른랏(43) 전 전진당 대표가 왕실모독죄 개정 추진이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으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타이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31일 ‘왕실모독죄의 형량을 줄이는 쪽으로 형법을 개정하겠다’는 그와 전진당의 총선 공약에 대해 “군주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이 재판은 우파 성향 변호사가 전진당과 그를 함께 제소해 열렸고, 헌재는 그와 전진당에 왕실모독죄 개정과 관련한 활동을 모두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타이 헌재는 31일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형법을 개정해 왕실모독죄의 형량을 줄이겠다’는 전진당의 지난 총선 공약은 “군주제를 전복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결정했다고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타이 헌재는 전진당과 림짜른랏 전 대표에게 왕실모독죄 개정과 관련한 활동을 모두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이튿날인 1일에는 르앙끄라이 리낏와타나 전 상원의원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전진당의 왕실모독죄 개정 공약이 입헌군주제에 위협을 가한다며 헌재에 해산 청구를 해달라는 청원을 제기했다.
앞서 지난달 24일 헌재는 언론사 지분 소유를 금지한 선거법 조항 위반 혐의로 그가 제소된 또다른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중 의원 자격이 정지됐던 그는 무죄 선고로 의원 자격을 회복하는 등 정치 복귀의 길이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만에 나온 이번 결정으로 또다시 정치 행보에 발목이 잡혔다.
그는 지난해 5월 총선에서 왕실모독죄 개정에 나서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했다. 타이 형법 112조에 따르면 왕실을 모독하면 1건당 최소 3년에서 최대 15년까지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타이 형법에서 최소 형량이 명시된 건 왕실모독죄가 유일할 만큼, 군주제 및 왕실 비판은 타이 사회의 대표적 금기다. 또한, 타이 국민이라면 누구나 법 위반자를 고소·고발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전진당은 왕실모독죄의 형량을 낮추고 고소·고발도 왕실 관청만 할 수 있게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인권단체에서는 왕실과 군부, 보수 정치인, 기업인으로 이뤄진 기득권층이 왕실모독죄를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고 꾸준히 비판해 왔다. 인권단체 ‘타이의 인권변호사들’은 2020년 7월 대규모 반정부 집회 이후 왕실모독죄로 처벌받은 사람이 모두 262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달 초에도 30살 타이 남성이 군주제에 비판적인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했다는 혐의로 왕실모독죄 관련 사상 최대 형량인 징역 50년형을 선고받았다.
쭐라롱꼰 대학의 티티난 퐁수디라크 교수는 “왕실모독죄를 신성불가침으로 규정한 이번 헌재 결정은 타이 헌정 질서에서 (입헌)군주제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며 “타이가 대중적 지지와 정당성을 인정받는 헌법 질서의 나라가 아니라 군주제의 나라라고 선언하는 격”이라고 말했다고 시엔엔(CNN) 방송은 전했다.
전진당은 지난 총선에서 젊고 개혁적인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하원 의석(총 500석) 중 151석을 얻으며 단숨에 제1당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군부가 지명하는 이들로 구성된 상원(250석) 반대로 총리에 오르지 못했고, 오히려 왕실모독죄 개정 추진 문제 등으로 재판을 받으며 정치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그는 “왕실모독죄 개정은 군주제를 위태롭게 하는 게 아니다”라고 유감을 나타냈다. 그는 “이건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당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 미래의 문제이고 타이 민주주의의 건강성과 미래 우리 정치환경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라고 말했다.
타이에서 개혁적인 정치 세력의 문제 제기가 집권 기득권층에 의해 좌절된 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총선에선 전진당의 전신인 신미래당이 군사정부 반대, 민주주의 복원 등을 기치로 내걸고 광범한 지지를 받아 제 3당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듬해인 2020년 2월 헌재는 신미래당 대표였던 타나톤 쯩룽르앙낏이 당에 돈을 빌려준 것이 정당법 위반이라며 당을 해산하고 쯩룽르앙낏에게는 10년 간 정치활동을 금지한다고 명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많은 학생·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군부 정권 반대와 함께 군주제 개혁까지 주장하는 대규모 집회를 벌이며, 타이 사회 변화를 외쳤다. 신미래당 해산 뒤 림짜른랏을 포함한 신미래당 출신 인사들이 대거 전진당에 들어가면서, 전진당은 신미래당의 실질적 후신 정당이 됐다.
전진당도 신미래당처럼 해산 판결을 받을 우려 또한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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