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뮤지컬 ‘쇼트폼’으로 관객 유입...‘회전문’ 너머 노린다
N차 관람 관객에만 기댈 수 없어진 상황
“업계, 즉각적이고 확실한 효과 체감 중”
“공주님들~” 문지기가 무대 뒤에서 기다리는 공주들을 부른다. 신데렐라가 “네~ 공주 입장” 하고 등장할 순서다. 그런데 “네~” 하는 대답이 무대 뒤가 아닌 무대 앞, 바로 객석에서 터져 나왔다. 돌발상황에 당황한 문지기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즉흥대사(애드리브)로 분위기를 띄운다. “그 공주님 말고요~”
지난달 27일 끝난 뮤지컬 ‘난쟁이들’ 공연 중에 일어난 실제 상황이다. 이 장면은 46초짜리 쇼트폼(짧은 영상)으로 제작되어 지난해 12월 소셜미디어에서 공개된 뒤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배우들의 당황하는 표정과 재치있는 애드리브가 화제를 모으며 공연 제목을 묻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난쟁이들’ 제작사 랑은 “영상이 주목받은 이후 관람 문의가 쏟아져 공연 기간을 1주일 연장했다“며 “영상 공개 이후 객석도 빠르게 매진됐다”고 밝혔다. 뮤지컬에서 쇼트폼 영상으로 관객을 유입한 대표적인 사례가 된 것이다.
요즘 쇼트폼이 뮤지컬의 홍보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뮤지컬도 온라인 홍보가 자연스러운 흐름이 됐지만 쇼트폼 제작은 최근 1~2년 사이 활발해졌다. ‘난쟁이들’은 2015년 초연해 2016년(재연), 2017년(3연), 2022년(4연)을 거쳐 이번이 5연째인데 쇼트폼을 제작한 것은 처음이다. 제작사는 “‘난쟁이들’을 새롭게 홍보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요즘 대세인 쇼트폼을 떠올렸다”며 “공연을 1주일 동안 촬영한 뒤 관객이 좋아할 만한 장면을 선택해 총 17개의 쇼트폼을 제작했다”고 했다.
쇼트폼 홍보는 뮤지컬 업계가 영상을 활용해 다양한 시도를 하던 것에서 진일보한 형태다. 뮤지컬은 2020년을 기점으로 영상을 활용한 홍보활동이 더욱 세분됐다. 2010년대에는 주로 대극장 작품이 ‘넘버(노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면 이제는 중소극장 작품도 활발하게 만드는 식이다. 2020년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것처럼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이는 등 만듦새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한 대형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뮤지컬은 영상으로 만들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았는데, 음원 공개도 활발해지고 공연 영상을 공개하는 것에 거부감도 줄어 다채롭게 변주되는 것 같다”고 했다.
뮤지컬 시장이 ‘보고 또 보는’ 회전문 관객에만 기댈 수 없는 구조가 된 것도 쇼트폼 활용의 한 원인이다. 바이럴을 통한 신규 관객 유입이 절실한 상황이 된 것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을 보면 뮤지컬 티켓 매출은 2022년 4253억원, 2023년 4590억원으로 2년 연속 4000억원을 넘었지만 실제 현장의 사정은 크게 나이지지 않았다.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레베카’ 등 주로 외국에 금액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대극장 라이선스 작품이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한 배우는 “대학로로 대표되는 중소극장 작품에는 관객이 들지 않는다. 평일에는 거리가 한산할 정도여서 조기 폐막도 고려 중”이라며 “뮤지컬이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대극장 라이선스 작품 위주로 흘러가며 양극화 현상을 보인다”고 했다. 올해도 ‘스쿨 오브 락’ ‘마리 앙투아네트’ ‘맨 오브 라만차’ ‘알라딘’ ‘지킬 앤 하이드’ 등 대극장 라이선스 작품에 대거 준비됐다.
이런 상황에서 ‘난쟁이들’이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관객을 유입한 것은 의미가 있다. ‘난쟁이들’이 쇼트폼 효과를 본 이후 에이치제이(HJ)컬처도 화가 시리즈인 ‘모딜리아니’와 ‘에곤쉴레’, ‘장화신은 고양이’의 쇼트폼을 제작했다. 에이치제이 컬처 한승원 대표는 “‘난쟁이들’ 사례는 공연계 전체를 놀라게 했다”며 “쇼트폼 활용이 중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절박함이 없었는데 즉각적이고 확실하게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중요한 마케팅 창구라는 사실을 업계가 깨닫고 있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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