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도 ‘집 부자’ 있었다, 조선시대 부동산 폭등 담긴 계약서 보니
효령대군 후손 살던 종로 기와집, 180년간 47배 뛰어

서울역사박물관이 조선시대 서울의 집·땅값과 당시 사람들의 경제활동 기록을 보여주는 ‘조선 후기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1′ 자료집을 발간했다고 1일 밝혔다.
조선시대에도 부동산은 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때문에 부동산을 매매할 때는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이 자료집엔 304점의 조선 후기 서울 중·동부 지역의 부동산 거래 문서가 수록됐다. 한성부 집값 상승과 조선 말기 인플레이션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효령대군의 후손이 소유했던 종로의 기와집의 거래 이력에는 약 180년간의 부동산 가격 상승 추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1724년 은화 300냥(동전 약 600냥)이었던 집값은 19세기 중반까지 서서히 상승하다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동전 2만8000냥으로 47배 가까이 폭등했다.
18세기 전반 쌀 1섬은 은화 1∼2냥에 거래됐다. 당시 1섬은 약 80㎏이고 현재 80㎏ 산지 쌀값은 20만원 정도다. 은화 300냥은 현재 4000만원 이상의 가치로 볼 수 있다. 은화를 동전으로 단순 환산해보면 4000만원 정도의 집이 18억7000만원으로 뛴 셈이다.
매물의 거래 내역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과거 계약서에 새 계약서를 풀로 이어 붙이는 방식을 썼다. 때문에 동대문 외곽의 한 농지를 거래한 매매문서의 경우 1609년부터 1765년까지 모두 36점이 이어붙여져 있어 길이가 12미터에 달한다.
노비가 자신의 집을 매도한 사례도 있다. 신분을 사비(私婢·개인 소유의 여종)로 기록한 효생이라는 인물은 지금의 종로 공평동 부근의 기와 5칸, 초가 3칸의 집을 소유했다가 은화 150냥에 매도했다. 노비가 경제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재산을 소유했음을 보여준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올해 중 한성부 서부·남부·북부 소재 토지·가옥 매매문서 200여 점을 수록한 소장유물자료집 2편을 이어서 발간할 예정이다.
소장유물자료집은 서울역사박물관 내 기념품점과 서울시청 지하에 있는 서울책방에서 구매하거나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https://museum.seoul.go.kr/)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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