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수 있는건 다한다'는 필수의료대책…구체화·재원 마련 관건
건보 재정 적자로 돌아서는데, 재원 마련 가능할지 의문
'10조원 보상'으로 의사들, 필수의료 분야로 갈지도 관건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권지현 기자 = 정부가 1일 내놓은 '4대 개혁 패키지'에는 의료인이 진료에 집중할 안정적 환경을 조성하고 보상을 강화해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정부는 이번 정책 패키지에 의료인의 의료사고 법적부담 완화를 위한 형사처벌특례법 도입, 필수의료 보상 강화 등 의료계의 요구를 대폭 반영하면서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포석을 깔았다.
다만 정책패키지가 추진하는 방향성이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은 남는다.
예민한 사안은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이하 특위)에서 논의하겠다고 넘긴 탓에 구체적인 일정이나 재원 마련의 청사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향성은 바람직하나, 구체성 떨어져…어떻게 실행할지가 관건
정부는 이날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해법으로 ▲ 의료인력 확충 ▲ 지역의료 강화 ▲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 4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의대 지역인재전형 확대와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도입, 보험·공제 가입 시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 적용,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이 주요 내용이다.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확대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의대 교육의 질 향상, 전공의 수련 및 근무 환경 개선 등도 추진한다. 필수의료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국립대병원의 교수 정원을 대폭 늘리는 안도 마련됐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정부 정책의 방향성을 바람직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구체화해 실행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공개된 '기본 골격'만으로는 실효성을 판단하기조차 쉽지 않으므로 향후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이번 정책의 방향성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지금 공개된 것만으로는 구체성이 떨어진다"며 "범위는 좁더라도 훨씬 더 세부적인 안을 내놨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역의료 투자나 지역인재 전형 등은 각 대학의 의대 정원 배정과 연계될 수 있는 만큼 더 다듬어 공개했어야 한다고 봤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 분을 지역인재 전형에 활용하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비율은 공개하지 않았다.
또한 정부는 필수의료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자 국립대병원 교수 정원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했는데, 자칫 수도권과 비수도권 또는 광역시와 기타 시도 국립대 사이의 격차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정백근 경상국립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수도권에 있는 국립대병원 교수 정원도 같이 확대한다면 지방 국립대병원의 상황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며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가 의료사고 특례와 비급여 제도 개선, 지역필수의사제 등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특위에서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신속한 입안이 가능하겠냐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김윤 교수는 "특위에서 논의한 내용을 정부가 받아서 다시 정책으로 구체화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지 않으냐"며 "안전하게 가려다 정부가 실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필수의료를 선택하는 실질적인 유인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 수가를 집중 인상하기 위해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필수의료를 선택하는 전공의에 대한 보상도 강화하기로 했다.
필수의료 분야 의사가 보상 강화를 피부로 느낄 정도의 수가 인상이 가능한지, 의사들이 수가 인상 등의 보상책만으로 필수의료 분야로 갈 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정부는 올해부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에게 지원하는 월 100만원의 수련보조수당을 향후 산부인과와 외과계 전공의에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데, 정작 의료계에서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한 달에 돈 100만원을 더 받으려고 (학생들이) 산부인과를 선택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소아청소년과는 전공의에 대한 수련보조수당 지급 정책이 알려진 후에도 여전히 전공의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10조원+α' 투입…"재정 우려" vs "재원 조달은 앞으로 고민할 부분"
정부가 필수의료 수가를 올리기 위해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만큼 재정 부담도 만만치 않다.
필수의료에 대한 보상 대부분이 건강보험 수가를 통해 이뤄지는데, 건보의 재정 전망 자체가 밝지 않아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3~2032년 건강보험 재정전망'에 따르면 현행 보험료율 인상 수준이 유지될 경우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올해 적자로 전환된다. 2028년에는 누적 준비금(적립금)마저 소진될 것으로 예측됐다.
수가를 올려달라고 오랫동안 요구했던 의료계에서도 건보 재정으로 모두 충당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표한다.
김재연 회장은 "(정책에) 재원 마련에 대한 방안이 하나도 없다"며 "다른 지원 없이 모두 건보 재정을 가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는 단계인 만큼 재정 부담을 어떻게 덜 수 있을지, 추가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지는 차츰 구체화하면 된다는 시선도 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실질적으로 얼마큼의 재원을 뒷받침할 수 있느냐에 대한 부분은 앞으로 해야 하는 거지, 그게 안 된다고 해서 정책 자체를 하지 말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며 방향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면서 필수의료 회생을 위해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고민해 담아낸 흔적이 엿보인다고 했다.
그는 "필수의료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대 증원이 필요조건이고 (정책적 지원 같은) 나머지 충분조건이 충족돼야만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정책이 정부로서 할 수 있는 거의 '베스트'라고 본다"며 "공공이 개입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균형 있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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