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못 피한 사람 있을 수도”... 두 소방관, 불길 속에 뛰어들었다
두 소방관 시신, 5m 떨어진 곳서 발견
함께 진입 동료들은 창문으로 탈출
1일 오전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육가공 업체 공장. 매캐한 탄 냄새가 공장 300m 앞까지 진동했다. 주차 후 현장 가까이 접근할수록 탄내가 심해 마스크를 써야 했다. 현장 주변엔 잔불을 진화하기 위해 소방관 약 50여명이 교대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들의 얼굴과 양손, 소방복 곳곳은 진화 과정에서 묻은 재로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전날 오후 7시 47분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 이 공장에서 인명을 구하려 들어간 문경소방서 소속 김수광(28) 소방교와 박수훈(36)소방사 등 2명이 순직했다.
화재 현장에는 침묵이 가득했다. 물 먹은 골판지처럼 으스러진 공장 건물에서 소방관들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잔불을 끄기 위해 호스를 잡았다. 한 소방관은 소방 장비에 탑승해 건물 3층 높이까지 올라간 뒤 소방용수를 건물 내부로 쏘고 있었다. 또 다른 소방관은 포크레인을 가동해 수시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정리했다.
현장에서 만난 소방 관계자는 “재발화하지 않도록 남은 불씨를 완전히 꺼뜨리고 있다”면서 “모두가 동료를 잃은 슬픔과 미안함을 견디는 중”이라고 했다. 지역 주민 정모(63)씨는 “뉴스를 보고 현장에 와 봤다”며 “소방관 두 명이 사람 살리려다 순직했다던데 자식 잃은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순직한 김 소방교와 박 소방사는 119구조구급센터 소속으로 전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이들은 공장에서 사람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내부에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 동료 2명과 함께 수색에 돌입했다고 한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불길은 공장 내부 3층 작업장 내 튀김 기계 인근에서 처음 발화했다고 한다. 김 소방교 등은 출입구를 통해 공장 내부로 진입한 뒤 1층을 거쳐 3층까지 계단을 타고 인명 수색을 했다. 하지만 공장에 진입 후 불길이 갑자기 확산되면서 이들은 고립됐다. 설상가상으로 공장 건물까지 붕괴되면서 탈출이 힘들어진 것으로 소방 측은 추정하고 있다.
탈출 과정에서 함께 진입한 동료 2명은 창문으로 탈출했지만 김 소방교 등은 결국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로 5~7m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소방관 외에 다른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불이 난 공장은 연면적 4319㎡에 4층 철골 구조 건물로 지난 2020년 5월 사용허가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감식 등을 통해 화재 원인과 사망경위 등에 대해 명확히 조사할 방침”이라며 “부검 여부는 유가족 의사를 고려해 판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순직한 김 소방교는 2019년 공채로 임용된 이후 지난 해엔 인명구조사 시험에도 합격해 구조대에 자원했다. 동료들은 “평소에도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사명감이 있던 친구”라고 말했다.
박 소방사는 특전사로 복무하던 중 구조분야 경력 채용에 지원해 임용됐다. 박 소방사는 생전에 소방관이 된 이유에 대해 “사람을 구하는 일로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답했다. 미혼인 박 소방사는 “나는 소방과 결혼했다”고 동료들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경북소방본부는 순직한 두 소방관에 대한 장례를 준비하고 국립현충원 안장, 1계급 특진 및 옥조근정훈장 추서를 추진할 방침이다. 영결식은 문경실내체육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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