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 전철 밟나…비만치료제, 치매·알콜 중독까지 고친다?
노보노디스크, 임상시험 2건 진행중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비만치료제가 치매의 주원인인 알츠하이머병 치료에도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수용체 작용제로 불리는 이 약물이 간, 신장, 심장 등 다양한 장기에 발생한 염증을 줄여주는 효과에 근거한 판단이다. GLP-1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조절하고, 포만감을 불러 식욕을 억제하는 데 관여하는 호르몬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특히 이 약물의 염증 완화 효과가 뇌에도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병 치료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현재 GLP-1 수용체 작용제는 오젬픽(당뇨병 치료제)과 위고비(비만 치료제)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의 세마글루타이드, 마운자로(당뇨병 치료제)와 젭바운드(비만치료제)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미국 제약업체 일라이릴리의 티르제파타이드의 주성분이다.
네이처는 ‘셀 메타볼리즘’, ‘약학 연구’(Pharmacological Research) 등 국제학술지에 발표되거나 언급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지금까지 확인된 비만치료제 약물의 염증 완화 효과를 소개했다. 지난달 ‘셀 메타볼리즘’에 발표된 논문의 공동저자인 캐나다 토론토대 다니엘 드러커 교수(내분비학)는 네이처에 “이 약물이 어쩌면 기존 약물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거의 모든 장기에서 염증 감소 효과
네이처에 따르면 2021년 공개학술지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에 발표된 한 동물 실험에서는 리라글루타이드(liraglutide)라는 이름의 GLP-1 수용체 작용제가 지방간이 있는 쥐의 간 염증을 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선행연구(2015년 간학연구)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관찰됐다.
또 생쥐를 대상으로 한 다른 실험에서는 리라글루타이드가 신장과 심장에서의 항염증 효과 가능성이 확인됐다. GLP-1 자체도 비만 및 당뇨병 질환을 앓고 있는 쥐의 지방 조직에서 염증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드러커 교수는 “그동안의 동물과 인간 연구를 통해 볼 때, GLP-1은 거의 모든 장기 조직에서 염증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약물이 유발하는 체중과 혈당 감소는 염증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약물은 체중 감소가 가시화하기 전에 항염증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항염증 효과를 내는 별도의 기제가 작용한다는 걸 시사한다.
드러커 교수팀은 GLP-1 수용체가 면역세포에는 부족하지만 뇌에는 풍부하다는 점에 그 단서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생쥐에게 전신 염증을 유도한 뒤, GLP-1 약물을 여러번 투여했다. 그러자 생쥐의 염증 상태가 호전되는 모습이 관찰됐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이나 약물을 이용해 생쥐의 뇌에서 GLP-1 수용체를 차단하자 GLP-1 약물은 염증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내지 못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나이겔 그레이그 박사(약리학)는 네이처에 “이는 적어도 생쥐에서는 GLP-1 수용체를 통해 항염증 효과가 직접 나타나며, 이는 뇌에 의해 매개된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실제로 뇌에 전달되는 약물의 양은 매우 적었다. 그럼에도 뇌에서 항염증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상상할 수 없는 영역까지 적용 범위 확대”
이런 항염증 효과는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두 질환은 모두 현재 치료법으로는 효과적 치료가 어려운 신경계의 염증을 특징으로 한다. 또 알츠하이머병의 베타 아밀로이드, 파킨슨병의 알파 시누클레인 같은 병리적 단백질은 뇌의 특정 수용체와 상호작용해 염증을 유발한다.
그레이그 박사는 그러나 GLP-1 수용체 작용제는 뇌의 염증을 억제해 뉴런이 계속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노보노디스크는 비만치료제인 세마글루타이드를 초기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쓸 수 있는지 알아보는 2건의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비만치료제는 파킨슨병 환자에게도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몇년 전 임상시험을 통해 엑세나타이드(exenatide)라는 GLP-1 수용체 작용제가 파킨슨병 환자의 운동 능력을 높여주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현재 더 많은 파킨슨병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연말까지 임상시험을 완료할 계획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GLP-1 약물에 특별히 심각한 부작용이 없다는 점을 들어, 이 약물의 적용 범위가 더 넓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레이그 박사는 네이처에 “염증 성분이 있는 질환은 매우 많다”며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는 경우 이러한 질환에 대해 이런 약물을 써보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비만치료제는 심장질환자의 심부전 증상을 완화시키고 심장마비 및 뇌졸중 위험을 낮추는 효과도 확인됐다. 또 비만과 당뇨병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동안 와인과 담배에 대한 갈망이 줄어든다는 보고에 따라 약물 중독에 대한 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해 말 비만치료제를 2023년 최고의 과학 성과로 선정하면서 “비만치료제가 애초엔 상상할 수 없었던 영역으로 약물의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박정훈 “김계환 사령관에게 충성으로 보답했는데 가슴 아프다”
- 윤 대통령, 오는 7일 특별대담…KBS 녹화 방영 예정
- 군마현, ‘강제동원 조선인 추도비’ 산산조각 냈다
- 중대재해법, 2년 유예 없이 ‘현행대로 시행’
- “누군가의 크리스마스 위해”…휴일도 반납했던 청년 소방관들
- 주호민, 승소에도 “학대당한 사실 재확인한 것뿐…마음 무거워”
- 유죄 손준성, 검찰은 ‘비위 없음’…면죄부에 검사장 승진까지
- ‘분당 흉기난동범’ 최원종 무기징역…“공공장소 테러 공포 일으켜”
- 2900만원 돈다발이 쓰레기 매립지서…‘이것’ 덕분에 주인 찾아
- 지적장애인 10년 무임금 노동 의혹…농장주 “일 아니라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