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마카세·2100년 온천… 호젓한 일본을 만나다

김무연 기자 2024. 2. 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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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다른 매력’ 규슈 사가현
딸기·대게·김·차 ‘식자재 보고’
양조장·차밭·농장서 이색체험
고급·세련된 료칸으로 차별화
탁 트인 객실서 1인 스파 가능
원조 별마당도서관·규슈 올레길
韓과 인연 깊은 명소들도 다양
사가현 우레시노시에서 진행하는 ‘티 투어리즘’에서 ‘차 컨시어지’가 우레시노시의 다양한 차를 알맞은 온도에 맞춰 내리고 있다.

사가현=글·사진 김무연 기자 nosmoke@munhwa.com

일본 규슈(九州) 북서부의 사가(佐賀)현은 ‘숨겨진 보석 상자’다. 한 해 700만 명이나 일본을 찾아 ‘일본통’이 된 한국인들도 느껴보지 못한 다채로운 매력이 인구 80만의 작은 현에 꼭꼭 담겨 있다. 다양한 고급 온천 료칸을 보유한 후루유·다케오 마을은 온천 마을의 대표 격인 벳푸(別府)·유후인(由布院)과는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중앙의 사가 평야를 중심으로 북으로는 대한해협을, 남으로 아리아케만을 끼고 있어 농·수산물이 풍부해 ‘식자재의 보고’라 불리는 이곳의 식문화도 흥미롭다. 한반도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곳곳에 ‘한국 문화’가 펼쳐진 점도 재미를 더한다. 도쿄(東京)의 화려함, 오사카(大阪)의 번잡함, 후쿠오카(福岡)의 익숙함을 피하고 싶은 이들에게 사가현은 매력적인 선택지다.

◇ 모던과 전통의 중도를 찾다…사가현의 자랑 ‘프리미엄 료칸’

일본 현지에서 사가현은 벳푸, 유후인 등 온천 도시를 보유한 오이타(大分)현에 견주는 온천의 대명사로 통한다.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노인이 연식 있는 가옥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일반적인 ‘료칸’의 이미지와 달리 사가현의 료칸은 정부와 사가현이 지원 사업으로 대부분 리모델링을 진행해 고급스러움과 편리함, 세련됨과 깔끔함을 모두 끌어올려 차별점을 뒀다.

사가현에서 손꼽히는 온천 마을은 사가시에 있는 ‘후루유 온천마을’이다. ‘오래된 탕’이라는 뜻의 후루유 온천은 약 2100년 전 중국 진나라 시황제의 명령을 받아 불로장수의 약초를 구하러 온 서복이 발견했다고 한다. 마을 초입에 자리한 료칸 ‘온크리’는 ‘누루유’(ぬる湯)로 유명하다. 누루유 온도는 체온과 비슷한 약 38도의 온천수로 장시간 즐겨도 몸에 부담이 없어 노인이나 어린아이가 즐기기도 안성맞춤이다. 대욕탕에는 큰 노천탕과 함께 족욕탕, 냉탕 등이 준비돼 있다. 몸을 덥히며 하늘에 흐드러진 별 무리를 감상하는 것은 인공적인 빛에 중독된 현대인에게 신선한 경험이다. 이외에도 1인 사우나, 모래찜질방 등 다채로운 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 객실은 거실과 침실이 분리돼 있을 정도로 넓다. 통창으로 보이는 거대한 삼나무 숲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안으로 들어왔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다케오시의 ‘다케오 온천’은 13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보습이 뛰어나 예로부터 ‘미인 온천’이라 불렸으며, 일왕이나 다이묘(영주)들도 다케오 온천을 즐기기 위해 방문했다고 한다. 다케오시의 ‘우라리 다케오’는 호텔을 전면 리뉴얼한 고급 리조트형 료칸이다. 객실마다 개인 욕실이 있어 24시간 온천욕을 즐기며 창 너머로 이케노우치 저수지를 감상할 수 있다. 4층에서는 온천 스파를 비롯해 건식 사우나, 습식 사우나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탁 트인 온천 스파에서 동틀 무렵의 황금빛 저수지를 내려다보는 호사는 이곳에서만 가능하다. 온천욕이 끝나면 2층에 구비된 안마의자로 피로를 풀 수 있다. 같은 층에 있는 투숙객 전용 라운지 바에서 위스키, 와인, 일본 전통주를 비롯한 주류와 하몽, 치즈, 쿠키 등 안주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사가현 남부의 작은 마을 ‘다라’에 위치한 ‘가니고텐’은 객실마다 노천탕이 준비돼 아리아케만의 별 바다를 맥주 한 캔과 곁들이며 즐길 수 있다. 별관의 사우나와 대욕탕, 노천탕에서 보는 아리아케만의 일출과 일몰도 장관을 이룬다. 무엇보다 가니고텐의 정수는 이름답게 ‘게(가니)’ 요리다. 가니고텐은 저녁 한 상 차림으로 다케자키 게를 활용한 구이, 찜, 솥밥 등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사가현 다라시의 프리미엄 료칸 ‘가니고텐’에서 저녁 한 상 차림으로 게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를 제공한다. 가니고텐 제공

◇ 한국과 인연 깊은 사가현… 한국인을 사로잡는 사가현의 관광 명소

대한해협을 끼고 한반도와 마주하고 있는 사가현은 한국과 인연이 있는 명소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가라쓰(唐津)시에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 침략을 위한 근거지로 사용했던 나고야(名護屋) 성터가 남아 있다. 일본 3대 도시 나고야(名古屋)의 성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전쟁이 끝난 뒤 나고야성은 해체돼 다른 성의 재료로 사용돼 지금은 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성터 옆 ‘나고야성 박물관’은 임진왜란 역사와 더불어 한반도와 사가현이 주고받은 문화 전반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돌하르방과 장승, 전시된 거북선과 이순신 장군 영정은 반갑기까지 하다.

다케오시의 랜드마크인 시립도서관은 공공성과 상업성을 모두 잡는 복합공간으로 서울 삼성동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의 모티프가 됐다. 산을 병풍처럼 두르는 벽돌 건물 안은 목재 서가와 조명의 은은함으로 채워졌고, 2층은 곡선으로 휜 책장이 30m 가까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다. 내부에는 유명 커피 브랜드인 ‘스타벅스’와 일본 최대 서점 체인인 ‘쓰타야’가 입점해 있다.

사가현 동부에 있는 요시노가리 역사공원은 일본 야요이 시대의 말기 마을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유물 전시실에 있는 세형동검, 항아리를 이어 만든 옹관열묘 등에는 한반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담겨 있다. 임진왜란 당시 끌려간 조선의 도공 이삼평을 도조(도자기의 시조)로 모시는 아리타의 ‘스에야마 신사’, 제주 올레길을 모티프로 개발한 규슈 올레길 코스도 즐길 거리다.

사가현 사가시 후루유 온천마을의 프리미엄 료칸 ‘온크리’의 대욕탕에 있는 노천탕에선 삼나무 숲과 하늘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온크리 제공

◇ 경험으로 승화한 맛…사가현의 다양한 체험 활동

남북으로 바다를 접하고 가운데로 넓은 평야를 이룬 사가현이기에 다채로운 식자재가 넘치는 축복을 받았다. 사가현은 이 축복을 다양한 체험 활동으로 변주를 줬다.

쌀이 풍부한 사가현은 술의 고장이다. 식량용 쌀 외에도 술을 빚기 위해 키우는 ‘야마다니시키’라는 쌀 품종을 별도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가현의 명산 ‘덴잔(天山)’ 아래 자리 잡은 덴잔주조는 150년 역사를 자랑한다. 덴잔주조에선 양조장을 운영하는 시치다 가문의 이름을 딴 ‘시치다’와 일본주 브랜드 ‘덴잔’ 등 다양한 술을 시음할 수 있다. 가시마(鹿島)시에 있는 JR히젠하마역의 역사에는 가시마 지역의 일본주를 한곳에 모아놓은 ‘하마BAR’가 반긴다. 이곳에선 가시마 지역의 대표 양조장 5개의 대표 일본주를 한 잔씩 시음할 수 있다.

5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우레시노(嬉野)시의 차를 ‘티 투어리즘’으로 즐기는 것도 좋은 선택지다. 차밭 중턱에 놓인 단상에 앉아 서늘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차 컨시어지’가 적정한 온도의 물로 내려주는 차를 우레시노 명장들이 만든 디저트와 함께 즐기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쉽게 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딸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사가현 남부 시로이(白井)시에 있는 기시카와 농원은 오감만족을 선사한다. 제한 시간 40분 안에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8종의 딸기를 맘껏 따서 먹을 수 있다. 다 익어도 흰색을 유지해 ‘맑은 눈(淡雪)’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아와유키’, 혀끝이 녹을 정도로 단 ‘아마오토메’ 등 한국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딸기의 향에 취해보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다.

■ 여행 팁

티웨이항공에서 인천국제공항과 사가국제공항을 잇는 직항 항공편을 매일 1회씩 운행하고 있다. 3월부터는 주 3회 운행한다. 후쿠오카공항으로 들어가도 버스로 1시간이면 사가현의 중심 도시 사가시에 도착할 수 있다. 후쿠오카 하카타 역에서도 버스는 1시간 남짓, 기차로는 40분이면 닿는다. 다만, 사가현은 후쿠오카현과 달리 대중교통이 취약하기 때문에 사가현 곳곳을 둘러보려면 차를 빌려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사가현은 서울 기온이 영하 10도 안팎을 오가는 한파가 몰아칠 때 낮 최고 기온이 10도를 넘어설 정도로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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