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에 화재” “헤일리 자해”… 거짓신고 ‘스와팅’ 표적 된 미국 정가[Global Focus]
선거 관련된 정치인·판사 대상
지난해 11월부터 총 27건 발생
최근 “헤일리 딸 피 흘려” 신고
경찰·응급구조대 출동 해프닝
단순 괴롭힘·공권력 낭비 넘어
경찰-피해자 충돌 사망사고도
“상대 겁줘 침묵시키려는 의도”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지난 1월 14일(현지시간) 오후 10시 미국 워싱턴DC 메트로폴리탄 경찰은 한 남성이 여자친구를 총으로 쏜 뒤 자살하겠다는 내용의 협박 전화 신고를 받고 긴급출동했다. 해당 장소는 워싱턴DC에서 잘 알려진 연방법원 판사 자택이었다. 하지만 11분 뒤 모든 인력투입을 즉시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경찰보고서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통령선거 결과 전복 의혹사건을 담당하는 타나 처트칸 판사 소유였던 해당 집에는 한 여성이 혼자 있었고 다친 곳은 전혀 없었다.
연방 공휴일(마틴 루서 킹 데이)이었던 다음 날 오전 7시 3분에는 백악관에 화재가 발생했고 누군가 안에 갇혀 있다는 전화가 911로 걸려 왔다. 여러 대의 소방차와 응급구조대가 백악관으로 출동했다. 해당 신고는 ‘스와팅’(swatting)으로 확인됐고 오전 7시 15분 무전기에서는 “모두 이상 없음”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주말을 보내 백악관에 없었다.
◇헤일리 등 반트럼프 진영에 스와팅 피해 집중돼 = 1일 로이터통신·CNN 등에 따르면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서는 가짜 범죄·응급신고로 속여 중무장한 경찰 특수기동대(SWAT)를 정치인 집이나 사무실로 출동시키는 스와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후 미국 내에서 정치인과 판·검사, 선거 관계자를 대상으로 발생한 스와팅 사건은 최소 27건에 달한다. 올해 대선을 꼭 1년 남겨둔 시점부터 정치인 등을 상대로 한 스와팅 사건이 급증한 셈이다. 사흘 새 두 차례 연거푸 스와팅 표적이 된 공화당 경선 주자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대표적 사례다. 1월 1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카운티 보안관실은 헤일리 전 대사의 딸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고 헤일리 전 대사가 총으로 자해하겠다고 위협한다는 911 신고를 받고 키아와섬에 있는 자택으로 출동했다. 로즈라는 신고자는 자신이 지금 헤일리 전 대사와 통화 중이라고 주장했으나 허위 신고였다. 이틀 전인 지난해 12월 30일에는 트래비스라는 신고자가 911로 전화해 자신이 헤일리 전 대사 집에서 여자친구를 총으로 쐈으며 자해하겠다고 주장해 경찰이 출동했다.
미 정계에서 가장 최근 스와팅 사건 피해자가 된 인물은 공화당 하원 3인자 톰 에머 원내총무였다. 그는 1월 26일 X를 통해 “오늘 밤 나와 가족은 911 허위 신고 전화로 경찰이 집으로 잘못 출동하는 스와팅 사건의 표적이 됐다”고 밝혔다. 스와팅은 헤일리 전 대사, 에머 원내총무 등 공교롭게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반대파로 불리는 인물들에게 집중됐다. 당내 온건 중도파인 에머 원내총무는 지난해 하원의장 선출 당시 ‘허울만 공화당원’을 뜻하는 ‘라이노’(RINO)로 지목된 바 있다. 이 밖에 수정헌법 14조 위반을 이유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자격이 없다고 결정한 민주당 소속 셰나 벨로스 메인주 국무장관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기대출 혐의 재판을 맡은 아서 엔고론 뉴욕 맨해튼지방법원 판사 역시 스와팅 피해를 겪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결과 전복 의혹사건과 기밀문서 유출사건 등을 수사한 잭 스미스 특별검사 등도 표적이 됐다. 벨로스 장관은 스와팅 사건에 대해 “겁을 줘 침묵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세력을 겨냥한 스와팅 사건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공화당 내 대표 트럼프 충성파로 꼽히는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지난해 크리스마스까지 무려 8차례 스와팅 피해를 당했고, 한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 후보로 꼽히기도 한 릭 스콧 상원의원도 피해자가 됐다. 주 의사당·청사 등을 겨냥한 스와팅도 발생했다. 1·6 의사당 난입 사태 3주년을 사흘 앞둔 1월 3일 코네티컷·조지아·켄터키·미시간·미시시피·몬태나 등 최소 6개 주에서 의사당 등에 대한 폭탄테러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건물을 폐쇄하고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허위 신고로 확인됐다.
◇장난 전화서 인공지능(AI) 활용까지 진화, 피해자 사망도 = 스와팅은 장난 전화에서 시작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2008년 웹사이트에 신종 범죄의 하나로 스와팅이라는 용어를 처음 게시했다. 범죄학자들은 개인적·사회적 불만이나 학교·사업장 운영 방해, 법 집행 자원을 유인해 다른 범죄로부터 관심 돌리기, 금전적 이득 등을 주된 동기로 분석했다. FBI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스와팅은 주로 톰 크루즈나 저스틴 비버, 킴 카다시안 등 유명 연예인에 집중됐다. 하지만 2020년 대선 이후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반대파 정치인을 겨냥한 스와팅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스와팅 피해가 확산함에 따라 FBI는 지난해 6월 별도 추적을 위한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동일인이 여러 사건에 책임이 있는지 추적 중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인터넷기술로 스와팅 사건 범인 적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오렌 시걸 반명예훼손연맹 극단주의센터 부회장은 CNN에 “(스와팅은) 현대기술을 이용하는 오랜 수법”이라며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값싸고 손쉽게 범죄를 감출 수 있다”고 말했다.
스와팅 범죄를 위해서는 먼저 피해자 집이나 근무지를 알아내야 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신상 털기와 병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분을 숨기기 위해 발신번호를 속이는 발신자 신원 스푸핑(신원을 위조해 다른 개체로 가장하는 행위)을 많이 사용하며 특히 피해자 스스로 전화한 것처럼 911 신고 접수자를 속이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전화(VoIP)나 가상사설망(VPN), 통화 발신지 추적을 어렵게 하는 여러 개의 인터넷 라우터 사용 등이 일반적이며 최근에는 AI를 활용해 발신자 음성 변조까지 한다.
스와팅은 단순 괴롭힘이나 공권력 낭비를 넘어 경찰과 피해자 간 긴장된 충돌 상황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인명 사고 가능성까지 존재한다. 실제 2017년 온라인 게임 내 작은 다툼으로 시작된 스와팅 사건에서 경찰이 총격사건 신고가 접수된 주소에 출동한 뒤 집 밖으로 나온 거주자가 손을 잘못 내리자 총격을 가해 무고한 시민이 숨졌다. 결국 허위 신고를 한 범인들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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