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불법승계 혐의, 5일 선고…법원은 여태 그랬듯 관대할까
내달 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이렇게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무슨 재판, 이미 다 끝난 것 아니었나?’ 그렇지 않다. ‘다 끝났다’는 생각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 당시 이 회장 구속의 기억이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영권 승계 과정의 불법성에 대한 심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재용 삼성 회장 1심 선고 닷새 앞으로
삼성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역사는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단계는 1996년 이재용 회장이 삼성에버랜드(제일모직→삼성물산으로 사명 변경) 주식을 보유하면서 시작됐다. 다음 단계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서 출발했다. 당시 제일모직은 자신보다 자산이 3배, 매출액은 6배인 삼성물산과 합병하려 했다. 당시 이 회장은 제일모직 주식만 갖고 있던 터였다. 삼성물산의 가치는 최대한 낮을수록, 제일모직 가치는 최대한 클수록 합병 이후 회사(삼성물산)에 대한 이 회장의 보유 지분은 늘어나는 구조였다.
이번 1심 판결은 당시 합병의 적절성을 따지는 게 핵심이다. 소수주주를 포함해 검찰은 두 회사의 합병이 인위적으로 두 회사의 가치를 평가해 이 회장에게 유리하게 이뤄졌다고 의심한다. 반면 이 회장 쪽은 지배력 증대를 염두에 둔 합병은 아니며 그 절차도 합법적이라고 맞서왔다. ‘의도’는 없었지만 총수의 지배력 확대란 ‘결과’를 낳았다는 논리다.
법원이 이 회장 쪽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 진통은 커질 수 있다. 소수주주에는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기금 돈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자칫 국민 쌈짓돈이 이 회장 지배력 확보라는 사익에 봉사했다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유죄 판결 총수, 10명 중 7명 집행유예…재벌에 관대한 사법부?
재판 결과는 섣불리 예상하기 어렵다. 판사는 증거와 법률, 양심에 따라 판단할 것이다. 또 검찰 쪽과 이 회장 쪽은 그 판단에 불복해 항소할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 법원이 그간 어떤 판단을 해왔는지를 토대로 그 결과를 예측해 볼 수는 있다. 경제학의 한 부문인 법경제학에서 흔히 하는 분석이고 접근법이다.
과거 10년 동안 한국의 형사 재판 1심 무죄율을 살펴봤다. 단 0.4%다. 기소되면 무죄 판결이 나올 확률은 극히 미미하다. 동시에 실형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필자는 2000년부터 2014년 사이 기업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총수 일가의 사례를 분석한 바 있다. 유죄를 받은 103명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율은 72%였다. 10명 중 7명은 형을 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총수 일가가 아닌 임직원의 횡령배임죄의 집행유예 선고율(32%)에 견줘 매우 높은 수준의 집행유예 선고율이다.
주목할만한 경향성은 또 있다. 똑같이 회사의 피해액을 반환해도 재벌 총수는 일반인에 비해 1심의 집행유예 가능성이 27%포인트 올라갔다. 나아가 1심에서 실형을 받은 뒤 항소를 하면 큰 사정 변경 없이도 집행유예 선고 확률이 상승했다. 이 역시 다른 범죄 재판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현상이다. 그간 사법부가 재벌 총수 일가에 편향적이거나 관대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꾸준히 제기됐던 까닭일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볼 때 이재용 회장에 대한 1심 판단도 무죄보다는 유죄, 실형보다는 집행유예일 공산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회장의 변호인 쪽도 ‘전부 무죄’를 끌어내기보다는 실형은 피하는 쪽으로 변호 전략을 짰을 거라고 짐작한다. 물론 이는 과거 판결의 경향성에 기초한 경제학자의 예측일 뿐이다.
총수 부재 리스크 VS 총수 리스크
재벌 총수가 연루된 재판에선 매번 등장하는 풍경이 있다. “총수가 구속되면 회사가 어려워지고 회사가 어려워지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회사도 말하고 미디어도 말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일반인 상당수도 이와 유사한 ‘믿음’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재용 재판에서도 이런 장면은 어김없이 연출됐다. 하나의 예를 들어 삼성전자 출신인 양향자 의원(한국의희망 당대표)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좋든 싫든 삼성은 현재 오너(총수) 중심이다. 기업 오너가 법적 판단을 받는 과정이 길어지다 보면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국민의 삶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믿음은 얼마나 타당할까. 간단히 주가를 통해 이런 믿음을 검증해보자. 이 회장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된 2016년 11월8일(3만2880원)부터 구속과 1심 판결로 인해 경영에 관여할 수 없었던 2018년 2월4일(4만7700원) 약 15개월 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45%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약 26% 올랐으니, 삼성전자는 ‘회장 부재 시’ 시장 평균 수익률을 크게 웃도는 성과를 보였다. 양 의원이 우려했던 상황은 일단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사법처리에 따른 총수의 리더십 공백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알아보는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분석 대상은 2000년부터 2018년 사이에 유죄 판결을 받은 총수와 관련된 319개 계열사의 주가였다.
우선 총수에 대한 유죄 판결은 해당 계열사의 주가에 부정적이었다. 처벌이 없었던 상황과 비교해 누적 수익률이 대략 0.8% 낮았다(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 흥미로운 점은 그 이유가 법원이 집행유예 판결을 남발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법원이 집행유예로 재벌총수를 풀어주면 누적수익률이 2.2% 하락한다(역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 오히려 실형의 경우 누적수익률에 변화가 없었다. 이 분석이 시시하는 바는 이렇다. 시장은 엄정한 처벌에 따른 ‘리더십 공백’보다 솜방망이 처벌로 인한 ‘총수 리스크’를 더 우려한다는 점이다.
떡볶이 먹방의 의미
챗지피티(GPT)가 열어젖힌 인공지능 시대,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존재는 거대 테크 기업들의 CEO들이다. 유튜브에 마이크로소프트(MS)의 CEO 사치야 나델라나 엔비디아(NVDIA)의 CEO 젠슨 황을 검색해 본 적이 있다. 학계와 산업계를 상대로 한 수많은 강연이 나왔다. 세상이 이들의 발언에 집중하는 이유는 여기서 반도체와 IT 업계, 더 나아가 미래 사회의 청사진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1분1초가 아까울 그들이 대중 앞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활동이 자신의 기업 가치를 높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는 이재용 회장을 검색해 봤다. ‘반도체 전쟁 시대’에 삼성전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여주는 동영상은 찾지 못했다. 대신 엉뚱하게도 ‘재드래곤의 떡볶이 먹방’이 나왔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삼성전자가 엠에스보다 작은 회사여서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주주의 이익 제고보다 지배권의 유지와 승계가 주된 관심사인 한국 재벌에게 1차적 관심사는 주주가 아니라 정치권력이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실형 선고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은 문재인 정부의 가석방 결정으로 나올 수 있었다. 사실 이 회장은 수많은 밈(meme)으로 회자되는 떡볶이 먹방 쇼츠가 주주나 회사의 이익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는 관심을 둘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 권력자에게 그 쇼츠가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는 수단 내지 계기가 될지 일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총수들이 대통령 옆자리에 서서 사진을 찍고 깡통시장에서 어묵 국물을 먹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창업 세대가 말해온 ‘사업보국’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어쩌면 이는 우리 기업의 비극이다. 한국의 재벌은 주주의 높은 목청은 외면할지언정 정치권력의 잔기침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것이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학)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단독] 이종섭 ‘이첩 보류’ 지시받은 김계환, 이틀간 고심 정황
- 아동병원은 집단휴진 불참…“중증환자 계속 몰려와”
- 쿠팡 임직원 2297명 후기 조작…“★★★★★ 딱 좋습니다”
- 이재명 대북송금 재판, ‘이화영 9년6개월’ 선고 판사가 맡는다
- 108석 국민의힘 백팔번뇌…‘눈 질끈 감고’ 7개 상임위 받을까
- 인천공항서 테니스 친 커플…경찰-공항공사 서로 ‘너희가 말려’
- 최재영 “김건희, 디올·샤넬 줄 때 일시장소 내게 다 알려줘놓고”
- 현대중공업 노동자, 철판 깔려 숨졌는데...2심도 벌금·집유
- 11살 아들 근처라도…서울 하천 ‘노숙텐트’ 엄마는 왜 방화범이 됐나
- [단독] 친윤 권익위원, 김건희 명품백에 “뇌물이란 말 쓰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