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티켓 샀는데"…겹치기 출연 배우 컨디션 난조에 '조마조마'
멀티 캐스트·스타 마케팅이 뮤지컬계 겹치기 부추겨…"산업구조 바뀌어야"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오늘은 '오페라의 유령'의 유령으로, 내일은 '레미제라블' 속 장발장으로….
한 명의 배우가 여러 공연에 동시 출연하는 '겹치기 출연'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뮤지컬 배우 최재림은 지난달 28일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에서 반복적인 음 이탈 실수로 논란이 됐다.
공연 이후 티켓 예매 사이트에는 부정적인 후기가 이어졌다. 한 관객은 "배우의 컨디션 난조로 마음을 졸이며 공연을 관람했다"며 "컨디션 관리에 더 신경을 써달라"고 적었다.
팬들은 최재림의 겹치기 출연이 컨디션 난조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최재림은 '레미제라블'(지난해 11월 30일~3월 10일)과 '오페라의 유령' 대구 공연(지난해 12월 22일~2월 4일)의 주인공을 맡고 있다. 오는 8일부터는 2인극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출연이 예정돼 있다.
그는 1월 한 달간 세 작품을 동시에 준비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주말 중 하루는 대구에서, 다른 하루는 서울에서 공연하는 가운데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연습까지 참여하는 일정이 반복됐다.
지난달 29일 최재림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부진의 원인이 드러난 뒤에도 팬들의 실망감은 여전했다. 팬들은 배우의 겹치기 출연이 공연에 영향을 줬다며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레미제라블'의 제작사는 변경된 캐스팅을 공지하는 한편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레미제라블'은 지난달 30일과 2월 1일 낮 공연 배우를 최재림에서 민우혁으로 교체했다. '오페라의 유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최재림이 유령 역으로 출연하기로 한 지난달 31일 공연을 성악가 김주택과 배우 조승우로 변경했다.
공연 흥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겹치기 출연이 가능한 까닭은 제작사들이 멀티캐스트 시스템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3~5명의 배우가 하나의 배역을 맡아 일정을 나누면 배우 한 사람이 출연하는 횟수는 그만큼 줄어든다. 배우 입장에서는 작품에 출연하지 않는 날 다른 작품에 동시 출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현재 무대에 서는 배우들 가운데서도 겹치기 출연 중인 배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이클 리는 2~3월 '노트르담 드 파리'와 '넥스트 투 노멀'에 동시 출연한다. 또한 이지혜는 지난해 12월부터 이달까지 '몬테크리스토'와 '레베카'에, 박지연은 '일 테노레'와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에 함께 출연하고 있다.
중소극장 공연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대학로에서는 공연 기간이 거의 일치하는 작품에 겹치기 출연하는 경우도 있다. 윤소호는 지난해 12월 개막한 '은하철도의 밤'과 '아가사'에, 김경수 또한 같은 달 개막한 '키다리 아저씨'와 '스모크'에 겹치기 출연 중이다.
무대에 선 배우가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주길 기대하며 고가의 티켓을 구매하는 관객은 겹치기 출연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라이브로 진행돼 변수가 많은 뮤지컬 공연에서 배우의 겹치기 출연은 컨디션 관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여서다. 공연계 관계자들은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이 업계 관행처럼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겹치기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한 소속사 관계자는 "겹치기 출연하는 경우가 많아 배우들끼리 서로 일정을 양해해 주는 분위기"라며 "한 배역을 맡는 배우가 3명 이상이면 제작사에서도 캐스팅 일정 등을 조율해준다. 다만 연습량이 많은 초연작에 출연하는 경우 겹치기 출연을 최대한 피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스타 배우를 캐스팅해 단기간에 수익을 올리는 뮤지컬 제작사의 수익구조도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학과 교수는 "스타 마케팅이 강화되며 뮤지컬 시장이 예술적인 측면보다는 상업적인 측면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배우뿐 아니라 창작진, 스태프도 공연에서 나오는 매출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쉽게 누군가를 탓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겹치기 출연은 결국 산업구조가 바뀌어야 해결되는 문제"라며 "공연계가 안정적으로 스타를 발굴하고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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