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드메데프 “쿠릴열도, 일본인 감정 관심없어...슬프면 할복하든지”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두고 러시아와 일본의 400년 논쟁이 재부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수면에 잠겼던 이 문제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달 30일 중의원(하원)·참의원(상원) 본회의 시정방침 연설로 격화됐다.
기시다 총리는 “러시아와 관계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는 영토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한다는 방침을 견지하겠다”고 발언하면서 수면 위로 부상했다. 러시아와의 영토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 안보회의 부의장은 “러시아는 일본과의 평화조약에 반대하지 않지만, 쿠릴열도의 소유권 문제는 영원히 종결된 것이다”고 맞받아쳤다. 또 “러시아는 이곳에 새로운 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포함하며, 이들 영토의 전략적 역할이 커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나아가 “우리는 이른바 쿠릴열도에 대한 일본인의 감정에 별로 관심이 없다. 이곳은 분쟁 지역이 아니라 러시아(영토)”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셜미디어(SNS) 엑스(X)에 올린 글에서 기시다 총리의 ‘쿠릴열도’ 발언에 대해 ‘할복’ ‘원폭’ 등 과격한 표현을 써가며 날을 세웠다. 그의 발언은 리아 노보스티와 모스코 타임스 등 러시아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일본인들의 감정은 우리가 알 바 아니다’며 슬픔을 느끼는 사무라이(무사)들은 할복이라는 일본의 전통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면 된다. 물론 감히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말이다”라고 했다. 이와 함께 할복하는 일본 무사 사진을 첨부했다.
무엇보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일본과 미국의 우호적인 관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미국의 원폭 투하)를 완전히 잊어버린 채 미국과 프렌치 키스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게 분명하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면서 “이 섬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옛 소련의 일부가 됐고, 러시아가 영유권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쿠릴열도의 분쟁은 러시아와 일본 간 지난한 갈등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쿠릴열도는 홋카이도 동북쪽에 위치한 이투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 등 4개섬을 지칭하며 총면적은 5036 ㎢에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의 실효적 지배를 받고 있지만 일본은 이를 불법으로 간주해왔다.
2022년 3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일본이 미국과 EU(유럽연합) 주도의 제재에 동참하자 일본과의 쿠릴열도 분쟁에 대한 협상 단절을 선언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전에 쿠릴 열도에 거주했던 일본인의 무비자 방문도 금지했다. 일본 정부는 러시아의 조치에 강력 항의하는 동시에 근 20년 만에 처음으로 남쿠릴 열도를 (러시아의) 불법 점령지로 지정했다.
쿠릴열도에 대한 러시아와 일본의 갈등은 400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일본은 1644년 에도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 시절부터 일본의 영토였음을 주장한다. 러시아도 자국 탐험가 알렉세이 포포프가 1649년 쿠릴열도를 발견했다고 맞선다. 하지만 실제로 양국 모두 17세기에 쿠릴 열도를 직접 지배지로 편성하지 못했다.
러시아와 일본은 1855년 일본과 제정러시아 화친조약에 의해 ‘북방 4개섬을 일본령으로 한다’는 데 합의했지만,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항복 후 러시아가 북방 4개섬을 점령하면서 반전했다.
1956년 일본과 소련의 수교 당시 체결한 ‘일소 공동선언’ 당시 소련이 하보마이, 시코탄 등 2개 섬의 일본 양도에 합의하면서 분쟁의 실마리가 풀리는 듯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초기 집권기에도 2개 섬의 일본 인도를 시사하면서 급물살을 타 보였다. 하지만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4개 섬의 일괄 반환을 들고 나오면서 협상 타결에 실패했다.
분쟁의 골은 2010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소련·러시아의 최고 권력자로서는 처음으로 쿠릴 열도를 방문, 트위터(X)에 감상까지 남기며 일본을 자극하면서 재점화했다. 이듬해 메드베데프가 한 발 더 나가 이 섬들에 최신 대함대공 미사일을 비롯하여 공격용 헬기 등 신형 무기의 배치 계획까지 밝히며 일본을 자극했다.
2015년 드미트리 로고진 당시 러시아 부총리는 쿠릴열도 방문에 항의하는 일본인들에게 할복 발언을 하면서 양국 갈등은 확산됐다. 메드베데프의 이번 발언과 유사한 발언이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2020년 아베가 일본 총리직에서 퇴임하기 전까지 쿠릴열도 분쟁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25차례 만났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21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쿠릴열도 소유권 문제는 1956년 소련과 일본의 공동선언을 토대로 해결될 수 있으며, 문서에 소련은 평화 조약 체결 후 시코탄과 하보마이를 이전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실마리를 찾아가는 가 했던 쿠릴열도 분쟁은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 이후 서방 제재에 동참한 일본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면서 평화조약 협상 중단 방침을 밝히며 대화 창구가 단절됐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극동 지역 기업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쿠릴열도에 대해 안타깝게도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꼭 가겠다”고 말한 데 이어 기시다 총리의 연설로 다시 양국간 쿠릴열도를 둔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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