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싸게 더 작게…‘드론 한방’에 중동 판세 흔들

홍석재 기자 2024. 2. 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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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정박 중인 터키 상륙함에 탑재된 무인 전투기 바이락타르 옆에 해군 병사가 서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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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게만 느껴지던 지난해 10월7일 새벽 6시30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둘러싼 장벽을 넘어 이스라엘 쪽으로 로켓 5천여발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어 약 1500명의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장벽을 넘어 이스라엘 국경 지대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알아크사 홍수’라는 작전명 아래 수행된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었다.

이 공격의 최선봉을 맡은 것은 ‘가난한 이들의 무기’라 불려온 저가형 ‘공격 드론’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도발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제압하기 위해 만든 최첨단 방벽 ‘스마트 펜스’의 원격통제 무기 시스템(RCWS)은 작은 드론이 떨어뜨린 소형 폭발물에 무용지물이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4일 “하마스의 공격은 이스라엘의 (스마트 펜스) 감시초소를 향한 취미용 드론의 공습으로 시작됐다”고 짚었다.

지난 28일 요르단 내 미군기지를 습격해 미군 3명의 목숨을 앗아간 공격을 실행한 것도 날개 너비 2.5m짜리 이란산 샤헤드 드론이었다. 이날 친이란 이슬람 무장세력인 카타이브 헤즈볼라(KH)로 추정되는 이들이 요르단-시리아 국경의 미군 전초기지 ‘타워22’를 겨냥해 자살 드론을 투입했다. 이 공격으로 가자 전쟁 개전 이후 처음 미군 사망자가 나오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드시 응징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드론으로 시작된 가자 전쟁이 다시 드론으로 확전될 기로에 놓이게 된 셈이다.

2000년대 초부터 세계 곳곳에선 주로 미국이 운용하는 ‘프레더터’나 ‘리퍼’ 등 전투기 수준의 고급 드론이 활약해 왔다. 이에 맞서 2010년대 접어들며 중국·이란(샤헤드 136)·튀르키예(바이락타르 TB2)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 등 무장 세력이 비행체에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저가형 소형 드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란은 2021년 미사일을 탑재한 군용 드론을 제작한 데 이어 이듬해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2022년 2월 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 무기들의 군사적 효용성이 입증되며, 향후 전쟁의 모습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자리 잡았다.

소형 공격 드론의 가장 큰 특징은 비교적 싼 값에 아군 병력엔 아무런 피해 없이 적에게 가까이 다가가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점이다. 나아가 밀집된 시가전이나 밀폐된 공간에서 정밀한 공중 지원도 가능하다. 시도 때도 없이, 때로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손쉽게 적에게 공격을 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 무기를 이슬람 무장세력 등도 적극 활용하게 되면서 중동에 배치된 미군의 피해가 커지고 전선과 후방의 구분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실제 우크라이나 전쟁은 처음으로 현실화된 ‘드론의 전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소형 공격 드론을 활용해 러시아 영내 깊숙한 곳에 위치한 모스크바를 타격하고 있다. 범유럽 싱크탱크인 유럽외교협회(ECFR)는 나아가 “우크라이나군이 (2022년 4월) 침몰시킨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함 모스크바함의 방어망을 교란하는 데도 (튀르키예의) 티비2(TB2) 드론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우크라이나가 매달 1만여대의 드론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러시아군 역시 드론을 이용해 우크라이나 도시 파괴, 댐 붕괴, 탱크·병력·병참시설 공격 등을 손쉽게 수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인터넷 매체 ‘유로마이단 프레스’는 지난해 11월 현재 “우크라이나의 1인칭 시점(FPV) 드론 생산량이 매달 5만대인 반면, 러시아는 30만대에 이른다”며 “이런 생산 능력 격차는 드론 제조 기술자와 정찰·전투용 무인항공기(UAV) 운용에 필요한 엔지니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 매체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수행하려면 매달 20만대의 전투용 드론이 필요하다며 이는 연간 포탄 수요량과 맞먹는다고 전했다.

대규모 시가전이 진행 중인 가자 전쟁에선 드론이 한 단계 더 진화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이스라엘군은 이전부터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역량을 입증한 바 있다. 1982년 1차 레바논 전쟁에서 대공 미사일 사격을 유도하고, 적 미사일 기지를 찾아내는 데 드론을 활용했다. 1989년에는 세계 첫 공격용 드론을 개발했다. 워싱턴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지난 30년간 군용 드론의 국제 수출 물량 60%가 이스라엘에서 이뤄졌다고 추산한다.

이번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은 건물과 지하터널에서 사물을 인식해 충돌을 피하는 동시에 150g짜리 소형 폭발물을 장착한 채 잠긴 문을 폭파하고 스스로 위험을 탐지해 파손을 피하는 드론 ‘익스텐더’를 쓰고 있다. 이스라엘 출신의 드론 제작자들은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또 다른 대형 드론 ‘울버린’이 익스텐더의 10배 넘는 폭탄을 탑재하고, 인명 구조를 위한 ‘투과형 탐지 레이더’, 물체를 집어 올리는 ‘집게발’까지 갖췄다”며 “이 모델들이 모두 현재 가자 전쟁에 투입돼 있다”고 말했다.

드론을 활용한 손쉬운 전투가 가능해지며 인명 피해는 더 커지고 있다. 세계적 과학잡지인 ‘엠아이티(MIT·매사추세츠공대) 테크놀로지 리뷰’는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군의 ‘프레더터’ 같은 전투기 수준의 고급 드론이 ‘드론 전쟁’을 지배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저가형 모델이 군사작전의 주류가 됐다”며 “드론의 전술적 이점은 분명하지만 전세계 민간인에게는 더 끔찍한 희생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우크라이나 전쟁, 홍해의 후티 반군 공격에서 보듯 드론은 전쟁을 더 빠르고, 값싸게, 스마트하게 만든다”며 “저렴해진 드론의 활용성이 커지며 대규모 군대와 소규모 군대 간의 차이가 줄어들고 전쟁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짚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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