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은 끝났다…미국이 ‘반이민’ 국가 된 이유 [이정민의 워싱턴정치K]

이정민 2024. 2. 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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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더 세게 막겠다"…미국 대선 쟁점 1호 된 '이민'

지난 15일과 23일,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열린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미국 언론사들은 국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선거 이슈가 무엇인지를 출구조사했습니다. 대선까지도 계속 쟁점이 될 의제들이라 관심이 쏠렸습니다.

가장 부각된 이슈는 '이민'이었습니다. 아이오와 유권자 10명 중 4명이 이민을 가장 중요하게 꼽았습니다. 이들 중 59%가 트럼프를 지지했습니다. 90%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장벽 건설을 지지했고, 4분의 3은 이민자가 미국에 해를 끼친다고 답했습니다. 뉴햄프셔에서도 이민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답이 경제(34%)에 이은 31%나 됐습니다. 이렇게 답한 사람의 4분의 3이 트럼프에 표를 던졌습니다.


기세를 올리고 있는 트럼프가 이런 분위기를 놓칠 리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한 달간 미국 국경에서 적발된 불법 입국이 25만 건으로 역대 최대였던 걸 걸고넘어졌습니다. "국경은 '대량 살상 무기'가 됐다. 역사상 최고의 국경이던 것이 단 3년 만에 최악으로 변했다"며 바이든 대통령을 맹공격했습니다. 경선 유세에서 "이민자가 우리의 피를 오염시킨다"던 발언의 연장선입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바이든 대통령이 성명으로 답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에 반박한 게 아니라, 트럼프와 결이 같은 대안을 내놨습니다. "난민이 급증하면 국경을 닫겠다. 이를 시행할 수 있는 긴급 권한을 대통령에게 달라"며 의회를 압박했습니다. 임기 초에 이민에 대해 유화적이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건데,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게 6% 포인트 가량 지지율이 밀린다는 여론조사 때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그만큼 이민과 이민자에 대한 미국인들 감정이 안 좋다는 걸 방증하는 조치이기도 합니다.

■ '이민'으로 세운 미국, 왜 반(反)이민 국가가 되었나?

미국의 이민에 대한 시선이 원래 이랬던 건 당연히 아닙니다. 미국은 이민자에 의해 세워지고 만들어져온 나라입니다. 세계 최강국 미국으로 몰려드는 이민자에 대해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이민에 대한 자세는 개방적이었습니다.

1980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 당시 로널드 레이건 후보는 이민 문제를 두고 "국경에 울타리를 치는 대신, 문제를 인정하고 해결책을 찾아보자"며 유화책을 설득합니다. 경쟁자 조지 H.W. 부시 역시 "우리는 명예롭고, 품위 있으며, 가족을 사랑하는 사회를 이뤄왔다"며 관용을 강조했습니다. 두 후보가 이민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경쟁한 겁니다. '값싼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크던 시기입니다. 오히려 민주당 일각에서 불법 이민을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유화책이 초당적으로 합의됐고 이민에 대한 국민 관심은 높지 않았습니다.

1980년 공화당 경선 토론에서 토론을 벌이고 있는 조지 H.W. 부시 후보(좌)와 로널드 레이건 후보(우) (화면=C-SPAN)


그러는 동안 미국 이민 인구는 급증했습니다. 2013년엔 이민자가 1960년에 비해 4배로 늘었습니다. 백인 중심이던 이민자들이 흑인, 남미계, 아시아인으로 바뀌어 갔고, 불법 이민도 함께 늘었습니다. 뉴욕, 캘리포니아, 텍사스 같은 몇몇 주에 한정됐던 이들의 정착지도 2000년대를 전후해 전국으로 확대됐습니다. 이민이 지역 이슈에서 국가 이슈로 변한 겁니다.

전에는 미국인들이 고용되던 마트 점원 등의 일자리를 이민자들이 차지하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이 지역 공화당 의원들이었습니다. 이민자들이 일으키는 절도나 성폭력을 의회에서 문제 삼았습니다. 백인들 중심으로 지지가 뒤따랐습니다. 공화당은 이민을 점차 법 집행이나 국가 안보와 연결시켜 나갔고, 반대로 민주당은 이를 인도주의, 인권 문제로 다뤘습니다. 이민 문제는 정치 양극화의 상징이 돼 갔습니다. 아래 표는 90년대 말에는 당에 관계없이 비슷하던 이민에 대한 생각이 지지 당에 따라 얼마나 달라져 왔는지 보여줍니다.


2007년 공화당이 '불법 이민자 합법화를 늘려선 안 된다'는 이유로 같은 당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추진한 이민법을 부결시킨 건 미국 이민 정책의 상징적 순간이었습니다. 이민을 단속하면서도 미성년 이민자 추방 유예 같은 유화책을 섞어 썼던 오바마 대통령 역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 트럼프 이민정책은 '사상 검증'?…코너 몰린 바이든 '강경책' 유턴

2017년 취임한 트럼프는 이민을 둘러싼 논쟁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운 건 지금도 트럼프가 내세우는 치적입니다. 지난해 8월,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하면 이민 신청자의 사상 검증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소셜미디어 등을 조회하는 방법으로 공산주의자의 이민을 막고, 이슬람 국가에 대한 입국 금지도 확대할 생각이라는 겁니다. 9.11 테러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고 반(反)중국 정서가 강한 미국 내 보수 백인층을 겨냥한 공약입니다.

2019년 2월,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연설장에 몰린 공화당 지지자들. ‘국경 장벽 건설을 마무리 짓자(Finish the Wall)’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초 트럼프의 반 이민 정책을 뒤집겠다고 했었지만, 사실 재임 내내 어정쩡한 태도를 이어갔습니다. 지난해 1월, 행정명령 '타이틀 42'의 종료를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은 오히려 이 명령을 확대 적용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타이틀 42'는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기 '코로나 19를 막겠다'는 명목으로 불법 이민을 원천봉쇄한 조치입니다. 그 전에는 국경수비대가 불법 이민자를 붙잡아도 수용소로 넘길 뿐 국경 밖으로 내쫓을 수 없었는데, 이 명령이 불법 이민자 추방의 근거가 됐습니다. 명령의 시행 기간 별다른 이민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바이든 대통령이 결국 트럼프의 강경책을 받아 안았다는 인권단체들의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인권'을 유독 강조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앞으로도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더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을 내놓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엉거주춤 트럼프를 따라가는 정책이 선거에서 먹힐 리도 없습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으로선 대선 본선에서 아킬레스건이 될 이슈이고, 공화당에선 현지 시간 28일 바이든의 이민 정책을 시행해온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의 탄핵안까지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 '일손 필요한데 어쩌라고'…"양쪽 다 근본 대책 찾기는 뒷전"

지난해 5월, '리틀 트럼프'라 불리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강력한 반 이민 정책을 펴자, 플로리다의 불법 이민자들이 대거 다른 주로 이주하거나 잠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장 지역의 농장, 공장, 건설현장, 식당 등이 인력난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농장주 등의 반발이 이어졌습니다. 일부는 소송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미국 입국을 위해 국경 앞에 모인 남미 출신 이민 희망자들 (촬영=AP)


미국 전문가들은 이민의 상당 부분이 값싼 노동력에 대한 수요와 나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는 외국인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결과인 만큼 근본 원인의 해결 없이는 이민 논쟁이 잦아들지 않을 거로 보고 있습니다.

카토 연구소의 부국장 데이비드 비어는 "합법 이민은 복권 당첨과 같은 확률"이라며, 전체 이민 신청자의 3%에만 합법 이민이 허가되는데 불법 이민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냐고 주장합니다. 현재 미국 전역의 이민법원 판사는 700여 명이 안 되지만 이민법원에는 250만 건 이상이 계류 중이며, 평균 처리에는 4년이 걸립니다. 불법 이민이 늘어나는 게 싫다면 합법 이민 창구 확충이 답이라는 건데, 이미 양극화돼버린 '이민 논쟁'에 이런 주장은 묻혀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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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기자 (ma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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