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비 카타르] '카타르 부호'와의 만남, 인생 최고의 양고기
(베스트 일레븐=도하/카타르)
2023 AFC(아시아축구연맹) 카타르 아시안컵 현장에서 <베스트 일레븐> 공식 '말쟁이' 김유미 기자가 전하는 현지 에세이입니다. 일하다 힘들 때면 종종 찾아오겠습니다. 하비비는 이곳 말로 '내 사랑'이라는 의미입니다. 한 달간 카타르와 사랑에 빠져보겠습니다. 함께 해요. <편집자 주>
"여러분을 미디어 만찬에 초대합니다!"
메일 제목을 읽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차라리 스팸메일이었으면 했거든요. MBTI 유형 'I(E가 11%, I가 89%)'인 제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쥐약입니다. 그럼에도 한 번 뿐인 해외 출장에서 카타르 왕족(?)이 베푸는 은혜를 외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사실, 메일 내용에 있던 아시안컵 지역조직위원회(LOC, Local Organising Committee) 회장의 '프라이빗 농장'이라는 말에 껌뻑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프라이빗 농장은 못 참지.
10여 명의 한국 동료 기자들과 함께 미디어 만찬에 가기로 했습니다. 미디어 셔틀을 타고 개인 농장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카타르 도하 시내를 기준으로 가장 먼 경기장이 차로 약 1시간 15분 정도 소요되는 알 바이트 스타디움인데요. 이 경기장보다도 훨씬 북쪽으로 올라간 곳에 만찬 장소가 마련돼 있었습니다. 도로가 끊어진 곳부터는 비포장 도로를 한참 달렸고요. 여차하면 중간에 우버를 타고 도망 나오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만찬장은 거대한 캠핑장 느낌이 났습니다. 초대형 베두인 텐트(사막에 치는 대형 천막)가 늘어서 있었고, 야외엔 숯을 태워 불멍이 가능한 공간도 있었습니다. 텐트 안에는 소파, 테이블, 탁구대 등이 마련돼 있었는데요. 여기서 탁구로 물러설 수 없는 (미니) 한・일전을 벌이기도 했답니다. 혹여나 해서 알려드리는데요. 결과는 한국 기자들의 압승이었습니다.
만찬에선 정말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앉아 있는 내내 직원들이 계속해서 디저트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생강차와 비슷한 맛이 나는 아라빅 커피도 마셨고요.
그러는 사이 카타르의 체육청소년부 장관이자 아시안컵 LOC 회장, FIFA(국제축구연맹)과 AFC(아시아축구연맹) 요직을 맡고 있는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빈 아흐메드 알 타니 회장이 취재진 사이를 돌아다니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가 실제 왕족인지, 부호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만, '아마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 가장 부자가 아닐까' 하고 호들갑을 떨며 단체사진도 찍었습니다….
여유가 철철 넘치는 모습이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내빈 소개나 개회사 같은 형식적이고도 불필요한 식순이 전혀 없다는 점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말 손님으로 대접받는다는 기분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운 만찬 자리였습니다.
본격적인 식사 전에 이미 디저트로 배가 꽉 찼는데요. 즉석에서 질 좋은 숯을 태워 구워주는 질 좋은 고기 냄새와 비주얼에 군침이 돌았습니다. 주문 즉시 만들어주는 케밥도 끝내줬습니다. 그러나 이날의 진정한 주인공은 '램찹'이었습니다. 램찹은 양갈비를 뜻하는데요. 갈빗대를 잡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저는 평소 양고기라고는 양꼬치 밖에 안 먹어본 양고기 초보인데요. 카타르에 와서는 거의 매일 양고기를 먹고 있습니다. 인생 양고기 'TOP 3'가 모두 카타르에 있는데, 만찬에서 먹은 램찹은 그중 최고였습니다. 아주 좋은 등급의 소고기를 먹는 것처럼 부드럽고 향이 진했거든요. 램찹에 곁들여 먹는 각종 채소와 후무스(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스프레드), 새콤한 요거트도 밸런스가 잘 맞았습니다.
램찹 몇 대를 허겁지겁 해치운 J 선배는 "살면서 다시는 이런 고기를 먹을 수 없을 것"이라 극찬했고, H 선배와 D 후배도 "램찹을 먼저 먹고 나니 다른 고기들(소고기, 닭고기)이 맛이 없어 더는 못 먹겠다"라고 포크를 내려놓으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답니다.
이렇게 양고기를 예찬하고 있기는 하지만, 2주 전부터 머릿속을 떠다니는 음식은 찰순대와 돈까스, 그리고 족발보쌈세트입니다.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에선 볼 수 없고 먹어서도 안 되는 돼지고기 음식들이지요.
아쉽지만 카타르에 왔으니 카타르 법을 충실히 따르되, 한국에 돌아가면 삼겹살에 소주 한 잔부터 하고 싶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우승하고 먹는 '삼쏘'라면 더 맛있을 것 같습니다.
글, 사진=김유미 기자(ym425@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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