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조합장 나와" 리모델링 조합 내분 격화

정영희 기자 2024. 2. 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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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 - 리모델링 아파트 대혼란(2)]리모델링-재건축 '우왕좌왕' 분담금 폭탄 불안

[편집자주]재건축보다 진입이 쉽고 사업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각광받던 리모델링이 정부의 연이은 규제 완화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난해 재건축의 걸림돌로 불리던 안전진단 문턱이 대폭 낮아진 데 이어 올 초 준공 뒤 30년이 지난 노후 아파트는 아예 안전진단을 받지 않아도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면서다. 그동안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전국 다수의 조합들은 재건축과의 갈림길에 멈춰선 채 혼란을 겪고 있다.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선회하려면 기존 조합을 해산해야 하는데, 새 조합에서 임원 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현 리모델링 조합 집행부가 반기를 들며 조합원들과 갈등을 겪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준공 연한 기준을 채우지 못해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을 선택한 단지가 비교적 많았던 일산·분당 등 1기 신도시들도 지난해 말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1기 신도시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면서 소유주 간 의견 충돌에 부딪치는 모습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대지2단지아파트는 현재 재건축을 원하는 소유주들이 기존 리모델링 조합 해산에 나서며 조합장과의 갈등을 겪고 있다. 올해로 준공 32년차를 맞은 이 단지는는 2008년 리모델링 조합설립인가를 받았지만 시공사 선정 단계에서 여러 번 고꾸라지며 사업이 지연됐다./사진=머니S 정영희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오락가락 재건축 대책… '낙동강 오리알' 된 리모델링
(2) [르포] "조합장 나와" 리모델링 조합 내분 격화
(3) 리모델링→재건축 변경 신중해야… 1기 신도시 '갈팡질팡'

#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대치2단지가 리모델링 사업으로 인한 내홍을 겪고 있다. 지난 1월22일 방문한 단지에는 리모델링 조합에 반기를 든 '리모델링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내건 현수막이 곳곳에 보였다. '최고의 입지 조건! 재건축이 정답이다'라고 쓰인 플래카드 뒤로 리모델링 모델하우스 위치를 알리는 공지문이 걸렸다.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에 소유주들도 혼란을 빚고 있는 모습이다.

안전진단 없이 아파트를 재건축할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의 빗장을 대거 풀었다. 하지만 불똥이 리모델링 추진 단지로 튀어 주민 사이에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빠른 사업이 가능하다는 리모델링의 장점이 사라진 데다 반사 효과로 규제가 더 엄격해지며 대다수 단지들이 재건축 선회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리모델링만 16년째… 막막해진 주민들


준공 32년차를 맞는 대치2단지는 2008년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했다. 최고 15층 1758가구가 최고 18층 1988가구로 탈바꿈할 예정으로 강남권 리모델링의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용적률 174%로 사업성이 나쁘지 않지만 전용면적 33~49㎡의 소형평수로만 이뤄져 평균 대지지분이 작다는 단점이 있다.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선택한 이유다.
강남구청은 대치2단지 리모델링조합 조합장에게 해산을 권고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별다른 답변이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리모델링 조합 해산 절차 이전에 재건축 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도 관찰되고 있다./사진=머니S 정영희 기자
문제는 지난 1월10일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소유주들의 마음이 돌아섰다는 것. 이날 단지에서 만난 한 소유주는 "리모델링 유통기한이 끝났다"며 "재건축을 지지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른 소유주도 "지하철 3호선 대청역 초역세권에 바로 옆이 양재천이어서 입지만은 최고"라며 "정책이 바뀌며 빛을 볼 수 있게 됐는데 왜 리모델링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소유주들의 여론이 재건축을 향하고 있지만 실제 추진까지 쉽지 않은 길이 될 전망이다. 리모델링 또한 10여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만 걸었다. 대치2단지는 2016년 DL이앤씨·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하고 공사비 5400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가 2021년 계약 해지 수순을 밟았다.

당시 조합 측은 "시공사가 사업비 대여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시공사업단은 귀책사유가 없이 계약이 해지됐으므로 대여한 사업비를 돌려달라고 맞섰다. 법원은 지난해 6월 시공사업단의 손을 들어줬다. 조합은 DL이앤씨에 66억7106만원을, HDC현대산업개발에 45억7473만원을 각각 배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합은 소송 도중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2022년 9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대치2단지의 수직증축 공법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내려 다시 제동이 걸렸다. 이후 소유주 사이에서 하나둘 재건축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현대건설 시공사업단도 시공권을 포기했다.
대치2단지 소유주들 사이에선 조합 측을 형사고발하는 이들도 등장해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둔 법정공방까지 예고된 상황이다. 단지 내에선 리모델링 조합 해산을 원하는 이들이 붙인 현수막이 다수 내걸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사진=머니S 정영희 기자
현재 소유주들은 기존 리모델링 조합을 해산하고 재건축 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 리모델링 조합장 A씨의 해임을 위한 동의서도 모집할 계획이다.

'대치2단지 정비사업 정상화 모임' 소속의 한 소유주는 "임대료를 못 내 조합 사무실 운영이 안되고 조합장 급여도 지급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전 시공사업단에 빌린 대여금 112억원에 대한 이자가 연 15%대로 오르면서 조합원들의 답답함은 더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조합원은 조합 측의 조합원 정보 공개 거부에 대해 '주택법' 위반 혐의로 보고 경찰에 고소했다. 소유주 300여명은 강남구청에 조합에 대한 행정처분을 요구하는 내용의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설립일부터 3년이 지나는 날까지 사업계획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 조합은 총회 의결을 거쳐 해산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조합 측은 리모델링 추진 여부 결정과 사업비 처리 등을 이유로 해산 총회를 거부하고 있다. 현재 강남구청은 조합 측에 해산을 권고하는 공문을 보냈다. 법적 구속력은 없다.


리모델링 철수와 재건축 사이 걸림돌은


리모델링 사업 추진과 중단의 기로에서 내홍을 겪는 곳은 대치2단지뿐만이 아니다. 송파 거여1단지는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주민 반발에 지난해 3월 리모델링추진위원회가 해산됐다. 송파 강변현대아파트도 지난해 5월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에 나섰으나 참여 의사를 밝힌 건설업체가 한 곳도 없어 최근 조합 해산 절차에 돌입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아파트 76곳 중 23곳이 조합설립인가 이후 3년이 경과해 올해 안에 해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현재 서울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는 총 76곳이다. 이 중 23곳이 조합설립인가 이후 3년이 경과해 올해 안에 해산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사진=머니S 정영희 기자
전문가들은 현 정책 기조가 계속된다면 리모델링 사업승인을 받은 단지 사이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리모델링 사업은 준공 후 15년 만에 추진이 가능하고 안전진단 문턱도 낮아 재건축보다 빠른 진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번 규제 완화로 안전진단이 더이상 재건축 대안의 역할을 못 하게 되며 리모델링의 속도와 사업성 모두 열위가 됐다. 고금리에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공사비와 분담금 부담이 커지면서 사업성이 더 좋은 재건축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여기에 리모델링 규제 강화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서울시는 '2030 서울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발표, 가구 수가 증가하지 않는 필로티와 1개 층의 상향을 기존 수평증축에서 수직증축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수평증축은 1차 안전진단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반면 수직증축은 2차 안전진단을 받아야 해 리모델링 절차가 더욱 까다로워진 셈이다.

이에 서울 리모델링 주택조합협의회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재건축 활성화 방안에 대한 유감을 표했다. 협의회 측은 "정비사업의 노후도, 용적률만으로 사업성을 평가할 수 없고 각 단지의 상황에 맞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며 "리모델링도 정비사업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정부의 노후 아파트 환경 개선과 공급 활성화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김인만 김인만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미 리모델링으로 상당 부분 사업이 진행된 단지가 아니라면 리모델링과 재건축 사이에서 소유주 간 분쟁이 생겨 공사가 더 미뤄지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라며 "현 정책 하에선 리모델링을 선택한 단지가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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