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조합장 나와" 리모델링 조합 내분 격화
[편집자주]재건축보다 진입이 쉽고 사업 속도가 빠르다는 점에서 각광받던 리모델링이 정부의 연이은 규제 완화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난해 재건축의 걸림돌로 불리던 안전진단 문턱이 대폭 낮아진 데 이어 올 초 준공 뒤 30년이 지난 노후 아파트는 아예 안전진단을 받지 않아도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면서다. 그동안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전국 다수의 조합들은 재건축과의 갈림길에 멈춰선 채 혼란을 겪고 있다.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선회하려면 기존 조합을 해산해야 하는데, 새 조합에서 임원 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현 리모델링 조합 집행부가 반기를 들며 조합원들과 갈등을 겪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준공 연한 기준을 채우지 못해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을 선택한 단지가 비교적 많았던 일산·분당 등 1기 신도시들도 지난해 말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1기 신도시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면서 소유주 간 의견 충돌에 부딪치는 모습이다.
(1) 오락가락 재건축 대책… '낙동강 오리알' 된 리모델링
(2) [르포] "조합장 나와" 리모델링 조합 내분 격화
(3) 리모델링→재건축 변경 신중해야… 1기 신도시 '갈팡질팡'
#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대치2단지가 리모델링 사업으로 인한 내홍을 겪고 있다. 지난 1월22일 방문한 단지에는 리모델링 조합에 반기를 든 '리모델링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내건 현수막이 곳곳에 보였다. '최고의 입지 조건! 재건축이 정답이다'라고 쓰인 플래카드 뒤로 리모델링 모델하우스 위치를 알리는 공지문이 걸렸다.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에 소유주들도 혼란을 빚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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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주들의 여론이 재건축을 향하고 있지만 실제 추진까지 쉽지 않은 길이 될 전망이다. 리모델링 또한 10여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만 걸었다. 대치2단지는 2016년 DL이앤씨·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하고 공사비 5400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가 2021년 계약 해지 수순을 밟았다.
당시 조합 측은 "시공사가 사업비 대여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시공사업단은 귀책사유가 없이 계약이 해지됐으므로 대여한 사업비를 돌려달라고 맞섰다. 법원은 지난해 6월 시공사업단의 손을 들어줬다. 조합은 DL이앤씨에 66억7106만원을, HDC현대산업개발에 45억7473만원을 각각 배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치2단지 정비사업 정상화 모임' 소속의 한 소유주는 "임대료를 못 내 조합 사무실 운영이 안되고 조합장 급여도 지급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전 시공사업단에 빌린 대여금 112억원에 대한 이자가 연 15%대로 오르면서 조합원들의 답답함은 더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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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규제 완화로 안전진단이 더이상 재건축 대안의 역할을 못 하게 되며 리모델링의 속도와 사업성 모두 열위가 됐다. 고금리에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공사비와 분담금 부담이 커지면서 사업성이 더 좋은 재건축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여기에 리모델링 규제 강화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서울시는 '2030 서울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발표, 가구 수가 증가하지 않는 필로티와 1개 층의 상향을 기존 수평증축에서 수직증축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수평증축은 1차 안전진단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반면 수직증축은 2차 안전진단을 받아야 해 리모델링 절차가 더욱 까다로워진 셈이다.
이에 서울 리모델링 주택조합협의회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재건축 활성화 방안에 대한 유감을 표했다. 협의회 측은 "정비사업의 노후도, 용적률만으로 사업성을 평가할 수 없고 각 단지의 상황에 맞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며 "리모델링도 정비사업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정부의 노후 아파트 환경 개선과 공급 활성화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김인만 김인만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미 리모델링으로 상당 부분 사업이 진행된 단지가 아니라면 리모델링과 재건축 사이에서 소유주 간 분쟁이 생겨 공사가 더 미뤄지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라며 "현 정책 하에선 리모델링을 선택한 단지가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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