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재난현장 살피기인가 정당 살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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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2년 성종 13년, 사헌부에 임금의 명이 내려왔다.
"경기진휼사 강희맹은 위임하여 파견하는 뜻을 돌아보지 않고 추종들을 많이 인솔해 여러 군읍에 폐를 끼친다 하니, 그 진상을 추국해 아뢰라."
의정부는 "진휼사 강희맹의 소임은 지극히 무겁습니다"라며 교체를 요구했고, 성종은 정확한 진상 규명을 위해 수락했다.
542년전 조선시대 성종과 관료들이 재난 현장을 대하는 태도와 비교해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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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2년 성종 13년, 사헌부에 임금의 명이 내려왔다.
"경기진휼사 강희맹은 위임하여 파견하는 뜻을 돌아보지 않고 추종들을 많이 인솔해 여러 군읍에 폐를 끼친다 하니, 그 진상을 추국해 아뢰라."
당시 강희맹의 임무는 경기지역의 재해를 조사하고 백성을 진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기진휼사로 임명된 지 일주일 뒤, 의빈부경력 송영 등 5인이 성종에게 진휼사의 행차가 너무 요란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송영은 "경기도사 최철관에게 들었는데 추종하는 인원이 61명이고 말이 26필이었다고 합니다"라고 했다.
며칠 뒤, 강희맹은 조정에 입궐해 해명에 나섰다. 그는 "전하께서 신을 파견한 뜻은 흉년을 구제하는 데 있는데, 신이 무식하나 어찌 감히 전하께서 '진휼의 일'을 위임해 파격한 뜻을 생각하지 않고 폐단을 끼치겠습니까"라고 토로했다. 뒤이어 진휼보고서와 함께 말 12필, 수행인원 28명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성종은 그를 교체했다. 재해 현장에서 백성의 고통에 공감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관리가 논란에 휘말린데 따른 징계인 셈이다.
이는 실록에 나온 성종과 의정부사인 강거효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의정부는 "진휼사 강희맹의 소임은 지극히 무겁습니다"라며 교체를 요구했고, 성종은 정확한 진상 규명을 위해 수락했다.
오늘날 윤석열 정부와 정부여당이 재난을 대하는 태도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0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민주당 주도로 단독 처리한 이 법안은 원인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를 설치해 고강도로 조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거부권 행사에 대한 반발을 고려해 유가족에게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고 희생자 추모시설을 건립하는 내용의 '10·29참사 피해종합지원종합대책'을 내놨다.
특별법에 대해선 여야의 인식 차가 크기 때문에 논의를 차치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위로의 말 한마디 전하지 않은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실은 약 100자 분량의 '알립니다'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 재가 사실만 짤막하게 전했을 뿐이다.
참사 당시 159명이 사망하고, 유족들은 지금도 차디찬 거리를 오체투지하며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는데 참으로 비정한 처사다. 조선시대 왕들도 재해가 벌어지면 "하늘이 나에게 내린 벌"이라며 자책하고 민심을 어루만졌는데, 현대의 대통령이 유족을 향해 진심 어린 위로의 메시지를 남기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더구나 참사가 벌어진 지 1년이 지났지만, 정부 차원에서 참사의 원인과 과정을 속시원하게 정식 설명한 적도 없다.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지난 23일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함께 방문하며, 김건희 여사 문제와 공천 관리 문제 등을 두고 벌어진 갈등을 봉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굳이 피해자가 절규하는 재난현장에서 일정까지 조율하면서 만나 이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이 때문에 재난 현장 상황보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모습만 더 부각됐다. 542년전 조선시대 성종과 관료들이 재난 현장을 대하는 태도와 비교해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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