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소통 부재한 시대"…정우성, 13년의 기다림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2024. 2. 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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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지니(Genie) TV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청각 장애인 화가 차진우 역
지니(Genie) TV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청각 장애를 가진 무명화가 차진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 지니 TV 제공
정우성에게 지니(Genie) TV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13년에 걸쳐 풀지 못한 소원이자 운명적 만남이었다. 1995년 방송된 동명의 일본 드라마가 원작인데 정우성은 이를 한국 드라마로 리메이크 하고자 판권을 샀다. 그러나 당시 인식의 한계로 남자 주인공이 '청각 장애인'이라는 원작의 설정을 살려 드라마화 하기 어려웠다.

30대의 정우성과 50대의 정우성, 그리고 1990년대와 2020년대. 배우의 연령과 시대가 달라진만큼 변화가 필요했다. 원작을 훼손하거나 파격적인 전개보다는 현대 사회 시청자들이 미처 놓치고 갈 수 있는 가치를 먼저 생각했다. 자극적인 사이다 서사는 없어도 천천히 내쉴 수 있는 호흡으로 멜로를 재구성해갔다.

물론, 쉬운 길도 있었을 것이다. 남자 주인공 연령이 달라진 상황에서 철저히 제작자로만 남거나 대사 전달이 용이한 캐릭터로 각색하는 길도 있었다. 실제로 13년 전에는, '청각 장애인' 설정인 남자 주인공의 입을 열게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정우성은 이를 택하지 않고 제작을 포기했다. 작품에 담긴 정서와 본질을 누구보다 아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그 때가 왔다. 앞도 뒤도 보지 않고 질주하는 이 사회 속에서 정우성은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느린 속도가 분명히 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쁘게 쏟아내는 말로만 소통하지 않기에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두 주인공은 아주 천천히 서로를 알아간다. 말보다는 마음을 먼저 나눈다. 그 진심은 '50대 멜로'이든 '청각 장애인'이든 관계 없이 우리의 장벽을 녹였다.

다음은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제작자 겸 배우 정우성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지니(Genie) TV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청각 장애를 가진 무명화가 차진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 지니 TV 제공

Q 13년 전 왜 '사랑한다고 말해줘'를 한국 드라마로 제작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A 이런 정서적 고민을 하는 주제가 우리 삶에 필요하고, 또 우리가 안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당시 우리 사회에 인터넷이 한참 발전해 나가고 있을 때 이 드라마를 봤다. 배우들에 대한 수식어가 엄청나게 변하고, 사회에서는 온갖 목소리들이 나왔다. 어떤 가치를 위한 목소리인가 의문이 들었고, 세상이 너무 시끄러운 게 아닌가 싶었다. 이 드라마를 인상 깊게 봐서 작품화하고 싶었다. 세상에 연관된 사고와 관계 없이 드라마에 내포된 정서가 저라는 사람을 이끌었다. 해치고 싶지 않은 정서가 있었다.

Q 너무나 다른 시대임에도 결국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따뜻한 소통이 시청자들에게 통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A 사회에 메시지를 주고자 한 건 아니지만 시대가 맞물려서 의미가 있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자각한 것 아닐까. 이 드라마는 이성 간 사랑보다 소통을 말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 존재의 소통이다. 우리는 음성 언어로 너무나 많은 소리를 내뱉고 있기에 차진우가 사용하는 수어가 은유처럼 보인다. 진정한 소리에 대한 바라봄과 소통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질문하는 작품이다. 수어를 사용하면 대상을 이해하는데 더 노력해야 하고 시간이 더디게 걸린다. 우린 그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원인과 결과만 보려고 한다. 상대를 규정하는 방식도 굉장히 편협하게 이분법적 사고를 요구하고 강요 받는다. 답만 빨리 내길 원하는 사회 속에서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다.

Q 드디어 제작하게 됐을 때는 감회도 남달랐겠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을 듯한데. 일단 본인 나이부터 달라졌고, 원작의 디테일한 설정들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A 물리적 나이가 올라갔으니 차진우 나이에 맞게 관계를 바라봐야 했다. 멜로나 갈등 요소를 선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처음 판권을 가져왔을 때 원작 작가님이 '정우성이기 때문에 준다'고 하셨고, 이번에 다시 제작을 하며 접촉을 했을 때 진짜로 고민했다. 제작만 내가 하고, 다른 젊은 배우들을 쓰겠다고 이야기할까. 그런데 배역 변경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으시길래 내가 연기하는 진우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단 생각이 들어 하게 됐다. 솔직히 부담은 됐다. 멜로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멋지게만 그리려고 하면 안되고, 차진우다운 자연스러움을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기술의 발전도 너무 빨라서 원작에서는 팩스가 중요한 소통의 매개체인데 2023년에 맞는 화법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지니(Genie) TV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청각 장애를 가진 무명화가 차진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 지니 TV 제공

Q 진우 마음의 소리를 진심으로 듣는 모은 역 배우 신현빈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여자 주인공 발탁에도 심혈을 기울였을 것 같은데

A 제가 남자 주인공을 해야 하니까 30대 중반 배우여야 했다. 그러니까 점점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과연 이 장르를 누가 해줄까 싶었다. 신현빈 배우가 대본을 보고 마음에 들어했고,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대본이 내포한 소통이란 주제를 바로 이야기 해줘서 너무  감사했다. 작업하는 내내 대본이 나올 때마다, 촬영 중에도 늦게까지 회의하고, 바람직한 방향성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함께 고민해줬다. 너무 훌륭한 동료였고, 신현빈이 아니었으면 이 드라마는 없었을 거다.

Q 13년의 시간 동안 '사랑한다고 말해줘'를 포기하지 못한 이유가 있을 것 같고, 원래 제작 경험이 많은데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난이도는 어땠나

A 긴 시간 동안 손에 쥐고 있던 숙제를 완성해서 안도감이 든다.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는 원작이 있으니 이를 뛰어넘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고민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뛰어넘진 못한 것 같고 2023년 제작된 드라마로서 받을 수 있는 효과는 받았다. 뛰어넘는다는 표현이 잘못된 것 같다. 원작은 원작의 개성이 있는 거니까. 책임감 보다는 처음 맺었던 인연의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오히려 다른 나라의 원작이라 내가 신뢰를 깼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상상할 수 없는 난이도였고, 무덤덤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여기까지 왔다.

Q 이번에도 눈빛 연기로 화제가 됐다. 진우가 청각 장애인이기 때문에 대사 없이 표현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썼을 것 같다

A 다양성 인식이 높아지고 새로운 설정의 인물이 눈앞에 나타나도 당황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바라봐 주시려는 시대가 됐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호응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른 눈빛을 보여주려고 하기 보다는 표정을 절제하면서 눈빛에 감정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우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고민을 담을 방법을 생각했다. 모은이 진우를 바라볼 때 드는 생각으로 과하지 않게 진우의 표정이 읽히길 원했는데 그렇게 이야기해주시니 성공한 것 같다. (웃음)

지니(Genie) TV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청각 장애를 가진 무명화가 차진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 지니 TV 제공

Q 모은의 부모는 모은이 사랑하는 남자인 진우가 다소 불안정한 직업인 화가에 나이 차이도 있지만 바로 수용한다. 그게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로 비슷한 상황을 가정해 봤을 때, 자녀가 그런 선택을 했다면 어떨 것 같은지 

A 저도 그럴 것 같다. 결국 인생은 선택이니까. 저 역시도 워낙 제도권에서 튀어나와 제 선택으로 자란 사람이다. 세상에서 혼자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것에 있어서 내가 책임을 지면 되는 거다. 그 선택에 옳고 그름은 없는 것 같다. 저는 아직 부모가 아니라 모르지만 본인의 기대를 자식에게 얹는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결국 골프랑 자식은 내 맘대로 안된다고 하더라. 그게 다 입장 차이인 거다. 좋고 나쁜 건 없는 것 같다.

Q 아무래도 멜로라서 그랬는지 여전히 '정우성 얼굴은 국보'라는 수식어가 유효한 것 같다. 이제 '서울의 봄'을 통해 천만 배우란 수식어도 새로 생겼다

A 이제 30년 차 배우인데 그런 생각은 버리시라. (웃음) 영화 '비트'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나를 규정 짓는 수식어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한다. 당시 세상은 나에게 '청춘의 아이콘'이라고 했지만 그건 내가 아니다. 나는 내 갈 길을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맛보고자 하는 다양한 세상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어떤 수식어에 얽매여 선택에 제약을 두지는 않았던 거 같다.

Q 11년 만의 멜로를 너무 기다린 팬들도 있었다. 물론 본인에게는 부담이었을 수도 있지만 '정우성 멜로'를 보고 싶어하는 이들도 많다는 게 이번 드라마로 증명됐다

A 나이가 50인데 당연히 부담이 됐다. (웃음) 그러니까 다른 후배 배우를 캐스팅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고민도 했었고. 그런데 나이듦에서 도망가려고 발버둥 치는 순간 시청자들에게 멋진 척 하려고 한다고 보여질 거라서 그러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로 로맨스를 빨리 하도록 노력을 해볼 여지는 생겼는데 내 나이에 맞는 멜로의 모습을 찾아야 될 것 같다. 영화에서는 또 어느 순간 멜로 장르가 흥행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작을 하지 않기도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작품을 하다 보니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멜로를 피하진 않았다. 난이도는 로맨틱 코미디가 제일 높다고 생각하는데 하면 잘할 거 같다. (웃음)

영화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 장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Q 데뷔 30년이면 정말 연예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터다. 어떻게 하면 늘 담담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한데

A 멘탈이 무너지려는 순간은 일단 배우 생활을 하면서는 없었다. 어려움이 다가오면 어려움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좋은 일은 당연하지 않게 생각을 한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있나 생각하기 보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 나에게도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건 제 경험 속에 있는 거지 누군가에게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보통 후배들과 고민을 이야기할 때는 같이 들어주면 그 사람이 자기 스스로 길을 찾는 거 같더라.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 방향성을 찾는 거 같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대화하거나 들어주는 거다.

Q 영화 '서울의 봄',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 등 지난해 주연작 네 작품으로 연달아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물론 값진 성과도 거둬서 뿌듯하겠다. 2024년 갑진년 올해 세운 목표는

A 지난해는 넘어지지도 않고 잘 달려왔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첫 방송할 때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이제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차분히 다시 정립을 하고 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한다고 말해줘'에 대해 '인생 드라마다' '소유하고 싶은 드라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감사하고 뿌듯하다. '서울의 봄'은 관객들을 주말마다 보는데 정말 팬심으로 매일 무대인사에 함께 해주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 볼 때는 좀 미안하다. 너무 많은 시간을 내게 소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냥 관객들은 한국 영화의 빛과 소금이시니까 감사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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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ywj201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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