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농부의 두뇌’ 심은 트랙터 ‘주문 제작’
숀 레넌 부사장 “농기계 전동화, 피할 수 없는 흐름”
영국 바실던에 있는 세계 2위 농기계 업체 CNH 인더스트리얼의 뉴홀랜드 트랙터 공장.
지난 1월 11일(현지 시각) 방문한 공장 내부에선 천천히 움직이는 모노레일에 매달린 거대한 트랙터 뼈대에 엔진 부품을 조립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투명 고글을 낀 작업자들이 크레인의 도움을 받아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트랙터 차체를 완성하는 사이, 부품을 실은 무인운반차(AGV·Automated Guided Vehicle)가 2㎞에 이르는 주요 조립 라인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런던 중심에서 40㎞ 떨어진 바실던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런던이 파괴되자 잉글랜드 에식스(Essex) 주의회가 조성한 뉴타운이다. 바실던에 공장을 짓는 기업에는 주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했다. 당시 세계적인 농기계 업체 뉴홀랜드가 보조금을 받아 공장을 건설했고 1964년부터 지금까지 트랙터를 생산하고 있다.
올해 5월이 되면 이곳에서 트랙터를 생산한 지 60년이 된다. 이 공장에서는 연간 최대 1만8000대의 트랙터가 생산된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트랙터는 전부 주문 제작 방식으로 생산된다. 엔진 마력은 물론 트랙터 전고(높이)와 운전자 좌석 시트를 천으로 만들지 가죽으로 만들지, 경보기를 어디에 부착할지 등 다양한 옵션을 구매자가 선택한다.
생산 라인을 무한대로 늘리지 않고도 맞춤형 생산을 실현한 비결은 개별 주문에 맞는 설계와 부품, 공구를 제공하는 AGV의 활용이다. AGV는 소비자가 주문한 트랙터를 만들 수 있는 부품과 공구를 카트를 담아 해당 차체 앞으로 배달한다.
숙련된 노동자는 AGV가 실어온 카트에서 부품과 공구를 집어 올려 태블릿에서 주문을 확인하고 이에 따라 트랙터를 조립한다. 이 작업이 모노레일을 따라 모든 공정을 거치면 맞춤형 트랙터가 완성된다.
뉴홀랜드가 채택한 주문 제작 방식은 점점 다변화되는 글로벌 수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농기계 시장에도 거세게 불고 있는 전동화·자동화 바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장에서 만난 숀 레넌(Sean Lennon) 뉴홀랜드 유럽 담당 부사장은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업 분야가 기후 변화에 직접 영향을 받는 산업이다보니 농기계를 이용하는 고객이 배출가스에 대해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농기계 전동화 수요가 굉장히 크다”라고 말했다.
그는 농기계 동력을 디젤에서 배터리를 바꾸는 것은 단순히 연료를 전환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디젤 트랙터에서 전기 트랙터로 바뀌면 운전자가 느끼는 소음이나 진동 수준은 물론 작물 재배 환경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전동화 수요는 소형 농기계를 주로 사용하는 포도나 셀러리, 브로콜리 등 고부가가치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서 크다. 레넌 부사장은 “전동화 수요가 높은 고부가가치 작물 재배 농가가 우리의 주요 타깃 고객”이라며 “전동화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자동화 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물론 일반 도로보다 제한된 공간(논이나 밭)에서 작업하는 농기계의 자율주행 기술 수준은 자동차보다 낮다. 단순히 작업 공간을 자율주행하는 기술만 보자면 콤바인의 경우 20년 전부터 이미 상당한 자동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농기계 소비자가 요구하는 자동화는 자율주행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농부들은 이전보다 기계에 더 많은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레넌 부사장은 “날씨와 작물의 상태, 성장 속도에 따라 농기계의 작업량이 달라진다”며 “농기계의 애플리케이션 자동화는 농부의 작업을 기계화하는 일이기 때문에 훨씬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농기계 제조사들이 제품의 자동화 수준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CNH가 초점을 둔 자동화 분야는 자율주행보다는 작물 재배 과정에 필요한 애플리케이션 개발이다.
예를 들어 농작물에 화학 비료를 뿌리는 스프링을 자동화하기 위해서는 기계가 훨씬 정교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화학 비료를 너무 많이 뿌리면 농작물이 죽을 수 있고, 부족하면 병충해를 예방할 수 없다.
비료량이 적당한지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도 한둘이 아니다. 날씨나 작물의 종류, 토양 상태, 화학 비료의 종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건강한 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
CNH는 농기계 제조업체에 머무르지 않고 자동화를 위해 훨씬 정교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발전시키는 회사로 변화하고 있다. CNH는 미국과 네덜란드, 인도 등 3곳에 글로벌 테크니컬센터를 두고 있다.
한편 CNH는 아시아에서 영역을 확대하면서 우리나라 기업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레넌 부사장은 “LS엠트론은 우리의 중요한 판매망일 뿐 아니라 한국 내 위탁 생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중요한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내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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