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의학’ 여성을 위한 의학?…모두를 위한 의학

장수경 기자 2024. 2. 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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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①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심근경색 증상도 대장암 발병률도
‘성별차이 규명’ 의학연구 새바람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원 배지를 단 여성 국회의원은 18.5%다. 지난해 매출액 상위 100개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6%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은 여전히 비주류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보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여성들을 소개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성차의학연구소의 초대 연구소장인 김나영 소화기내과 교수가 10일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소 문패를 가리키고 있다. 240110.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심근경색의 경우, 남성은 대체로 전형적인 증상인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느끼지만, 여성은 속 쓰림이나 가슴 답답함을 호소한다. 이런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던 과거엔 여성 환자에게 잘못된 진단이 내려져 치료가 늦어지기도 했다.”

김나영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지난 10일 한겨레와 만나 이런 예를 들어 ‘성차의학’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성차의학이란 생물학적 ‘성별’이나 사회·문화·심리적인 ‘젠더’ 차이가 질병 발생과 증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3월 국내에선 처음 분당서울대병원에 설립된 성차의학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아, ‘170㎝-65㎏-남성’을 표준으로 발전해온 한국 의학 연구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호르몬·생식기·유전자 등이 남성과 다르지만,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전세계 의학 연구에서 여성은 그저 ‘작은 남성’처럼 치부됐다. 그 결과, 여성은 질병을 진단·치료받는 과정에서 오류의 위험을 떠안아야 했다. 불면증 환자에게 일괄적으로 같은 양의 수면제 졸피뎀을 처방해, 여성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됐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0년대 초반, 졸피뎀 부작용으로 자동차 사고가 잇따랐는데,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조사 결과 똑같이 성인 권장량(10㎎)을 복용했음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주의력 장애를 겪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졸피뎀은 지방에 잘 흡수되는데, 여성의 경우 체지방이 많아 체내에 약물이 더 오래 남아 있는 탓이었다. 식품의약국은 2013년에서야 여성의 졸피뎀 초회 처방 용량을 권장량의 절반인 5㎎으로 낮추라고 권고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성차의학연구소의 초대 연구소장인 김나영 소화기내과 교수가 10일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관련 서적을 설명하고 있다. 240110.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김 교수는 의학 연구가 남성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이유를 “의학자 대부분이 남성이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김 교수가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1980년만 해도 의대생 160명 가운데 여학생은 16명밖에 되지 않았다. “10%면 많은 축이었다. 이전엔 한자릿수였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당시 여성 의사에겐 질병을 연구할 교수직 기회도 잘 주어지지 않았다. 그가 교수에 임용된 건,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 12년 만이었다.

헬리코박터와 위암이 주전공인 그가 성차의학에 눈을 뜬 건 10년 전이다. 2014년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의 이사 자격으로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열린 ‘젠더 혁신’ 워크숍에 참석한 게 계기가 됐다. 그는 당시 성미경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대장암 관련해 발표할 때 임상 측면에서 도왔는데, 연구에서 여성은 상대적으로 대장 오른쪽에서, 남성은 왼쪽에서 암이 발병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질병에 성차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돼 놀라웠다.”

김 교수는 이후 성별과 젠더 차이가 위암과 기능성 소화불량 발생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엔 남성이 여성보다 대장암이 잘 걸리는 이유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대장암·대장선종에 걸린 사람보다 건강한 사람의 장내에 유산균 같은 유익균이 더 많다는 결과를 얻었는데, 특히 여성과 55살 이하 연령에서 장내 유익균이 많았다는 결과였다.

성차의학의 효능감을 느낀 김 교수는 서울대 쪽에 제안해 2017년엔 대학원 과정에, 2018년 의대에 성차의학 강의를 개설하기도 했다. 소화기·심장·간 질환 등에서 생기는 남녀 차이를 다루는 이 강의에 학생들은 ‘정밀의학이다’ ‘학교에서는 안 배웠던 내용’이라며 크게 호응했다고 그는 귀띔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성차의학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다. 의학계에서 성차의학을 얘기하면 “성소수자(LGBT)를 연구하는 거냐”고 묻거나, 막연히 자신의 전공 분야 질병에는 ‘성차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게다가 성차의학이 ‘여성만을 위한 의학’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없다 보니 여성이 부각되는 면이 있지만, 성차의학은 (질병의) 성차를 인식하자는 것이기에 모두를 위한 의학”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해 “노인성 가려움증도 남성이 훨씬 심한데 아직 이유를 알지 못한다”며 “연구소에서 이에 대해 연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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