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사우디 만원 관중, 여성은 어디에
한국 대표팀이 31일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꺾고 8강에 합류했다. 승부차기 끝에 얻은 힘겨운 승리였다.
한국은 이번 대회 유력한 우승 후보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도 12명이나 된다. 이런 한국을 상대로 사우디는 나름 선전을 한 셈이다.
사우디 선전의 바탕에는 최근 이어진 전폭적인 투자가 있을 것이다. 사우디는 자국 스포츠, 특히 축구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네이마르 같은 스타 선수를 돈으로 쓸어담다시피 하며 자국 리그로 끌어왔다. 이미 2034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유치도 확정지었다. 자국 스포츠가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사우디 국민은 신이 나겠다 싶다.
다만 신이 나는 것은 국민의 절반밖에 안 되겠다는 의구심도 든다. 이날 경기에서 3만여 관중석 전체가 녹색(사우디 유니폼)이나 흰색(사우디 전통 의상)으로 가득 차 물결을 이뤘지만 유독 여성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카메라가 100여 명의 대규모 관중을 비춰줄 때면 간혹 한두명이 눈에 띄었을 뿐, 경기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우디 여성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겨우 20여 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고 알려진 한국 관중석은 절반 가까운 사람이 여성이었고, 이들은 슛 하나 패스 하나에 환호하며 열정적인 응원을 보냈다.
사우디 관중석의 모습은 사우디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우디는 대표적인 여성 인권 ‘후진국’이다. 이 때문에 세계 스포츠를 장악하다시피 하며 자국 홍보에 열을 올려도 ‘스포츠 워싱’이라는 비난에 늘 직면한다. 여성 차별, 반체제 인사 탄압 등 자국 인권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눈을 돌리기 위해 스포츠에 투자한다는 논란이다.
실제 사우디의 여성 인권은 처참한 수준이다. 축구장에 여성 관중이 들어갈 수 있게 된 것도 불과 6년 전이다. 여전히 남성 후견인의 의지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후견인 제도가 남아 있다. 여성들은 가족의 관습이나 남성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의료 서비스 접근도 제한적이다. 이에 반발하면 구금되거나 징역형을 산다.
이쯤 되니 아무리 ‘프로는 돈’이라지만 선수들도 반발한다. 테니스 전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와 크리스 에버트가 지난주 워싱턴포스트에 칼럼을 쓴 것이 대표적인 예다. 메이저 대회 단식 우승만 18번씩 한 이들은 여자 프로 테니스(WTA) 투어의 왕중왕전 격인 경기 ‘WTA 파이널’이 사우디에서 열릴 수 있다는 소식에 “여성 전체에게 퇴보를 의미한다”며 반발했다.
축구에선 손흥민이 사우디를 거절했다. 그는 지난해 400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제안받고도 왜 사우디로 이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돈이 중요하지 않다. 축구의 자부심과 제가 좋아하는 리그에서 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돈이 모든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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