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하마터면 총선판 불태워 버릴 뻔”
대통령 눈·귀를 흐리는 자들 이번에 그 한계가 드러났다
지난주 초 법조계에선 ‘검찰 분위기’란 지라시(사설 정보지)가 돌았다. 법무부와 검찰에 있는 ‘한동훈 인맥’을 잘라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문재인 정권에서 조국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 ‘윤석열 검찰총장’이 핍박받을 때 저항했던 검사들이 실명으로 거론됐다. 엊그제까지 ‘친윤(親尹)’ 검사들이었는데 이제 누군가 ‘친한(親韓)’으로 분류해 정리 대상에 올린 것이다. 이들을 퇴진시켜도 검찰 조직은 동요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추가했다.
법조인들은 소설 같은 내용보다 누가 무슨 의도로 만들어 돌렸는지에 주목했다. 이 지라시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비서실장을 보내 사퇴하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권 사정에 밝은 인사들은 진원지로 ‘용산’을 가리켰다. “대통령실 참모 중에 상황 판단이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번에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김경률 사천(私薦)’ 문제로 부딪혔다. 이후 서천 화재현장 만남과 용산 오찬 회동을 거쳐 갈등은 비교적 빨리 봉합 수순을 밟았다.
한 위원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견줄 미래 권력으로 떠올랐다고 하더라도 임기 3년 남은 윤 대통령과 따로 갈 순 없다. 윤 대통령도 본인이 한 위원장을 키웠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지시를 따르는 부하가 아니란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또 총선을 앞두고 두 사람이 계속 부딪히는 것은 공멸을 의미한다.
대통령도 인간이다. 2019년 조국 수사 이후부터 김건희 여사는 4년 넘게 당했다. 문재인 검찰은 김 여사의 전시 기획 사업과 관련된 기업과 언론사를 탈탈 털었지만 결국 무혐의 처분했다. 10여 년 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도 다시 끄집어냈으나 김 여사를 기소하지 못했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검찰 간부는 지금 민주당 공천으로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하고 있다.
김 여사는 ‘줄리’ 같은 저열한 마타도어에도 줄곧 시달렸다. 명품백 문제도 정치 공작이 맞다. 거절하지 않은 것은 비판받을 수 있지만, 친북 목사가 선친 친구라며 접근해 미끼를 던지고 손목 몰카로 찍은 게 본질이다. 남편으로서 그렇게 당한 아내에 연민을 갖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입장 표명 자체가 밀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윤·한 갈등’ 국면에서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한동훈을 사퇴시키고 어떤 식으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의 눈과 귀를 흐리고 있다는 일부 참모의 처신이 회자하고 있다. 그들은 명품백 입장 표명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은 최순실 사태 초기에 사과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편다고 한다. 또 한동훈 없이도 집토끼만 지키면 100석은 얻을 수 있다고 한다는 것이다. ‘100석’은 탄핵 저지선이다.
박근혜 정부의 내리막길은 ‘사과’ 때문이 아니라 2016년 총선 패배에서 비롯됐다. 그때 새누리당은 크게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122석을 얻어 제2당으로 전락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윤·한 갈등’이 수습된 뒤 대통령실 일부 참모를 가리켜 “정치 초짜들이 총선 판을 불태워 버릴 뻔했다”고 했다.
이제 총선까지 60여 일 남았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정책’과 한동훈의 ‘얼굴’로 선거를 치를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파열음도 예상된다. ‘공천’ 자체가 갈등을 일으키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입장에서 나아진 점은 최근 갈등을 겪으면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서로의 입장을 명확히 확인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대통령의 감정선을 건드려 ‘총선 판을 불태울 뻔’했던 용산 참모들의 한계가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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