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문제 대결·정치전략 싸움… 두뇌 서바이벌로 진화한 OTT 예능
진정성, 열정, 꿈. 보는 내내 20대의 화두였던 단어들이 떠오른다. 학부모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고 있는 쿠팡플레이 두뇌 서바이벌 예능 ‘대학전쟁’. 연예인 등 유명인이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오로지 대학생들이 출연해 8부작 내내 난해한 ‘수학 문제’만 푸는데도 시청자들에게 ‘숨겨진 최고의 예능’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최종화가 공개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재시청이 이어지며 ‘맘카페’ 등 커뮤니티에서 화제다.
‘대학전쟁’이 ‘이과 서바이벌’이라면 신선한 ‘문과 두뇌 서바이벌’도 있다. 지난달 26일 1~2회가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다. 마찬가지로 연예인 파워에 기대지 않았다. 지상파보다 자유로운 OTT 플랫폼 안에서 예능 프로그램들이 다양성의 날개를 달고 있다.
◇명문대 ‘수재’ 관찰이 재미
‘대학전쟁’은 주변에서 쉽게 보기 힘든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포항공대를 비롯해 미국 하버드대 학생이 4명씩 팀을 이뤄 두뇌 게임 대결을 벌인다. 암산, 암기, 추론, 연산, 공감각 능력 문제를 신속히 풀어나가야 한다. 어느 대학이 우승할지도 관심사이지만, ‘수능 만점자’ ‘IQ 150′ 등 국내 명문대 수재들은 얼마나 똑똑할까에 대한 궁금증이 재미 포인트다. 각 대학을 통해 모집된 1000명의 후보 중 면접과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출연자들은 수능 만점자, 과고 조기 졸업자, 의대생, 치대생 등 ‘입시 경쟁’에서 승리한 이들이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뭐가 다를까’를 궁금해하는 학부모 시청자들 수요에 맞아떨어졌다. 초등학생·중학생 자녀를 앉혀놓고 같이 본다는 학부모들도 있고, 명문대 진학을 꿈꾸는 수험생들도 본다. ‘우리 애도 A(출연자)처럼 키우고 싶다’는 후기가 상당수다. 출연자들이 생각지도 못한 전략을 세워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쫄깃한 쾌감도 준다. 학생들의 문제 해결력을 보며 대리 만족이 된다는 시청자들도 많다.
◇연출 덜어내고 진정성 담아
시청자들은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서바이벌 예능보다 신선하고 진정성 있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예능에서 많이 보이는 익살스러운 자막, 연출된 서사, 억지 웃음이 배제됐다. 제작진은 문제를 읽어주고 게임을 진행하는 데만 개입해, 연출 정도만 보면 ‘장학퀴즈’ 수준. 긴장감과 몰입감을 높이는 건 잘 설계된 게임과 룰이다. 바둑돌 없이 좌표로 부른 착수 위치를 기억하며 두는 ‘블라인드 오목’ 등 기발한 문제들은 외부 자문 없이 제작진의 힘만으로 출제됐다. 두뇌 게임 서바이벌 장르의 베테랑 김정선 작가와 제작진이 주축이 됐다. 허범훈 PD는 “게임 선정에 2~3개월 걸렸고, 시뮬레이션으로 세부 룰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패배를 인정하며 발전을 다짐하는 학생들의 ‘성장 드라마’는 충분한 감동을 준다. 허 PD는 “게임별로 풀이 전략들이 모두 달랐다. 우리도 일상에서 매일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지 않는가”라며 “그런 우리 인생이 출연진의 문제 풀이 과정과 닮았다”고 했다.
◇정치 축소판 같은 서바이벌 예능도
웨이브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도 기존에 없던 서바이벌 예능이다. 변호사·작가·아이스하키 감독 등 다양한 출연자들이 나와 최후까지 살아남기 위해 언변과 지략 싸움을 벌인다. 정치(좌·우), 계급(서민·부유), 젠더(페미니즘·이퀄리즘), 개방성(개방적·전통적) 측면에서 제각각의 가치관을 가진 12명의 출연자들이 9일간 합숙을 한다. 매일 투표로 뽑는 리더가 되기 위해, 자신의 가치관을 전부 드러내지는 않으면서 토론과 연대를 통해 자기편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리더는 상금 분배 등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현실 정치·사회의 축소판 실험 같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OTT에 신선한 예능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여러 시청자층의 입맛에 맞춰야 하는 방송사 프로그램의 틀에서 벗어나 소재 등을 정하는 데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에는 초반부터 동성애 등에 대한 민감한 발언들이 나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정체된 지상파 예능과 차별화된 다양한 소재와 구성이 시도되고 있어 긍정적”이라며 “다만 소재나 수위가 선정적으로 흘러갈 위험성을 어떻게 막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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