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유물사관 넘어 한국 전통의 ‘인존사상’ 되살릴 때
한류와 K컬처가 세계의 관심을 받는 지금, 어느 외국인이 “당신 나라 사상(思想)의 핵심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인존사상(人尊思想)을 바탕으로 한 공존(共存) 공생(共生)의 휴머니즘”이라는 것이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철학 연구자 중 최고 원로인 윤사순(88·사진) 고려대 철학과 명예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는 2일 오후 1시 30분 고려대 문과대에서 열리는 한국공자학회 학술회의 ‘사관(史觀): 한국철학사를 보는 눈’에서 기조강연문 ‘한 미숙한 한국철학사관’을 발표한다. 21세기에 한국 철학의 역사를 어떤 거시적 시각으로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시론이다.
사관이란 ‘역사의 발전 법칙에 대한 체계적인 견해’(표준국어대사전)를 말한다. 윤 교수는 발표 원고에서 지난 세기 한국을 풍미한 사관은 민족주의 사관과 유물사관의 양대 사관이지만, 두 사관은 이념의 대립으로 편향돼 사실을 소홀히 여기고 이념적 소망에 따라 허구로 그릴 수 있는 폐단을 낳게 됐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민족주의는 이제 효력 상실의 시점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피침자가 겪은 고난의 역사 속에서 자기 생존의 수단으로 모색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민족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고 민족의 단합을 기하려 했다는 점에서 유효했으나, 통일은 민족주의 복원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국제화와 다문화 형성의 시대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지금 한국 철학사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윤 교수는 한국 철학의 특징을 실증적으로 고찰했다. ①한국의 신화(神話)를 분석하면 정작 신(神)의 세계와 그들의 이야기가 없다. 현세의 인간 중심, 인간 본위 사유가 강하다. 단군신화의 단군은 하늘의 아들이며 그의 후예인 한국인은 천손(天孫)이다. 이것은 인간을 근본으로 삼는 인본(人本) 사상보다 더 수위가 높은 인존(人尊) 사상, 즉 인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상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등장하는 철학적 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은 결코 선민의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널리 다른 나라의 인간들까지 이롭게 한다는 점에서 세계인과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이념이 된다.
②한국 불교철학은 임진왜란 때 승병의 활동에서 알 수 있듯, 무고한 인간에 대한 침략자의 살상을 막는 인존정신을 구현했다. ③한국 유학은 성리학자들이 도덕의 올바른 파악과 실천을 중시하며 인간의 가치구현 철학을 추구했다. 인존정신에서 더 나아가 ‘인존의 이유’까지 파악했던 것이다.
윤 교수는 “한국 철학사의 특징은 다름 아닌 ‘인존사상’이었다”며 “경험적 사실로 이뤄진 사상인 데다가 보편성과 실용적 타당성을 담지했다”고 했다. 또한 이것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휴머니즘’을 바람직한 이념의 얼개로 삼을 수 있는데, 세계인 및 자연과 함께 어울리며 재난, 전쟁, AI 등 과학기술이 초래할 위험으로부터 인간을 보위할 공존·공생의 철학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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