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라이브] 눕고 목 조르고 머리채 잡고
16강전이 확정된 이후로 사우디 기자들은 한국에 늘상 시비를 걸어왔다. 한 사우디 기자가 한국 대표팀 훈련장에서 한국 기자들을 가까이서 대놓고 카메라로 찍었다가 제지당한 건 시작에 불과했다. 경기 전날 공식 기자회견은 ‘일본을 왜 피하려 했느냐’는 사우디 기자들의 도발성 질문들로 채워졌다. 한국이 E조 1위를 차지했으면 16강에서 일본을 만났을 테지만, 2위에 머무른 끝에 사우디를 만났다. 클린스만 감독은 “일본을 피한 적 없다”고 수차례 설명해야 했다.
한국 팬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경기 당일 사우디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도심 곳곳에서 한국인에게 ‘우리가 이긴다’라고 소리를 쳐댔다. 가끔 한국인들로 오해받은 일본인들은 호통을 들은 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사우디 중동방송센터(MBC) 기자에게 ‘왜 한국을 미워하느냐’고 묻자 ‘한국이 먼저 사우디를 무시하지 않았느냐’라는 날 선 말이 돌아왔다.
피해의식처럼 보였다. 사우디는 지난 몇 년 동안 ‘오일 머니’로 축구를 열심히 갈고닦았다. 자국 프로리그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9·알 나스르), 네이마르(32·알 힐랄) 등 세계적 스타들을 포진시켰다. 지난해 8월엔 이탈리아 명장 로베르토 만치니(60)를 세계 축구 감독 최고 연봉인 2500만유로(약 361억원)로 야심차게 선임했다. 그리고 사우디 대표팀은 지난해 11월부터 이날 경기 전까지 6승2무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실제로 사우디는 이번 16강전에서도 과거와 다른 축구를 펼쳤다. 유럽 명문 구단들처럼 화려한 짧은 패스 끝에 후반 1분 선제골을 넣으면서 기세를 잡았다. 이렇게나 강한데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자 울분이 터졌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경기가 막바지부터 뜻대로 풀리지 않자 사우디는 공을 잡은 한국 선수를 가리지 않고 태클로 넘어트렸다. 후반 막판 조규성에게 동점골을 내준 뒤 연장에선 사우디 수비수 알리 알 불라이히(35)가 황희찬(28·울버햄프턴)의 목을 졸랐다. 그는 경기 도중 손흥민(32·토트넘)의 머리채를 잡기도 했다. 걸핏하면 쓰러져 경기를 지연시키는 ‘침대 축구’도 다시 꺼냈다. 승부차기에서 사우디가 2연속으로 실축하자 만치니 감독은 종료 휘슬이 울리지도 않았는데도 자리를 박차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약 5개월 동안 쌓았던 모래성이 그대로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유럽 축구 같아 보였던 사우디의 껍질을 벗기니 우리가 알던 중동 축구가 그대로 있었다. 모든 강팀은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를 존중하는 스포츠 정신을 사랑한다. 돈으로 안 되는 건 없다고 하지만, 강팀의 품격만큼은 사지 못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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