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 숨어 산 日 연쇄 폭파범… 월급은 현금만, 휴대폰도 없어
50년 가까이 숨어 지내다 최근 모습을 드러낸 직후 사망한 일본 연쇄 폭발 테러 지명수배범의 ‘반세기 도피 행적’을 현지 언론들이 연일 보도하고 있다. 1974~1975년 ‘연쇄 기업 폭발 테러’ 용의자로 장기간 지명수배됐던 기리시마 사토시 얘기다. 지명수배 당시인 21세 때부터 70세까지 반평생을 가명으로 살다가 최근 말기 위암으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자수했고, 나흘 만에 숨져 세간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도쿄신문·FNN·TV아사히 등 보도에 따르면, 기리시마는 ‘우치다 히로시’라는 가명을 쓰고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의 목조 주택에서 생활했다. 이곳은 그가 지명수배 이전에 주로 활동했던 도쿄에서 차량으로 불과 1시간 20분쯤 떨어져 있다. 인근 토목 회사에서 최근까지 40년 넘게 근무했고, 급여는 모두 현금으로 받았다고 한다. 계좌이체로 급여를 받는 한국과 달리 현금 사용 비중이 높은 일본에서는 현금으로 급여를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편이다. 1999년부터는 회사 부근 한 술집을 한 달에 한 번 이상 드나들었다. 바(BAR) 형태인 이 술집에서 그는 종업원에게 자신이 오카야마현 출신으로 가나가와 요코하마 항만에서 일하다 왔다고 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기리시마는 1954년 1월 9일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에서 태어났다.
1년 전쯤 이 술집에 발길을 끊었는데, 가나가와현 한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은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병원에 통원하면서 그는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은 물론이고 건강보험증도 내지 않았다. 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은 병원비 전액은 매번 자비로 지불했다. 휴대전화도 소지하지 않았다. 보름 전쯤, 집 근처에서 쓰러져 있는 ‘우치다’를 한 60대 이웃 남성이 발견해 집까지 부축해줬다. 이 남성은 당시 ‘우치다’의 방이 “다다미 6장(약 3평) 정도 크기로, 빈 도시락과 포장재로 가득 차 발 디딜 틈 없었다”고 했다. ‘우치다’를 집으로 바래다준 직후 구급차 사이렌이 울렸다고 한다. 병세가 악화한 지명수배범이 119 신고로 병원에 이송된 것이다.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지난달 25일 그는 “최후는 본명으로 맞고 싶다”며 병실 간호사에게 자신이 ‘기리시마 사토시’라고 밝혔다. 병원 측은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만난 70세의 기리시마는 지명수배 전단에 담긴 19세 때 찍은 사진보다 머리카락 길이가 짧고 훨씬 마른 상태였다고 한다. 기리시마는 경찰 조사에서 도피 생활의 조력자는 없었다고 했다. 조사 결과 해외로 나간 이력도 없었다. 폭발 테러 혐의에 대해서는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치료와 조사를 받던 그는 70번째 생일을 맞은 지 20일 만인 지난달 29일 숨졌다. 용의자 사망으로 사건은 불기소 처리된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기리시마의 친족들은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한 친족은 교도통신에 “(지명수배) 포스터를 볼 때마다 치가 떨렸다. 50년이나 도망쳤으면, 가명 그대로였다면 어땠을까”라고 교도통신에 말했다. 기리시마는 1972년 도쿄 메이지가쿠인대 법학부에 입학, 극좌 테러 단체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에 가입했다. 이 단체는 1974~1975년 일본 주요 기업 본사·공장들을 대상으로 최소 아홉 차례 폭발물 테러를 벌였다. 이 가운데 1975년 4월 도쿄 긴자 한국산업경제연구소 폭파 사건으로 기리시마는 꼬리가 잡혀 다음 달 지명수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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