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안되려면 직원 해고해야 할 판”... 중기인들, 62년 사상 첫 국회 집결
중대재해 발생 시 대표에 대한 형사 처벌 조항을 담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종업원 5인 이상 50인 미만 중소기업으로 확대 적용된 지 닷새 만인 31일, 전국 중소기업인·소상공인·중소건설업자 3500여 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 모여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촉구하는 항의성 집회를 열었다. 이들 기업인은 현행 중대재해법을 두고 업주는 물론 근로자의 생존권까지 위협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국회에 기업인 수천명이 모여 집회를 갖기는 처음이다. <1월 31일 자 A1면>
중소기업중앙회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소상공인연합회·대한전문건설협회 등 17개 협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 통과 촉구 결의 대회’를 개최했다. 국회 본관 앞 폭 50m에 이르는 30계단을 가득 메운 3500여 기업인들은 “입법하는 의원님들, 현장 와서 한번 봐라” “771만 중소기업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이렇게 많은 기업인이 국회에 모인 건 중앙회 62년 역사상 처음”이라며 “법 시행 닷새 만에 전국 각지에서 수천명의 기업인들이 모인 것은 1일 본회의에서 적용유예법 통과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장을 지낸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의 기자회견 형식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전국 각지에서 기업인들이 속속 몰려들며 예정보다 5분쯤 이른 오후 1시 25분부터 참석 중소기업인·소상공인들의 함성과 함께 시작했다. 기업인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즉시 통과시켜라’ 문구가 쓰인 플래카드를 맨 앞에 내 건 채 ‘기업인은 처벌불안, 고용자는 고용불안’ ‘중소기업 다 죽으면 아파트는 누가 짓나’ 등의 손 피켓을 각자 손에 들었다. 이날 오전부터 여의도 중기중앙회 근처는 전국 각지에서 기업 대표들을 실어나른 버스 약 50대로 붐볐다.
이날 행사에선 업계 대표들의 현장 애로사항 발언과 호소가 이어졌다. 윤미옥 한국여성벤처협회장은 “직원을 이유 없이 해고하거나 법인을 나누면 법 위반이 될 수 있지만 구속되지 않고 징역 살지 않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고 했으며, 장범식 하송종합건설 대표는 “중대재해법은 건설업의 99%가 넘는 중소 건설업체의 존립과 민생 경제를 파탄으로 내모는 법”이라고 말했다.
식품포장 업체를 운영하는 최봉규 대표는 “2022년부터 중대재해법을 대비하려고 알아봤지만, 국가 지원 컨설팅조차 50인 미만은 지난해부터야 가능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준비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호소했다. 국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IT 여성 기업인을 대표해 참석한 김덕재 ㈜태임 대표는 “중대재해법은 결국 근로자도 일자리를 잃는 민생 문제”라며 “민생을 위해서라면 국회가 유예를 반드시 시켜달라”고 했다. 김동경 경기자동차정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2024년 1월 27일은 전국 83만 사장님의 사기가 땅바닥으로 떨어진 날”이라며 “국회가 악법을 만들어냈다”고 성토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특히 소상공인·중소기업인 등의 수차례에 걸친 반대에도 중대재해법 입법을 밀어붙인 국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맞습니다” “옳소”를 외치며 공감을 표했다. 이 같은 호소에 이날 여야 원내 대표가 만나 중대재해법 유예 법안 처리를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한편 이날 부산에서는 근로자 10명인 한 폐알루미늄 수거·처리 업체에서 30대 근로자 1명이 작업 중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27일 중대재해법이 확대 시행 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첫 사망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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