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 넘치는 ‘골프 예능 레슨’의 블루칩

김세영 기자 2024. 2. 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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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 구독자 ‘유튜브 스타’ 공태현 인터뷰
국가대표 출신 아시안게임 은메달 기대주
골프 재밌게 즐기려 일찍 교습으로 전환
“내 끼 통할 시대 온것 같아 못 참겠더라
타인에게 그늘집같은 프로 되는 게 목표”
[서울경제]
두 눈을 질끈 감고 하얀 이를 도드라지게 드러낸 표정은 공태현의 트레이드마크다. 이호재 기자

소문 그대로였다. 영상 레슨을 부탁하자 7~8분 동안 한 번의 NG도 없이 원 테이크(one take)로 술술 풀어내는 게 아닌가. 따로 편집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기회는 이때가 싶어 레슨을 하나 더 부탁하자 이번에도 깔끔하게 미션 클리어! 타고난 입담뿐 아니라 알짜 콘텐츠로 무장한 그는 골프 레슨으로 이미 일가(一家)를 이룬 듯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하얀 이를 도드라지게 드러낸, 명랑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해맑은 표정이 트레이드마크인 프로골퍼 공태현을 만났다. ‘골프 엔터테이너’를 자칭하는 그는 투어 무대를 일찍 떠났지만 온라인에서는 유명한 스타다. 그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약 15만 명에 달하고 골프방송에서도 탁월한 말솜씨를 인정받아 이례적으로 처음부터 라이브 레슨을 맡았다.

공태현의 진가가 발휘된 건 지난해 11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골프존-도레이 오픈 때다. 쟁쟁한 투어 프로들을 제치고 추천 선수로 출전한 그가 정규 대회 첫날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6언더파를 쳐 공동 3위에 오른 그는 경기 후 수많은 팬에 둘러싸여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줬다. 고장난 무릎 때문에 둘째 날부터는 주춤했지만 그는 남은 3일 동안에도 과장된 몸짓과 표정을 선보이며 ‘쇼맨십은 바로 이런 거야’라고 예시하는 듯했다.

공태현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골프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딴 기대주였다. 2015년 KPGA에 입회했다. 하지만 그는 투어 무대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2020년 무렵부터는 골프 유튜브 제작에 전념하며 ‘골프 예능 레슨’이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남들은 기를 쓰고 뛰려는 투어 무대를 일찌감치 박차고 나온 이유는 뭘까. 공태현은 “내가 생각한 세상이 오고 있어 도저히 참고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골프 입문 5년 만에 국가대표 발탁···늦게 시작했지만 2배 이상노력하니 되더라

어린 시절 야구를 했다고 하던데.>>>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했다. 지금도 사회인 야구를 하고 있다. 주말마다 경기하고 새벽 훈련도 한다. 학창 시절엔 포수를 했었는데 사회인 야구에서는 시키는 거 다 하는 멀티 플레이어다.”

야구에서 골프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오른쪽 발목 부상을 크게 당했다. 쉬면서 자꾸 기회를 뺏기다 보니 그만뒀다. 아버지께서 운동을 워낙 좋아하시고 마침 집 앞에 골프연습장이 있어 동네 분들이 골프라도 시켜보라고 했다. 공을 딱 쳤는데 그 손맛이 너무 좋아 지금까지 하게 됐다.”

야구를 하던 초등학교 6학년 당시 공태현(오른쪽 두 번째). 사진 제공=공태현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언제인가.>>>

“중3 겨울이었다. 중2 때부터는 광고, 미술, 영상 디자인 등에도 관심을 뒀지만 아버지께서 그런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다. 그래서 골프를 제대로 한 번 시작해보자고 했다. 아버지가 해양경찰이셨는데 제주도로 근무지를 옮기고 나도 제주로 전학 갔다.”

골프 입문 후 금방 실력이 늘었다고 하던데.>>>

“공을 치는 재능이 있는 데다 아버지께서 연습을 엄청 시켰다. 그 두 가지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빨리 성적을 냈던 것 같다. 골프 입문 5년 만인 2014년에 국가대표가 됐다. 골프를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따라잡으려면 배 이상으로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단순한 논리를 실천한 거다.”

어느 정도로 노력했나.>>>

“연습을 위해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아침 7시에 나가서 밤 9시까지 운동만 했다. 그게 내 삶이라고 생각했다. 드라이버가 우측으로 가면 그날 하루는 드라이버가 왼쪽으로 가게 만들어 놨다. 감각적인 부분이든 누구의 스윙을 참고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거기서 오는 나만의 노하우나 깨달음, 이런 것들이 누적이 되면서 실력으로 나타나더라.”

대학은 자퇴를 했던데.>>>

“골프에만 더 전념을 하려고 했다. 근데 간과한 게 있었다. 대학을 자퇴하니까 군대 영장이 날아왔다.”

군대 안 갔으면 후회할 뻔···조교로 복무하다 군에서도 레슨하며 특기 발견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당시 공태현(맨 오른쪽).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으면 군 면제받았을 텐데 아쉽게 단체전 은메달에 그쳤다.>>>

“그 얘기는 한 8000번 정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씁쓸하지만 군대를 갔다 온 덕분에 지금의 내가 완성됐다. 군대 안 갔으면 후회할 뻔했다.”

군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2017년 6월 입대해 30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를 했는데 그곳에서도 잠깐 골프를 가르쳤다. 새로 온 대대장님이 운동했던 병사들을 전부 모으더니 동아리 활동을 해보라고 한 게 계기가 됐다. 풋살 골대에 유격망을 촘촘하게 엮고 매트를 하나 놓고서 시작했다. 한두 명씩 인원이 늘기에 얼마 후에는 연병장 구석에다 8m짜리 기둥을 박고 타석 4개를 만들었다. 그러자 간부들도 너도나도 가르쳐 달라고 찾아와 ‘골프 성지’가 돼 버렸다. 약 두 달 후 내가 포병으로 바뀌면서 그만두게 됐지만 그 사이 70명 정도 가르쳤다. 그때부터 교습가의 길로 들어선 셈이다.”

모자를 쓰는 스타일이나 말투에 여전히 조교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런 면도 없지 않다. 군 복무 중이던 2018년에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방위산업전 행사 무대에 설 아나운서를 뽑은 적이 있었다. 그때 오디션에 응시해서 덜컥 뽑히기도 했다. 그런 경험 덕분에 다른 사람 앞에서 설명하거나 강의하는 걸 좋아한다. 조교 때의 말투나 발음이 자연스럽게 녹아 나온다.”

골프 전에 게임 유튜버로도 활동했다던데.>>>

“그건 중3 때부터 했다. 닉네임 ‘공 대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남들을 지휘하고 공략법 같은 걸 올려주면서 희열을 느꼈다. 낮에는 운동하고 밤에는 게임했다. 골프 선수와 게임 유튜버 두 얼굴로 산 건데, 그 생활을 군대 가기 전까지 했다.”

천성적으로 말하는 걸 좋아했나.>>>

“공 대장으로 게임을 할 때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나를 그렇게 확정한 건 군대에서 조교할 때다. 훈련병들한테 설명하면서 뭔가 당황스러운 질문이 와도 유연하게 대처를 잘했다. 어려운 일에 직면했을 때도 설득시키고 지휘 통제를 했다. 그러면서 ‘아, 내가 말하는 힘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30사단 튜터 페스티벌 당시. 공태현은 군 복무 시절 교습가의 길로 들어섰다.
공태현(맨 오른쪽)의 웃는 모습은 지금이나 군 시절이나 똑같다.
골프 어떻게 하면 재밌게 할까 고민하다 유튜브 레슨으로 돌아서

투어 프로의 길을 일찍 포기했는데 결정적인 이유는 뭐였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다들 첫 번째로 알고 있는 부상은 두 번째다. 첫 번째 이유는 선수로서의 간절함이나 열정이 너무 빨리 식었다는 거다. 선수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압박감 때문에 골프가 싫어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어떻게 하면 골프가 재밌을 것인가에만 포커스를 뒀다. 유튜브가 그 수단 중 하나였다. 그래서 빠르게 전환을 하고 미련 없이 그만뒀다.”

부모님의 반대가 컸을 텐데.>>>

“내 삶이 재미가 없다면 아버지와 어머니 삶도 재미없지 않겠느냐, 제 삶이 재밌고 행복해야 두 분도 행복하시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그랬더니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하더라.”

그래도 부모님이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 같다.>>>

“그건 맞다. 아버지의 뒷바라지에 보답하기 위해 선수로서 한 번은 끝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유튜브 활동을 하면서도 정규 투어를 밟게 됐다. 그래서 미련은 없다. 투어를 도전하다가 뭔가 안 돼서 노선을 변경하거나 은퇴 후 레슨 프로로 전향하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내 끼가 있고 머릿속에 나름의 전략이 있고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이 길로 들어선 거다. 내가 가진 끼가 시대적으로도 통할 것 같았다. 내 이야기나 아이디어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들이 통하는 시대가 온 것 같아 더 이상 못 참겠더라. 이렇게 설득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으니까 아버지가 받아들이신 것이다. 그냥 단순하게 ‘하기 싫어요’ ‘안 해요’ 이런 식으로 떼쓰는 아이처럼 했다면 지금도 아버지와 갈등을 빚으면서 선수 생활을 억지로 하고 있었을 거다.”

아버지는 이제 만족하시나.>>>

“어딜 가나 ‘공태현 아버지’라고 자랑하신다. 뿌듯하다. 투어 프로만이 성공이 아니란 걸 아버지께 보여드릴 수 있고 진짜 자랑스러운 아들이라는 걸 아버지께 선물해 드렸다.”

구독자 무료 레슨도 하던데.>>>

“혼자서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많다. 나도 독학으로 골프를 익혔다. 그러니 혼자 익히는 마음이나 고민을 잘 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돌려드리고 싶다.”

혼자서 어떤 방식으로 배웠나.>>>

“크게 두 가지에 신경 썼다. 처음엔 타이거 우즈와 로리 매킬로이 두 선수의 스윙만 봤다. 다른 하나는 단순하다. 만약 볼이 우측으로 간다면 왼쪽으로 갈 때까지 연습하는 거다. 그 과정에서 깨달음이 생긴다. 그 깨달음을 코스에 나가서 바로 써먹었다. 그러면 그게 오롯이 내 것이 된다. 절대 슬라이스가 안 고쳐진다? 그러면 그냥 왼쪽 보고 친다. 나만의 길을 만들면 된다. 내게 감명을 깊게 줬던 선수가 버바 왓슨이다. 그 선수도 스윙이 정말 독특하다. 혼자 연습하면서 본인만의 다양한 구질을 만들었다. 그걸 밀고 나가 결국 메이저 우승도 하지 않았나. 내 스윙도 정석에서는 조금 벗어나지만 나만의 노하우를 영상으로 녹여내려 한다.”

그런 점이 인기의 한 비결인가.>>>

“그런 것도 있다. 왜냐하면 난 주입식이 아니다. 어떤 분이 레슨을 받으러 왔는데 오른팔에 장애가 있었다. 팔이 굽은 상태로 굳어 있었다. 그래서 그 분에게 왼손이 내려가고 오른손이 올라오는 역그립을 잡아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훨씬 샷이 잘 됐다. 사고를 그냥 바꾼 것뿐이다. 사람마다 체형이 다르고 힘도 다르다. 다양한 사람에게 맞는 스윙이나 연습법을 추천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게 나의 레슨이다. 내 고뇌의 산물이라고 보면 된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많은 연구도 필요할 텐데.>>>

“군대에서 조교를 할 때 한 훈련병이 수료식 때 이런 말을 하더라. 조교님은 사람에게서 뭔가 끄집어내는 힘이 있다고. 그게 뭘까 생각했는데 이거더라. 난 조교 때 정말 최선을 다했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교육 내용을 달달달 외웠고, 거울 보면서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혼자 연습했다. 엄청나게 반복을 했더니 나중에는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준비가 완벽하니까 변형을 해서 얘기도 할 수 있고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편하게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레슨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못 알아듣거나 상황이 다르면 다른 방식으로 쉽게 설명을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백스윙 때 팔을 펴라고 하지만 팔이 안 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는 몸을 좀 더 돌려보라고 해야 한다. 이런 설명을 하려면 해당 문제에 대한 자세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한다.”

지난해 골프존-도레이 오픈 당시 공태현은 쇼맨십을 확실히 보여줬다. 사진 제공=KPGA

예전에 최경주가 연습했던 명사십리에서도 연습했다고 하던데.>>>

“고3에서 대학교 1학년 넘어갈 때였다. 최경주 프로님이 완도 명사십리에서 연습을 했다고 하길래 아버지랑 우리도 가서 한 번 해보자고 했다. 1박2일 머물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래사장 이쪽에서 저쪽까지 계속 치면서 가봤다. 실제로 콘택트 능력이 좋아지더라. 그때 느낌이 너무 좋아서 군 전역 후 (충남 태안의) 솔라고 골프장에서 연습할 때도 페어웨이 벙커 모래 위에서 하루 3시간씩 샷 연습을 했다. 그게 다른 레슨보다 100배는 더 좋은 효과가 있었다.”

투어 프로의 꿈을 빨리 접었다. 다른 목표가 있다면.>>>

“투어 프로를 이길 수 있는 실력을 만들어보는 게 내 목표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추천 선수로 출전한 골프존-도레이 오픈 때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다행이다. 체력 문제 때문에 3, 4라운드 때는 처지긴 했지만 첫날에는 66타를 치고 말도 안 되는 기량이 나왔다. 계속 스윙 공부를 하면서 레슨을 하고 주니어 선수들과 소통을 하다 보니 실력이 는 거다. 교습가 중에서 실력으로 ‘원톱’을 찍어보자, 그런 생각도 한다.”

4라운드를 뛸 만한 무릎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언제부터 그런 건가.>>>

“제대 후 2020년 투어에 복귀할 때부터 무릎이 뻑뻑했다. 좀 무리해서 운동을 하면 펴거나 굽히는 게 불편했다.”

무릎 부상의 원인은 무엇이었나.>>>

“포수를 한 것도 원인이고, 골프를 시작할 때 기초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운동을 격하게 많이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육상 선수 이상으로 하체 훈련이나 달리기를 했다. 트랙에서 아버지와 둘이서 초를 재가면서 뛰고 점프하고 그랬다. 쪼그려서 400m 트랙을 두 바퀴씩 돌기도 했다. 그렇게 무리를 한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방송 레슨도 인기더라.>>>

“보통 방송을 처음 하는 프로들은 녹화방송을 하는데 나는 운이 좋게 처음부터 라이브 방송에 투입됐다. 나중에 관계자 분이 라이브 때도 실수를 안 할 것 같아서 뽑았다고 하더라. 많은 분들 응원 덕에 별 탈 없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이야 유튜브나 방송 활동으로 탄탄한 입지를 굳혔지만 굴곡진 여정을 거쳐 온 것 같다. 힘든 과정을 이겨낸 원동력은 뭐였나.>>>

“첫째 원동력은 가족이고, 두 번째도 가족이다. 아버지는 항상 굽히지 않는 마음이나 정신력을 강조했다. 어머니는 네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라고 했다. 또한 정말 재밌고 미칠 것 같은 감정이 드는 일을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 조언들이 어려울 때마다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힘이 됐다. 길이 막히면 걱정하지 않고 빠르게 다른 길을 찾았는데 그런 판단력이 전부 가족한테서 나온 거다.”

공태현은 유튜브 레슨 촬영과 편집 등을 혼자서 다 한다.
고등학교까지 다닌 학교만 11곳···어디 가도 살아남을 자신 있어

가족이 많은 지원을 해줬다고 했는데 학교를 자주 옮겼더라.>>>

“인천에서 태어나 5살 무렵 강원도 동해로 이사 가서 초등학교 1학년 다니다 다시 인천으로 왔다. 인천에서 3년 정도 다닌 뒤 야구를 위해 경남 마산으로 전학을 갔다. 그곳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중2 때는 골프를 위해 제주로 전학을 갔다. 중3 때는 제주 다른 중학교로 옮기고 방통고 입학했다가 광주골프협회에서 스카우트를 해서 광주 방통고로 옮겼다. 광주 선수로 전국체전 나가서 금메달 2개를 따서 광주체육인상 받고 그곳 대학(호남대)에 들어갔다가 자퇴한 뒤 군 전역 후에는 충남 태안에서 생활했다. 지금은 서울 역삼동에 살면서 방송과 레슨 활동을 하고 있다.”

다닌 학교가 도대체 몇 곳인가.>>>

“내가 나온 학교를 쭉 보면 동해 인평초, 인천 건지초, 마산의 진동초, 양덕초, 무학초 그리고 마산중과 삼진중, 그 다음에 제주 표선중과 제주서중, 고등학교는 제주 제일고 부설 방통고와 광주고 부설 방통고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만 해도 11곳이다. 대학까지 합하면 12곳이다.”

어딜 가든 살겠다.>>>

“적응력은 뛰어난데 학창시절 친구가 거의 없다.”

유튜브나 방송 본 후 연락 오는 친구는 없나.>>>

“내가 포수할 때 투수하던 친구가 골프존-도레이 오픈 첫날 캐디를 맡아줬다. 야구 선후배들의 연락이 많이 온다. 야구 했던 사람들이 나중엔 다들 골프 하더라.”

인기가 많아서 레슨 스케줄이 항상 꽉 찬다던데.>>>

“몇 달 전에 스케줄이 다 찬다. 물론 레슨을 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하루 또는 이틀밖에 되지 않은 영향도 있다. 많이 못해드려 죄송하기 때문에 영상으로 자주 만나려고 한다.”

브리지스톤 광고에도 출연했다. 어떤 인연이 있나.>>>

“내가 아무것도 아니던 고2 때부터 줄곧 도움을 준 회사다. 그때 내가 커서라도 은혜를 갚겠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그 관계가 이어져오고 있다. 태광 골프장에서 연습할 때는 그 회사 직원 집에서 1년 동안 하숙을 한 적도 있다. 군에서 골프 동아리 운영할 때도 다양한 용품을 아낌없이 보내줬다. 골프용품 회사 관계자들 사이에 ‘공태현은 절대 브리지스톤에서 빼올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어떤 골퍼가 되고 싶나.>>>

“골프는 굉장히 즐거운 스포츠다. 근데 골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어려워하는 분들이 아주 많다. 사람들도 다양하다. 어떤 분은 응급처치를 원하고, 어떤 분은 그냥 대화를 원하고, 어떤 분은 옆에 있기만을 원한다. 그런 분들에게 그늘집 같은 존재, 쉬었다 갈 수 있는 프로이고 싶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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