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의 랜드마크vs랜드마크] 환경과 어울리거나, 존재감 강렬하거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전염병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지역 관광 대신 호캉스로 불리는 호텔 관광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위생적이고 매뉴얼화된 서비스가 전염병 위험을 줄일 수 있어서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각종 관광지를 돌아다녔던 사람들은 굳이 외부로 다니기보다 호텔에 머물며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호텔은 중세 유럽에서 성지순례자를 위한 보호소로 기능했다. 관광보다 편안함이 우선되는 시설이었다. 현대 영어 단어 ‘travel’(여행)이 ‘고생하다’는 뜻을 지닌 중세 프랑스어 어휘 ‘travailler’에서 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여행에서 ‘무엇을 얻기’보다는 ‘고생을 덜 하는 것’이 숙박의 제1조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대중교통 발달로 관광이 활발해지고 자연공원의 개념이 생겨나면서, 멋진 경관을 지닌 장소에 호텔이 등장하게 됐다.
2021년 개관한 울릉도의 코스모스호텔(왼쪽)은 울릉도를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을 위한 장소 기반의 호텔이다. 코오롱그룹에서 홍보 차원으로 건설했는데 그 건설 과정이 흥미롭다. 국내 유명 건축가를 한 사람씩 만나 건축안을 제안받고는 순차적으로 설계안을 평가했다. 탈락이 거듭된 끝에 여섯 번째로 접촉한 김찬중 건축가의 안을 선택했다.
땅에 사뿐 내려앉은 스카프 같은 건축
김찬중의 설계안은 울릉도 자연환경을 최대한 끌어들여 건축 아이디어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울릉도가 광활한 바다와 적막함, 밤의 별빛 그리고 원시스러운 송곳산의 모습 등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듯한 처녀지와 같았다고 했다. 그리하여 자연환경을 그대로 두고자 바람에 날려 잠깐 대지에 사뿐히 내려앉은 스카프 같은 건축물을 제안했다.
일반콘크리트에 비해 다섯 배나 강도가 센 고강도 콘크리트를 이용해 철근을 넣지 않고도 벽면의 두께를 절반으로 줄여 가냘픈 형태를 만들어냈다. 호텔 객실은 아치형으로 동굴과 같은 원시성을 보여주고 360도 방향으로 개방돼 모든 객실이 각기 다른 주변 전망을 지녔다. 호텔을 서너 번은 와 봐야 진미를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얇은 콘크리트의 장점을 살려 건물이 둔탁하게 느껴지지 않음으로써 주변 환경과 자신이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객실 수가 12개밖에 안 되는 작은 호텔이지만 울릉도라는 장소를 경험하길 원하는 이에게 잘 어울린다.
서비스 강화해 내부로 관심 끄는 호텔
대조적인 공간으로 2010년 개관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호텔(오른쪽)을 들 수 있다. 한쪽으로는 바다에 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를 내려다보는 장소적 특성도 있지만 서비스를 극대화해 사람들이 모든 것을 호텔 내부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한 점이 두드러진다. 마치 하나의 도시처럼 건물 상층부의 2000여 개 객실과 저층부의 상가와 음식점들이 몰을 형성하며 배치됐다. 내부 공간을 역동적인 삼각형 텐트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관심이 건물 밖이 아니라 내부로 쏠리게 했다.
무엇보다도 옥상층에 있는 150m 길이의 야외수영장이 압권이다.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수영장은 강렬한 스릴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수많은 서비스 시설이 존재감이 큰 호텔 안에 배치된 까닭에 주변 공간을 이용하는 호텔이기보다는 건물 자체와 내부 서비스로 승부하는 호텔인 셈이다.
장소와 관련한 건물의 가치는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주변 환경과 잘 어울려 장소의 가치를 드높이는 건축과 주변 공간과 상관없이 건축 그 자체만으로 가치를 누리는 것이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건축을 하면 좋겠지만 좋은 장소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도시 내에선 건물 외부에서 의미를 찾는 것도 녹록지 않은 일이다.
호텔은 이 두 가지 성격의 결절점에 놓여 있다. 하나는 장소로, 다른 하나는 호텔 내부 시설로 그 값어치가 차이가 난다. 결국 어떤 호텔을 선택할 것인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장소’에 머무르겠다는 사람과 즐거운 여가 활동을 하면서 ‘색다른 시간’ 속에 머물러야겠다는 사람의 기호 차이에 연유하는 것 같다.
이재훈 단국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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