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다 같은 ‘AI 반도체’가 아니다

2024. 1. 3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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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인공지능 붐 있었지만
챗GPT 등장 이후 다시 AI 열풍
역사·인과관계 제대로 파악해야
‘제2의 AI혁명’ 주인 될 수 있어

2022년 말 오픈AI사의 챗GPT가 발표되자 다시금 인공지능(AI)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수많은 분야 역시 큰 관심을 받게 되었고, 그 중심엔 반도체가 있다. ‘AI 반도체’라는 단어도 익숙한 단어가 되어, 컴퓨터와 반도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그래픽처리장치(GPU)라는 칩이 인공지능 개발에 사용된다더라 정도는 알게 되었다. 이렇게 기술 뉴스가 범람하는 현 상황에, 우리는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AI 반도체라는 것을 정말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살짝 과거로 돌아가보자. 놀랍게도 1980년대에도 인공지능 붐이 일었고, 그 중심에는 IBM이 있었다. 당시 인공지능은 발전을 거듭하여 1996년에 기어코 세계 체스 챔피언을 이겼고, 나아가 2010년대에는 왓슨이라는 인공지능이 일부 대학병원에 도입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IBM의 인공지능이 발전을 거듭하던 1980∼1990년대에 AI 반도체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는가? 인공지능도 프로그램의 일종이기 때문에 당연히 반도체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이제야 ‘AI 반도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정인성 작가
그 이유는 현재의 인공지능과 당시 IBM의 인공지능은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둘은 이름만 ‘인공지능’으로 동일하고, 프로그램으로서는 완전히 다르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응용 가능한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단순한 사물인식, 그림 그리기, 성대모사, 대화하기 등 창조적인 작업도 가능하다. 개발 역시 IBM의 인공지능과 비교하면 매우 간단하여 우리 삶 속에 깊이 파고들 수 있었다. 반면 IBM의 인공지능 기술은 삶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인공지능이 아니었다. 삶에 영향을 주지 않으니 사람들이 IBM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고, 따라서 인공지능을 구동하는 데 필요한 요소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IBM 왓슨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IBM의 왓슨은 중앙처리장치(CPU)라는 반도체를 주로 사용했다. 왓슨에게는 CPU가 AI 반도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IBM이 만든 것과는 전혀 다른, 더 인간에 가까운 인공지능을 만들려는 과학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CPU는 이들이 만들고자 하는 인공지능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GPU라고 부르는 칩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 노력은 2012년 사물인식 대회에서 인공지능이 기존 프로그램들을 큰 점수 차이로 따돌리며 우승함으로써 결실을 맺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CPU는 AI 반도체로서는 ‘과거의 AI 반도체’가 되었고, GPU가 ‘새로운 AI 반도체’가 된 것이다. 그리고 GPU를 사용하여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흐름은 계속돼 오픈AI의 챗GPT까지 이어져 오게 된다. 덕분에 우리는 모두 ‘GPU=AI 반도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AI 반도체라는 단어는 사실 ‘현시점 가장 잘 작동하는 AI용 반도체’를 의미한다. 이를 이해해야 다음 인공지능 혁명을 거머쥘 수 있다. 혹자가 2012년에 인공지능 반도체에 투자할 결심을 했다고 하자. 그가 기술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쩌면 IBM 왓슨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AI가 유행하니 지난 30년간 AI를 연구해온 IBM이 다시금 빛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IBM이 원하는 반도체인 CPU에 투자하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지 않겠는가. 결과는 너무나 자명하다.

이 가상의 예시는 우리의 미래에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학계의 누군가가 지금의 AI를 뛰어넘는 새로운 방식의, 더욱 강력한 인공지능을 만들었다고 하자. 새로운 인공지능은 GPU가 아닌 새로운 반도체가 필요할 것이다. AI 반도체라는 단어와 GPU를 동치로 생각한다면 지금은 큰 문제가 없지만, 결정적인 한순간에 판단을 크게 틀리게 하는 것이다. AI 반도체와 같은 용어는 지엽말단일 뿐이다. 그 안에 담긴 긴 역사와 인과관계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제2의 AI혁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정인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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